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50: 상(象)을 만들지 말라고 (색즉시공 공즉시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色卽是空 空卽是色]과 쿠마라지바
모든 유형의 사물은 공허한 것이며, 공허한 것은 유형의 사물과 다르지 않다는 말. 반야심경(般若心經)의 첫 구절에 나옵니다. 《반야바라밀다심경》의 중심사상을 이루고 있어 널리 알려진 말입니다.
우리가 많이 알고 있는 불경을 한문으로 번역한 분은 인도사람도 중국사람도 아닌 실크로드 중간에 있었던 쿠차라는 나라의 승려였습니다. 그것도 파계승.
쿠차라는 나라는 실크로드에서 중간무역으로 융성한 부를 구축했습니다. 눈이 파란 코케이션이 많이 살던 쿠차의 공주와 인도에서 피신해온 왕자사이에서 태어나 7살 어린나이에 출가를 했다고 합니다.
간다라로 유학을 가서 산스크리트어를 배웠고 불교를 공부해서 고향으로 돌아와 서역 최고의 승려가 되었습니다. 키질 천불동에서 오랜동안 수련을 했습니다.
그러던 중 중국의 전진 왕조가 여광이라는 장군을 파견 쿠차왕국을 점령합니다. 여광은 쿠마라지바에게 여자와 결혼하지 않으면 여자를 죽인다고 협박해 쿠마라지바를 파계하게 만듭니다. 그때 그의 나이 36살.
이제 서역 최고의 승려인 쿠마라지바는 승려지만 승려가 아닌 지경이 되였습니다. 중국에서 17년동안 연금생활을 했고 후진의 왕제에 의해 불경번역을 명령받습니다. 80살에 죽음을 맞이 할때까지 30년동안 300권의 불경을 번역합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금강경, 법화경, 아미타경, 화엄경 등등이 쿠마라지바의 번역입니다. 1400년전에 번역된 법경을 지금도 읽고 있습니다.
중국인도 인도인도 아니고 승려도 아닌 파계승이 산스크리트 불경을 한문으로 번역하게 됩니다. 수행정진을 멈춘 최고절정 쿠마라지바에게 있어 생의 나머지 사명은 경전 번역, 기존 경전의 오류 수정, 후학용 교본 출간이었습니다.
자신의 종교도 지키지 못하고 파계한 승려는 300권의 불경을 번역합니다. 알파벳같은 산스크리트를 표음문자인 한문으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쿠마라지바는 자신만의 철학을 만들어냅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 극락, 지옥 그리고 자신의 깨달음인 번뇌시도장. 어떤 사람은 원본에는 없는 극락과 지옥을 만든 것을 쿠마라지바의 오류라고 말합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창조라고 생각합니다. 원본을 설명할 방법을 찾다가 극락과 지옥을 만들었을겁니다.
번뇌시도장: 번뇌 안에 깨달음이 있다.
자신의 삶이 담겨져 있는 귀절입니다. 태어나서부터 죽을때까지 수 많은 번뇌 안에서 살아가지만 그 번뇌 안에 깨달음이 있고 번뇌 자체가 깨달음을 얻을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쿠마라치바의 사상은 동북아의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그의 번역을 우리는 오늘도 읽고 있지만 그의 고향인 쿠차는 이슬람을 믿고 있습니다.
쿠마라지바는 인도인이 아니였지만 간다라에 유학을 하고 인도의 언어인 산스크리트를 배웠고 인도의 문화도 같이 배웠습니다. 그리고 중국인이 아니였지만 17년동안의 중국생활로 중국의 문화도 배웠습니다.
쿠마라지바가 처음으로 불경을 한문으로 번역한 분은 아니지만 그분의 번역을 최고로 치는 이유가 있을겁니다. 글자를 한자 한자 옮긴 것이 아니고 뜻을 옮기려고 했을겁니다.
쿠마라지바의 꿈은 최고의 승려가 되는 것이였지만 그의 상은 변했고 번뇌 안에서 깨달음을 얻고 불경번역으로 그의 꿈을 실천했습니다.
상을 만들지말아라…
색즉시공 공즉시색은 색 (존재)와 공 (비존재)가 같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쿠마라지바의 경험에서 나온 그의 철학인 번뇌시도장은 번뇌와 깨달음이 같이 존재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상을 만들지 말아라’ 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상을 만들지 말아라는 것은 고정돼 있는 상을 만들지 말라는 이야기라고 이해합니다. 상을 만들지 말라고 해서 꿈을 꾸지 말라는 이야기는 아닐겁니다.
불교에서는 상을 만들지 말라지 말라고 해서 허무하고 기독교와 이슬람은 상을 너무 확실하게 만들어서 피곤하고 힌두교에는 상이 너무 많아 복잡하고 번잡합니다.
목표와 꿈
목표는 성장을 하면서 계속 변하게 됩니다. 성장을 하면서 다음 목표가 생기고 자신의 꿈에 가깝게 접근합니다. 꿈에 근접하다보면 처음에 자신이 생각했던 꿈이 엉뚱할 수도 있고 상황과 현실적인 변화로 꿈을 바꿔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상은 지속적으로 변해야 합니다. 움직이는 타켓은 맞치기가 힘듭니다. 그래서 일정기간 상 (목표)을 유지하고 달성하고 다시 상을 만드는 겁니다. 지속적으로 상이 변하다보면 꿈에 근접할 겁니다.
기독교인은 예수처럼 되고 싶고 불교인은 부처처럼 되고 싶고 모슬렘이라면 모하메드입니다. 예수처럼 되고 싶다고 높은 꿈을 짧은 시간에 성취할 수는 없고 부처가 어렵다고 상을 포기하는 일도 허망한 일입니다.
그러니까 가능한 상을 만들고 일정 시간에 목표를 이루면 다음 상을 만드는 겁니다.
‘상을 만들지 말아라’ 를 제대로 실천하려면 고정된 상을 만들지 말아야겠습니다. 너무 상을 자주 바꿔도 안돼고 너무 한가지 상을 고집해도 안됩니다.
변화에 잘 적응하는 방법은 현재를 열심히 즐겁게 살면 된다고 합니다. 이유는 세상은 변화하고 있기에 현재를 잘살면 변화에 잘 적응하는 것입니다. 같은 이유로 세상은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있기에 고정된 상을 고집하면 변화에 적응 못하게 됩니다.
상이 없다는 것 자체가 상이 있다는 것이고 고정된 상이 없다는 것은 상을 세상이치에 따라 다시 만든다는 것이라고…
마음이 흔들릴때 마다 우리 마음은 새로운 상을 만듭니다. 먼저 있던 상이 어렵던지 힘들어지면 마음을 바꿔 새로운 상을 만듭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 – 초심을 잊지 않으면 공허해지지 않을 것이고 왜 그런 초심을 결심했는지 가끔 사색을 한다면 고집을 부려 고정된 상을 만들지 않을겁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 여덟글짜를 아주 길게 설명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