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55: 언어의 한계에 대해서
코란
이슬람교의 경전(經典)으로, 이슬람의 예언자 무함마드가 610년 아라비아 반도 메카 근교의 히라(Hira) 산 동굴에서 천사 가브리엘을 통해 처음으로 유일신 알라의 계시를 받은 뒤부터 632년 죽을 때까지 받은 계시를 집대성한 것입니다.
코란은 어원상 '읽는 것'을 의미하지만, 신학적으로 말하면 구체화된 '신의 말씀'이다. 보통 '알-키탑(al-Kitab)'이라고 말하거나, '성서'의 의미를 담아 '알-키탑 알-무깟다스(al-Kitab al-Muqaddas)'라고도 부르지만, 가장 널리 불리는 명칭은 '알-꾸란 알-카림(al-Quran al-Karim: 고귀한 코란)'입니다.
기독교의 성경이 여러 시대에 걸쳐(약 850년간) 여러 사람들이 각기 다른 언어로 쓴 것을 결집한 것인데 비해 코란은 한 장소에서 한 인물에게 비교적 짧은 기간(23년) 동안 한 언어(아랍어)로 계시되어 완성되었습니다. 또한 코란은 천사 가브리엘을 통해 예언자 무함마드에게 내려지는 것을 그대로 받아적은 것으로, 계시의 매체는 성령이지만 말씀의 주체는 알라 자신입니다. 따라서 무슬림들은 신의 말씀이 직접 코란이 되어 내려왔다고 믿으며, 일생동안 코란을 부단히 읽고 암송하면서 신에 대한 믿음과 복종을 표현합니다.
원래 코란은 구전과 문자 두 가지 방법으로 보존되어 왔습니다. 구전으로 암송되어 전해오던 방식은 예언자 무함마드가 계시를 받을 때부터 이어온 전승의 기본적 형태로 오늘날까지 많은 무슬림들이 이 방식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문자로 쓰인 것은 계시받은 코란 구절을 무함마드가 사람들에게 낭송하였을 때, 그들 중 일부가 양피지, 가죽조각, 돌판, 대추야자 잎이나 나무 껍질, 낙타의 골편(骨片) 등에 이를 받아적은 것들입니다.
무함마드의 계시는 메카에서 13년, 메디나에서 10년간 계속되었으며, 무함마드 사후 제 1대 칼리프 아부 바크르(Abu Bakr: 632-634년 재위)시대에 최초로 집성되었습니다. 칼리프 오마르는 예언자의 서기 중 한사람이던 자이드 빈 사비트(Zaid b. Thabit)에게 명해 구전되던 계시와 문자로 기록된 것을 모아 코란을 집성했으며, 이는 제 2대 칼리프 오마르(Umar : 634-644 재위)에게 전해졌습니다.
그러나 제 3대 칼리프 오스만(Uthman : 644-656년 재위) 시대에 이르자 이슬람 공동체가 크게 확장되고 개종자들이 증가하면서 코란을 잘못 읽거나 암송하는 사례가 속출했으며, 지역마다 서로 다른 이본(異本)이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칼리프 오스만은 651년, 압둘라 빈 자이드(Abdullah b. Zaid)와 사이트 빈 알-아스(Sayt b. al-As)에게 세 명의 쿠라이쉬족(예언자 무함마드의 출신 부족) 원로의 도움을 받아 코란 원본의 정확한 필사본을 만드는 한편, 이본들을 소각하도록 지시했습니다. 이렇게 완성된 코란 정본은 쿠파, 바스라, 다마스쿠스, 카이로 등 주요 도시로 보내져 무슬림 공동체 내에서 보존하게 되었으며, 그 이후 오늘날까지 한 자의 첨삭도 없이 보존되어왔습니다.
코란은 모두 114장 6,200여 절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의 장은 첫장(개경장)을 제외하면 연대순이 아닌 장단의 길이에 따라 배열되어 있으며, 가장 긴 장(제 2장, 286절) 부터 점점 짧은 장(제 103장 부터는3~6절)의 순으로 되어 있다. 코란의 각 장은 '수라(Surah)'라고 하며, 각 장에는 이름이 붙어 있는데 이 이름이 반드시 내용과 일치하지는 않는다.
코란은 계시의 시기에 따라 크게 메카 계시와 메디나 계시로 구분된다. 메카 계시들은 주로 종교적이며, 교리상의 여러 주제와 더불어 교훈적인 신의 말씀과 진리들이 담겨져 있으며, 내용이 간결하고 시처럼 운율적이며 비유적 표현이 많이 사용되었다. 한편 메디나 계시는 무함마드가 이슬람 공동체를 세운 뒤의 계시로, 주로 법적이고 사회적인 문제를 많이 다루는데, 산문체 형식이며 길이가 긴 편이다.
《코란》에는 아랍의 고대풍속과 유대교·그리스도교의 전승을 많이 포함하고 있다. 또 당시의 사회적 관습이나 역사적 사건에 관한 내용도 적지 않으며 세월이 지남에 따라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아졌기 때문에, 《코란》에 주해(타프시르)를 기록할 필요성이 생겨 그것이 이슬람 신학자들의 중요한 과제의 하나가 되었다. 각 시대마다 수많은 주해서가 출간되었는데, 대표적인 것은 아 타바리, 아 자마후샤리, 알 바이다위 등이 만든 것이며, 그 중에서도 알 바이다위의 주해는 오늘날 《코란》을 이해하는 데 기초적인 것으로 되어 있다.
