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정경에 대해서
정경은 무엇인가?
교회는 사도 전승(傳承)에따라 어떤 문서들이 성서 목록에 포함되어야 할지를 판단 했습니다. 이렇게 결집된 목록을 성서의 "정경"이라 합니다. 이 목록에는 구약성서에 46권과 신약성서 27권, 총 73권이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개신교의 성서는 구약성서39권과 신약 성서 27권, 총 66권입니다.
왜 이런 차이가 나는 것일까요?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 이주해 살던 유대인들은 히브리어보다도 당시 국제어인 그리스(희랍)어가 더 익숙했습니다. 그래서 기원 전 3세기 중엽에 그리스어에 정통한 72인 유대인 학자들이 히브리어 성서를 그리스어로 번역하였는데, 100여 년 간에 걸쳐 이루어졌습니다. 이를 칠십인역(七十人譯)이라 합니다.
여기에는 유대인들의 히브리어로 된 구약성서의 정경 (正經)39권이 있습니다. 이를 제1 경전(정경)이라 합니다. 이외에도 토비트서, 유딧서, 지혜서, 집회서, 바룩서, 마카베오 상.하권 일곱 권과 다니엘서 일부(3,24~90 ; 13~14장), 에스델서 일부(10,4~16, 24)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를 제 2경전(經典) 혹은 외경(外經)이라 합니다.
천주교회에서는 예수시대, 사도시대, 교부(敎父)시대를 통해서 지금까지 그리스어로 된 칠십인역[제1 경전(정경39권)과 제2 경전(외경 7권과 다니엘서 일부, 에스델서 일부)] 46권을 모두 성서로 인정해 왔습니다. 특히 가장 오래된 성서 사본인 꿈란 동굴의 구약성서 사본도 칠십인역과 일치하며, 예수님과 사도들이 구약성서를 인용할 때 칠십인역을 사용했습니다.
기원 후 90년경 팔레스티나 얌니아에서 유대인 학자들이 히브리어로 된 구약성서 39권만을 유대교 경전으로 확정하고 이를 정경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포함되지 않은 일곱 권의 성서를 성서로서의 가치가 떨어진다고 외경이라 하며 성서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한국의 개신교는 이를 따르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계승을 하고 있는 서방 교회나 동방 교회는 모두 사도들의 전통을 따라 46권의 구약 성서를 모두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입니다.
유대인들이 제 2경전을 인정하지 않은 이유는 예수를 진정한 메시아로 보지 않았기에 예수에 대해 부인하려고 했다는 것 또한 큰 이유 중의 하나입니다.
신약 성서는 27권입니다. 다만 초기 루터교는 분명히 신약 성서 26권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루터가 바로 ‘허수아비 편지’라고 부른 ‘야고보서’를 빼버렸기 때문입니다.)
구약은 유대인들의 역사인데 왜 읽어야 하는지는 잘모르겠습니다. 유대인의 신과 기독교의 신과 같은 분이라면 말이되는데 유대인과 기독교가 같은 신을 믿습니까?
같은 신을 믿는다면 하나의 종교가 되어야 될것 같은데, 어째든 도움이 된다니까 읽기는 하지만 유대인의 역사책을 왜 읽어야 하는지 누가 이야기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삼위일체를 믿는다면 예수를 메시아로 보지않는 유대교와 같은 신을 믿을수가 없다면 왜 유태인의 역사인 구약성경을 읽어야 하는 것인지?
신약성경…
‘신약(새로운 약속이라는 뜻)으로 약칭됩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언행을 기록한 4권의 복음서(마태오 ·마르코 ·루가 ·요한의 복음서), 그 제자들의 전도행각에 관한 기록(사도행전), 여러 사도들의 편지글(서간서) 및 예언서(요한의 묵시록) 등 27서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부 그리스어로 쓰여 있습니다.
신약성서는 예수그리스도가 하느님의 아들로서 이 세상에 태어나 죄에 빠져 허덕이는 인간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가 부활하여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기로 약속하였다는 신앙으로 일관되어 있습니다.
모두가 1세기경에 쓰여졌는데, 최종적으로 오늘의 형태로 정경화(正經化)한 것은 397년의 카르타고 종교회의에서였습니다. 하느님이 구약성서에서 약속한 인류 구원을 신약성서에서 성취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복음서를 쓰신분들은 가톨릭에서는 마태오, 마르코, 루카, 요한이라고 하고,
개신교에서는 마태, 마가, 누가, 요안이라고 합니다.
