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52: 즉물적인 삶에 대해서
즉물적(卽物的)
관념이나 추상적인 사고가 아니라 실제의 사물에 비추어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 이해관계를 우선으로 물질적인 면을 중시하는 것
즉물적인 삶은 세상의 일반적인 풍속을 따르는 세속적인 삶과는 다른 것 같습니다. 즉물적인 삶은 사물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사물 중심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합니다. 그래서 단순하고 단합을 잘합니다.
일본사람들이 즉물적이고 한국사람들이 관념적이라고 합니다. 한국사람들이 관념적이여서 토론도 논쟁도 좋아하고 정치적이라고 합니다. 일본사람 개인개인은 상당히 착하고 좋은 사람들인데 합치면 갑자기 돌변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일본사람이 즉물적이 된것은 위치적인 것도 있다고 합니다. 중국에서 시작한 새로운 문화는 관념적인 한국에서 토론과 논쟁을 통해 발전하고 검증을 통한 문화는 일본에 도착했을때는 관념이나 추상적인 사고가 아니고 실제의 사물로 도착을 하게 됩니다. 일본사람들은 실제의 사물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촛점을 맞치게 됩니다.
행복은 성적순은 아니지만 성적이 좋으면 행복할 확률은 올라갑니다. 즉물적이면 행복의 측정도 가능해집니다. 관념적이 되면 측정이 불가능해질 겁니다.
역설 주 기도문
‘하늘에 계신’이라고 하지 마라
매일매일 땅에 것만 생각하면서
‘우리’ 라고 하지 마라
언제나 너 혼자만 생각하면서
‘아버지’ 라고 하지 마라
전혀 아들, 딸답게 살지 않으면서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하지 마라
제 이름만 내려고 발버둥치면서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하지 마라
오로지 황금만능의 나라를 원하면서
‘뜻이 하늘나라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하지 마라
모든 것이 네 뜻대로 되기를 바라면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하지 마라
죽을 때까지 먹을 양식을 쌓아두려고 하면서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하지 마라
여전히 아직도 마음 한 구석에 앙심을 품고 있으면서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말게 하시고’ 하지 마라
죄인인 줄 번연히 알면서도 매일 죄지으면서
‘악에서 구하소서’ 하지 마라
악을 뻔히 보면서도 피하려 하지 않으면서
‘아멘’ 이라 하지 마라
주 기도를 진정 나의 기도로 바치지 않으면서
역설 주기도문을 통해 즉물적인 삶을 살지말라는 경고성 글입니다. 그런데 즉물적인 삶을 사는 것이 나쁠까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이 하늘나라에서와 같이 땅에서 이루어지려면 즉물적으로 살면 안되는 걸까요?
즉물적인 삶을 사신 예수와 부처
즉물적인 능력을 가지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실천한 예수가 있습니다. 예수는 지극히 즉물적인 분이였습니다. 신의 뜻을 세속적인 삶에서 생활하는 우리에게 어떻게 전달할까 고민하다 진짜 즉물적으로 접근을 합니다.
밤새 허탕을 친 시몬에게 예수님이 오셔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하셨습니다. 시몬이 그 말대로 했더니 물고기를 엄청 많이 잡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시몬 베드로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였습니다.
죽은 사람을 살리는 기적, 물을 와인으로 바꾸는 기적, 빵 몇개를 몇천명이 먹을 음식으로 바꾸는 기적. 일단 즉물적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싯달타는 평상심을 찾는 수련과 고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으려 했지만 몸을 많이 상했습니다. 네란자라강가에서 목욕하고, 우루벨라 근처의 세나니 마을의 촌장 세나니의 딸 수자따 공양 올린 우유죽을 먹고 체력을 회복한 뒤, 근처에 있는 보리수 나무 아래 홀로 앉아 명상에 들었습니다.
명상 중 즉물적인 집착을 버리는 연기론을 통해 '깨달음' 을 얻어 붓다(Buddha) 즉 '깨달은 자가 되었습니다. 아래글은 고타마 싯달타, 부처님의 행복론입니다. 지극히 즉물적입니다.
<고타마 싯달타의 행복론>
어리석은 자들을 가까이 하지 말고, 현명한 사람들과 가깝게 지내는 것,
존경할만한 사람들을 존경하는 것.
이것이 더없는 행복이다.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곳에 살며 솔선하여 좋은일을 하는 것.
스스로 바른 서원을 세우는 것.
이것이 더없는 행복이다.
깊은 학식을 연마하고 기술을 몸에 익히는 것.
몸을 삼갈줄 아는것을 배우고, 말솜씨가 유려한 것.
이것이 더없는 행복이다.
부모를 섬기고, 아내와 자식을 사랑하고 보호하는 것.
하는 일이 질서가 있어 혼란스럽지 않은 것.
이것이 더없는 행복이다.
남에게 베풀줄 알며 이치에 맞게 행동하며 친지들을 아끼고 보호하며
비난 살만한 행동을 하지 않는 것.
이것이 더없는 행복이다.
악을 끊고, 악을 멀리하며 술마시는 것을 삼가라.
덕행을 소홀히 하지않는 것.
이것이 더없는 행복이다.
존경과 겸손, 만족과 감사.
알맞은때에 가르침을 듣는 것.
이것이 더없는 행복이다.
참을줄 아는 것, 말을 온화하게 하는 것.
덕행이 높은 사람들을 만나기 좋아하며 알맞은 때에 이법에 대한 가르침을 듣는 것.
이것이 더없는 행복이다.
수행하는것. 순결하게 행동하는 것. 성스러운 진리를 통찰하는 것.
편안함을 체득하는 것.
이것이 더없는 행복이다.
세상일에 부딪혀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걱정과 티가없이 편안한 것.
이것이 더없는 행복이다.
이렇게 꿋꿋이 걸어가는 사람은 어떠한 경우에도 좌절하지 않는다.
그리고 모든 일에서 편안함을 얻는다.
이것이 곧 더없는 행복이다.
인생은…
이상적인 관념을 현실을 통해서 증명해 보이는 겁니다. 현실로 증명할 수 없다면 관념이 잘못됐을 확률이 높습니다. 공산주의가 실패한 이유는 관념과 현실의 괴리를 극복하지 못해서 입니다.
그래서 젊었을때 공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세속적인 현실을 경험해서 즉물적인 능력을 키워야 합니다. 그리고 학교에서 배운 학문과 경험을 통해 개념을 다시 정립해서, 관념과 현실의 괴리를 극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이 하늘나라에서와 같이 땅에서 이루어지려면 먼저 하느님의 뜻을 이해해야 하고 즉물적인 능력이 같이 동반되야 합니다.
부처님의 행복론을 실천하려면 부모님께 효도하고 가족을 보호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기술을 읶히고 말솜씨도 좋아야 합니다. 즉물적인 능력이 동반되야 합니다.
현실적인 삶에 도사가 먼저 되야 신의 뜻도 실천할 수 있고 행복할 수도 있습니다. 하늘나라에 존재하는 천국을 지상에서 실현하려면 먼저 즉물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즉물적인 능력을 자신만을 위해서 사용하지 말고 주위도 돌아보면 즉물적인 능력은 신의 뜻을 전달하는 능력으로 변할겁니다.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일본이 성장을 멈추고 정체를 하는 이유는 즉물적인 능력을 자신들만을 위해서 사용해서는 아닌지, 아직도 전쟁에 대한 사과도 안하고 너무 현실에만 안주하고 대신 한국이 성장을 하고 있는 이유는 관념적인 사고에다 즉물적인 능력을 합쳐서 일텐데 즉물적인 삶에만 치우친다면 일본병에 걸릴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