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감히 삼위일체를 논한다
요한복음 14장 6절 그리고 갈라디아서 2장 20절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요한복음 14장6절)”라고 하셨죠. “나를 통하지 않고선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고 했습니다.
기독교신자들이 많이 인용하고 좋아하는 구절이며 비기독교신자들에게는 기독교가 포용력이 없음을 비난하기 좋은 귀절입니다.
그런데 말이란 언제 누가 누구를 위해서 사용했는냐거 중요합니다. 상황이 중요한데 이 구절을 빌려쓸때 그런 설명이 부족한것 같습니다.
그럼 요한복음 14장을 처음부터 적겠습니다.
14:1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14: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14:3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14:4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
14:5 도마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를 통하진 않고선 아무도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전체적인 상황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대화 중이였습니다. 예수님의 질문에 도마가 답례를 합니다.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
예수님은 자신이 던지 질문에 답으로 요한복음 14장 6절을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에게 한 이야기입니다. 자신을 믿으면 된다고 아주 강하게 말씀하십니다. 자신의 죽음을 예언하고 제자들에게 길과 진리를 말씀하셨다는 이야기도 하지만 그때 예수님은 점점 궁지로 몰리는 상황이였기에 앞으로의 일을 짐작하실 수 있었을겁니다.
어려운 상황이 닥칠 것이라는 것을 짐작도 하셨고 자신의 제자들과 대화 중에 나온 구절입니다. 그러니까 신도가 아닌 사람에게는 불필요한 가르침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으니,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내 안의 그리스도가 사는 것이다.'
아버지의 나라로 갈수 있는 사람은 자신 안의 그리스도가 살듯이 살면 됩니다. 그리스도를 닮아가려하는 생활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를 믿는 생활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믿음을 실천하는 생활입니다.
삼위일체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한 하느님은 성부, 성자 및 성령의 세 위격을 가지며, 이 세 위격은 동일한 본질을 공유하고, 유일한 실체로서 존재한다는 교리이다.
하느님 아버지인 유일신은 그의 독생자를 이 세상에 보내어 성령으로써 인류를 구원한다는 것이다. 이 교의는 325년 니케아공의회에서 교회의 정통신조로 공인되었으며, 451년 칼케돈공의회에서 추인됨으로써 그리스도교의 정식 교의로 확립되었다.
[출처] 삼위일체 [trinitas] | 네이버 백과사전
한국 기독교가 당명한 문제를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지만 닮으려고 하지는 않는다!’
성령이 자신의 가슴으로 들어와 자신의 삼위일체를 이루고 예수를 닮는 삶을 살아야 하지만 그냥 찬양만 합니다.
개인적인 삼위일체는 자신, 꿈, 현실이 하나가 되는 것.
'죽고나면 제가 없는 건 마찬가지지만 제가 있음으로해서 여러가지 사람들의 삶이나 생각이나 어떤 조그만 흔적이라도 남길 수 있으면 제가 그냥 덧없이 사라지는 것과는 다르다'
'제가 없을때와 비교해서 내가 존재했다가 사라진 이후에 그런 사람들의 생각, 사회적 제도, 제가 쓴 책 등 만든 조직이 여전히 존재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 조그미라도 기여 할 수 있드면 그게 내가 살았다 없어지는 값어치라고 생각한다' 흔적을 남기는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