이분들의 이름으로 된 복음서의 특징에 따라서 상징하는 게 있습니다(특히 교회미술에서). 마태오는 사람(천사),마르코는 사자, 루카는 황소, 요한은 독수리로 주로 표현을 합니다.
마태오복음…
마태오복음서는 세금관리였던 마태오가 기록했으리라는 생각에, 그 이름을 따서 복음서의 이름으로 삼았습니다.
누가 썼나요?
초대교회에서는 일찍부터 마태오가 복음서를 집필했으리라는 전승이 생겨났습니다. 유세비우스는 그의 저서 “교회사”에서 “마태오는 말씀들을 히브리어로 차례대로 모아놓았고, 각자는 이를 자기 능력대로 번역하였다”는 파피아스(60-130년경)의 증언을 담고 있어요. 리옹의 주교 이레네오(130-22년경) 또한 “베드로와 바오로가 로마에서 설교하며 교회를 세우고 있는 동안에 마태오는 히브리인들 가운데 머물러 있으면서 그들의 말로 복음서를 기록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사도 마태오가 복음서를 집필했으리라는 전승이 형성되었지만, 오늘날 사도 마태오가 복음서를 집필했으리라고 보는 학자들은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저자가 누구인지 정확히 알 수 없어서, 편의상 저자를 마태오로 부르고 있습니다.
언제 쓰여졌나요?
마태오복음서의 분량은 28장이나 됩니다. 아무런 자료 없이 이 방대한 작업이 어느 한 순간에 이루어질 리는 없고. 실제로 마태오복음은 50-60년경에 쓰여진 예수의 어록과 70년경에 완성된 마르코복음서를 참조해서 쓰여졌으리라고 봅니다.
그리고 마태오 교회 안에 전해 내려온 전승들도 한데 모았을 거라고 봅니다. 내용상 유대교와 거리감을 유지하고 있고, 100년경에 쓰여진 디다케(12사도의 가르침)에 마태오복음서가 인용되고 있는 점 등으로 보아 대략 80-90년경에 쓰여졌을 거라고 추정한답니다.
왜 썼나요?
유다교의 여러 풍습이나 계율에 대해서 설명해 주지 않고 있으면서, 간혹 히브리어나 아람어를 그리스어로 풀이해 주는 것으로 보아(1,23; 27,33.46), 북 팔레스티나와 이스라엘에 인접한 시리아 지방의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쓰여졌다고 봅니다.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점차 확립되어 나가면서 유대교와의 갈등도 생겨나는 시점에서, 어떠한 어려움에도 예수님을 믿고 따르기를 공동체 성원들에게 촉구하고자 했어요. 모름지기 그리스도인이라면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에 바탕을 둔 복된 삶을 살아가야 함을 제시하고자 했던 것이죠.
마르코복음
마르코 복음사가는 베드로 사도의 제자로서 통역관이였습니다. 원래 이름은 ‘요한 마르코’인데, 그는 바오로와 바르나바 사도와 함께 안티오키아와 키프로스에서 선교했습니다. 또한 그는 바오로 사도와 함께 로마에서도 선교 활동을 펼쳤습니다.
70년경에 주로 베드로 사도의 가르침을 기초로 삼아 마르코 복음서를 기술했는데, 이방인 그리스도인을 위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마르코 복음사가는 이탈리아의 항구 도시 베네치아의 수호성인이며, 그의 유해는 그곳의 마르코 대성당에 안장되어 있다.
루가복음
루가복음서는 마태오복음과 마르코복음에 이어서 세번째로 나오는 복음서입니다. 그래서 제3복음서로 불리워지기도 하죠. 한편 이 복음서는 교회 전승 초기서부터 사도 바오로와 선교여행을 함께 떠났던 의사 루가가 집필했다고 알려져 왔습니다. 그래서 그의 이름을 따서 루가복음서라고 명명되었답니다.
누가 썼나요?
초대교회의 전승에 따라서, 바오로 사도와 동행하였던 루가가 썼으리라고 추정할 뿐이죠. 기원후 2세기 말엽에 리옹의 이레네오를 비롯해서 200년경의 무라토리아 파편의 기록을 초대교회서부터 의심없이 믿었던 것이죠.
