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민석의 성격 ‘속’ 이야기]
눈 먼 사람을 고쳐준 예수
제자들과 바리새파들은
눈 뜬 기적을 축하하기 보다
“왜 눈 멀었나” 원죄 따지고
“안식일에 왜 치유행위” 시비
4주기 맞은 세월호 참사
자식 잃은 고통을 앞에 두고
정치적 이념을 따져서야…
예수는 웃은 적이 없다. 성경 기록에 의하면 그러하다. 그런데 정말로 웃은 적이 없었을까? 완전한 인간이시기에, 그도 분명 웃었던 적은 있었을 것이다.
다만 성경이 웃는 예수를 묘사하지 않았을 뿐이다. 어머니 마리아가 아기 예수에게 ‘까꿍’ 했을 때에도 예수는 근엄했을까? 어느 아기들처럼 아마 잘 웃었을 것이다.
웃은 기록은 없지만, 화를 내신 기록은 많다. 웃는 예수보다는 성난 예수를 더 부각하는 것이 성경의 의도인 것 같다. 예수는 성전에서 장사하는 이들에게 크게 화를 내셨고, 사람들과 언쟁도 하셨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예수는 종교 정치지도자들에게 자주 화를 내셨다.(요한복음 7:28-30) 당시에는 종교지도자들이 곧 사회지도자들이기도 했다. 지금으로 보자면 국회의원들이나 교회 목사들과 자주 싸우셨다는 것이다. 그 기록을 통해 우리는 예수가 무엇을 그토록 싫어했는지는 분명히 알아낼 수 있다.
죄인을 정죄하지 않는 예수
어느 누가 보아도 죄인이었던 이들에게는 이상하게도 예수가 화를 낸 적이 별로 없었다. 어느 날 간음 중에 잡힌 여인이 예수 앞에 끌려왔다. 아주 유명한 이야기이다. 예수는 멋진 말로 이 여인을 보호한다.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는 것이다. 물론 예수가 이 여자가 죄가 없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이 여인은 분명히 죄인이고 그래서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하셨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 가서, 이제부터 다시는 죄를 짓지 말아라.”(8:11) 주목할 만한 것은, 이 여인이 죄인이지만 예수께서는 그녀를 ‘정죄’하지 않으시겠다는 것이다.
점잖은 사회 지도자들에게는 펄펄 화를 내시던 예수가 왜 간음한 여인에게는 이토록 자비로웠을까? 사실 예수는 사람을 죄인이냐 의인이냐에 따라 구분 지어 대하지 않으셨다. 죄인과 의인이라는 단어 앞에 붙은 형용사가 중요했다. 그 여인은 죄인이지만 ‘불쌍한’ 죄인이었고, 종교 정치 지도자들은 의인이지만 ‘인간미가 없는’ 의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