책은 옛사람의 찌꺼기입니다
장자의 천도에 나오는 목수 윤편의 이야기입니다. 많이 보셨을겁니다.
제나라 환공이 당상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목수 윤편이 당하에서 수레바퀴를 깎고 있다가 망치와 끌을 놓고 당상을 쳐다보며 환공에게 물었다.
윤편: “감히 한 말씀 여쭙겠습니다만 전하께서 읽고 계시는 책은 무슨 말(을 쓴 책)입니까?”
환공: “성인의 말씀이다.”
윤편: “그 성인이 지금 살아 계십니까?”
환공: “벌써 돌아가신 분이다.”
윤편: “그렇다면 전하께서 읽고 계신 책은 옛사람의 찌꺼기군요.”
환공: “내가 책을 읽고 있는데 목수 따위가 감히 시비를 건단 말이냐. 합당한 설명을 한다면 괜찮겠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윤편: “신은 신의 일(목수 일)로 미루어 말씀드리는 것입니다만, 수레바퀴를 깎을 때 많이 깎으면 (축 즉 굴대가) 헐거워서 튼튼하지 못하고 덜 깎으면 빡빡하여 (굴대가) 들어가지 않습니다. 더도 덜도 아닌 정확한 깎음은 손짐작으로 터득하고 마음으로 느낄 뿐 입으로 말할 수 없습니다. (물론 더 깎고 덜 깎는) 그 중간에 정확한 치수가 있기는 있을 것입니다만, 신이 제 자식에게 그것을 말로 깨우쳐줄 수가 없고 제 자식 역시 신으로부터 그것을 전수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일흔 살 노인임에도 불구하고 손수 수레를 깎고 있습니다. 옛사람도 그와 마찬가지로 (가장 핵심적인 것은) 전하지 못하고 (글로 남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하께서 읽고 계시는 것은 옛사람들의 찌꺼기일 뿐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책의 한계에 관해서 이보다 더 명쾌한 비판이 있을 수 없습니다.
아랍어로 읽어야 하는 코란
예언자 무함마드는 글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천사 게브리엘의 말씀을 다 외웠고, 가족과 친구들에게 말로 전달해 글로 옮겼습니다. 말이라는 것은 한사람을 거칠때마다 변하는 것을 우리는 많이 경험을 했습니다. 그런데 모든 말씀을 외웠고 외웠던 것을 가족들에게 전달했고 그것을 적었지만 신의 말씀이라고 한 글자도 소흘히 할 수 없다고 합니다.
번역을 하면 오역을 할수 있다고 해서 아랍어로 읽어야 하는데 아랍어를 모르는 모슬렘도 많을텐데 그리고 역사를 모르면 이해가 안가는 부분도 많을 것이고, 아무리 신의 말씀이라도 읽는 사람의 이해력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텐데!
아랍어를 알건 모르건 아랍어로 읽어야 하는 코란, 수 많은 번역을 한 성경을 뜻보다는 글로 이해해야 한다는 기독교, 침묵을 말하려고 수백권의 불경을 쓴 불교. 목수 윤편의 이야기를 한번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언어의 한계
연꽃이 불교의 상징이 된 유래는 ‘염화시중(坫華示衆)’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염화시중이란 석가모니가 인도의 영취산에서 많은 대중을 모아 놓고 설법을 하던 중에 ‘깨달음의 실체’를 보여주기 위해 문득 연꽃 한 송이를 들어 보인 것을 말합니다.
불교에서 ‘화(華)’는 연꽃을 뜻하는데, 염화시중은 바로 ‘대중에게 연꽃을 쥐어 보이다’는 뜻이 됩니다. 이 영취산 대중 법회를 영산회상(靈山會上)이라고도 합니다. 석가모니가 깨달음에 이른 그 진리를 말로서는 설명할 수 없어 연꽃을 들어 보인 것입니다. 이 때 제자 중에 오직 마하가섭만이 이를 알아보고, 역시 그 깨달음을 말로서 대답할 수 없어 살며시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래서 이를 ‘염화미소(坫華微笑)’’라고 말하기도 하고, 마음과 마음으로 통한다는 뜻으로 ‘이심전심(以心傳心)’이라고도 합니다.
불립문자 교외별전(언어나 경전에 따르지 않고 이심전심으로 전하는 오묘한 진리)
이렇게 하여 불교의 진수는 가섭에게 전해졌습니다. 이심전심이라는 말이나 글이 아닌 마음과 마음으로 전하였다고 한데서 유래합니다.
살아있던 석가 세존도 언어나 경전으로 뜻을 전달하기에 애를 먹었는데, 흥미로은 것은 이심전심과 염화미소를 많이 알고 있지만 염화시중은 잘 모릅니다.
경전을 부단히 읽고 암송하는 것은 이유를 알려는 것인데 결과만 외우는 실수를 거듭하기도 합니다.
달라이라마는 자신의 종교는 친절이라고 말했습니다. ‘My religion is kindness.’ 경전 안에는 어떻게 하면 불친절한 사람에게도 친절할 수 있는 방법론과 마음자세가 적혀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