나는 누구일까: 미혹에서 벗어나기
책읽기
좋은 책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적어도 세번은 읽어야 한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글이 보이고 다음에는 뜻을 알수 있고 마지막에는 작가의 마음을 느낄수 있어야 정독을 한 것이라고 합니다.
작가의 마음을 느낄수 있었다면 작가가 글로서는 표현할 수 없었던 제일 중요한 그것을 알게 된 것이고 느낌이 있기에 좋은 책은 읽은이에게 한번 스쳐가는 인연이아니고 평생을 동반한 수 있는 친구가 된 것입니다.
마음을 느끼려면 글만이 아니고 그때 시대 상황을 알아야 합니다. 어떻해서 그런 글이 나오게 되였는지 배경을 알아야 도움이 됩니다. 성경을 오늘 자신이 사는 곳에서 벌어지는 일로 직역을 하게 되면 엄청난 곡해를 하게 됩니다. 성경은 2000년전 정의. 평화. 공평이란 단어의 뜻이 전혀 지금과는 다른 시대에 박해받던 식민지 하에서 목수아들 성장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책을 읽을때 글에 빠져도 안되고 뜻만도 아닌 것 같고 작가의 경험에서 나오느 진심을 느낄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대화할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생각의 미혹 (논어 2장 위정 15장)
子曰 자왈
學而不思則罔 학이불사즉망
思而不學則殆 사이불학즉태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배우되 생각하지 않으면 허망하고,
생각하되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
생각만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습니다. 이유는 외부에서 정보가 유입되지 않으면 고립되고 혼자만의 생각에 빠지게 됩니다. 미혹되지 않으려면 고여서 썩지 않으려면 외부로부터 무엇인가 얻어야 합니다. 고인 물은 썩습니다. 물도 썩는데 생각쯤이야...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자신의 것이 안되기에 허망하고 생각을 하는데 주관적이 생각으로 치우친다면 위태롭게 됩니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따르라는 것 보다는 시중지도를 지키려면 생각과 배움을 병행해야 미혹에 빠지기 않게 됩니다.
생각을 잘전하려면 말도 전달할때 적절한 단어를 구사해야 호해와 곡해를 줄일수 있습니다. 그래서 생각을 할때 자신으로부터 시작은 하겠지만 전달할때까지 사려해야 생각이 정리되지 않을지...그리고 듣는 사람의 상황까지 고려하는 배려까지 필요합니다.
말의 미혹 (논어 2편 위정 13장)
子貢問君子 자공문군자
子曰 자왈
先行其言 선행기언
而後從之 이후종지
자공이 군자에 대해 물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말할 바를 먼저 행동하면
이후 (백성이) 따를 것이다.
누가 말하는 것에 따라서 영향력은 상당히 차이가 있습니다. 순수하게 말에 미혹되는 경우는 드문데 가끔 말이 너무 좋거나 너무 나쁘면 의도적이건 아니건 이상하게 끌립니다.
인터넷에 떠다니는 좋을 글이 많지만 누가 언제 어떤 이유에서 썼는지가 불투명하면 제대로 해석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자신과 의견이 같으면 말만으로도 달콤합니다. 자신을 이해해 주는 것 같해서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너무 싫으니까 고치고 싶습니다. 다른 사람을 바꿀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 그러는지...말을 듣기는 해도 빠지지는 마십시요.
그리고 자신의 말에 빠질때도 있습니다. 더 위험할때입니다. 말은 말일뿐입니다. 자신도 모르고 보장할 수 없는 말을 이기고 싶은 마음에 자신의 말에 스스로 빠져서 불려서 그냥 토해버리게 됩니다.
언행일치가 무지하게 힘듭니다. 해보지 않고는 장담할 수 없는데 언행일치보다는 행언일치가 실수도 줄이고 정확할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말할 바를 먼저 행동해야 신임을 얻을 수 있을 겁니다.
다른 사람의 말에 미혹되지 않으려면 행동을 지켜보고 자신의 말에 미혹되지 않으려면 행언일치를 실천하면 어떨지! 스스로에게 자문을 해봅니다. 행언일치 참 어렵겠습니다. 행동해서 경험하고 알기 전까지는 말을 삼가야 하니...
행동의 미혹 (논어 2편 위정 10장)
子曰 자왈
視其所以 시기소이
觀其所由 관기소유
察其所安 찰기소안
人焉廋哉 인언수재
人焉廋哉 인언수재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가 하는 바를 보고,
그행동이 비롯된 이유를 보고,
그로써 편안해 하는 가를 살피면,
어찌 사람됨을 감출 수 있겠는가?
어찌 사람됨을 감출 수 있겠는가?
다른 사람을 속이려고 한다면 여러명이 한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것은 생각보다는 쉽습니다. 사기꾼에게 당하는 것도 같은 이유일겁니다. 그런데 공자님도 많이 당해보신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상대하고 오래 사시다 보니 사람을 잘못 판단해서 황당한 경우도 많이 당했을 겁니다.
공자님은 말잘하는 사람보다는 행동이 재빠른 사람을 좋아하셨습니다. 말잘하는 사람을 싫어했다기 보다는 행동의 중요성을 강조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행동의 이유와 무엇이 그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것을 알다면 사람을 알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같은 행동을 해도 이유는 많이 차이가 납니다. 한두번의 행동으로 결과가 달라지지는 않겠지만 행동의 이유가 다르고 원하는 것이 다르다면 오랜 시간의 결과는 천지차이가 될수도 있습니다.
미혹에 빠지지 않으려면
과정에만 빠져도 안되고 결과에만 치중해도 않되고 어렵습니다. 너무 단순하게 생각하면 위태롭고 너무 복잡하면 실천이 어렵고, 생각과 말은 과정의 시작입니다. 과정이 너무 주관적이면 이해하기도 힘들고 외연확대가 쉽지 않습니다. 결과에 너무 연연하면 처음 시작할때 초심을 잃게 됩니다.
과정과 결과를 지켜보며 왜 시작했는지 무엇을 얻고 싶은지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관찰해야 합니다.
저는 블로그에 글을 씁니다. 생각과 글의 미혹에 빠지지 않으려고 나름대로 신경을 씁니다. 미사여구는 줄이고 고전에서 인용도 많이 합니다. 그렇다고해도 행동으로 실천 됐을때까지의 결과는 알수 없어서 그래서 글을 쓰고 여러번 다시 읽으며 교정을 합니다. 제대로 쓰고 싶어서...
그래도 여러 유혹이 있습니다. 제일 큰 유혹은 글을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입니다. 글을 쓰면서 느낌이 그저 그러면 잠시 멈추고 다른 일을 합니다. 인터넷 서핑도 하고 드라마도 보고 그리고 다시 돌아와 읽습니다.
하루정도 묵혀서 다시 시작하는 것도 좋은데 그것도 쉽지는 않습니다. 글을 다시 읽으며 저의 의도와 마음을 다시 생각합니다. 어디서 시작했고 왜 쓰고 있고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결과를 예상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책읽기, 글쓰기, 대화하기
자주 생각과 글의 미혹에 빠지게 됩니다. 진심을 알려면 행동을 관찰해야 하고 뭐가 본질인지 알려는 노력이 필요한데 자꾸 눈 앞에만 보이는 이것 저것에 유혹을 당합니다. 개념, 신념, 정의...뭐 이런 것들에 속고 빠져들고...
視其所以 시기소이
觀其所由 관기소유
察其所安 찰기소안
人焉廋哉 인언수재
그가 하는 바를 보고,
그행동이 비롯된 이유를 보고,
그로써 편안해 하는 가를 살피면,
어찌 사람됨을 감출 수 있겠는가?
행동을 보고 비롯된 이유를 생각하고 무엇으로 편안해하는지를 살핀다면 어찌 사람됨을 감출 수 있겠습니까?
찰기소안으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대화를 한다면 본질에 더 충실할 수 있을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