지금처럼 누가 썼느냐 보다는 어떤 내용이 실려 있느냐에 더 많은 관심을 쏟았던 시기였으니까요. 실제로 겉보기에도 루가복음서에는 병에 대해서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루가 4,38; 5,12; 8,44; 13,11), 마르코를 인용하면서도 의사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는 배제하고 있어요(마르 5,26 비교 루가 8,43).
반면에 바오로 사도의 사상적인 영향을 받았다는 뚜렷한 증거를 복음서 내용에서 찾기 어려울 뿐 아니라, 당대에는 의학적인 전문용어나 표현을 사용해서 글의 품위를 높이려는 문학적 성향이 있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제3복음서의 저자를 루가라고 단정하기는 어려워요. 하지만 그동안 통용되었던 교회의 관습을 존중하려는 의도에서 편의상 루가를 저자로 일컫고 있답니다.
언제 썼나요?
루가복음서는 다른 복음서에 비해 희랍어 문장이 아주 정교합니다. 어휘 또한 고전희랍어에 속한 것이 1/3이나 될 정도로 언어실력이 탁월합니다. 70년경에 쓰인 마르코복음서와 50-60년에 집대성된 예수 어록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70인역 성서를 많이 참조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도미티아누스 황제 치하(기원후 81-96년)에서 그리스도인들이 호되게 박해받았던 일들이 반영되어 있지 않을 뿐 아니라, 얌니아에서 바리사이파가 유대교를 재건한(기원후 85-90년) 후에 생겨났던 교회와 회당 간의 반목도 들어 있지 않는 것을 보면, 대략 기원후 80-85년경에 루가복음서가 집필되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왜 썼나요?
복음서 서두에 나온 대로, 루가는 시간적으로 지리적으로 예수 시대로부터 떨어져 있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누구신지에 대해서 일러주기 위해서 쓰여졌어요. 아마도 헬라계에서 개종한 그리스도인들을 대상으로, 다시 말해서 데오필로를 중심으로 한 가정 공동체 안에서 예수님의 언행을 바탕으로 복음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힘을 북돋워 주기 위해 집필되었을 거에요
요한복음
요한은 아버지 제배대오와 어머니 살로메의 아들이며 대고보의 동생입니다. 요한은 예수님의 3년사역기간을 통해 가장 사랑받는 제자중의 하나였으며 유월절 최후의 만찬 다락방에서는 예수의 품에 누워있는자가 바로 이 요한입니다.
부르심을 받기전에는 갈릴레아 가파르나움에서 어부생활을 하다가 시몬 베드로, 안드레아와 함께 예수님의 최초의 사도가 되었고 예수님께 가장 사랑받은 제자였고 십자가에서 성모님을 부탁받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의 승천이후에는 예루살렘 교회의 세 기둥의 하나로써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후 베드로의 동역자가 되어 복음을 전했습니다. 베드로와 합께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다가 앉은뱅이를 예수의 이름으로 고쳐주기도 했으며(행3:1-10) 산헤드린에서 심문받을 때도 담대하게 복음을 변호하였다(행4:5-22).
초대교회에서 중요한 사도의 역할을 수행했으며(행8:14) 교회가 핍박받을때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도미티안 황제의 기독교인 박해 때 밧모 섬에 유배되었으나(계1:9) 주님의 계시를 받아(계1:1-2) 환난 가운데 있는 일곱 교회 성도들에게 "본 것과 지금 있는 일과 장차 될일"(계1:19)을 전했습니다.
요한은 ’우뢰의 아들’ 이란 별명을 들을 만큼 성격이 급한 사람이 었지만(눅9:54), 그의 이름처럼 ’사랑’을 강조하며(요일4:7) 살아간 사랑의 사도였습니다.
그는 또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로부터 성모 마리아를 돌보아 드릴 것을 부탁 받았다(요한 19:26). 성신 강림 후 베드로와 함께 예루살렘(사도 3:1)과 사마리아(사도 8:14)에서 포교활동을 하였습니다.
전승에 의하면 로마의 도미티아누스 황제(재위 : 81∼96)의 대박해 때 파트모스섬으로 유배되었다가 에페소로 돌아가 복음서와 세통의 편지를 썼으며 서기 100년경에 90세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파트모스섬에서는 <요한 묵시록 >을, 에페소에서는<요한 복음>과 3서한을 썼다고 합니다.
그러나 주의 사랑받던 제자, 사도요한, 복음서의 저자, 묵시록의 저자를 다른사람으로 보는 성서학자도 있습니다. 묵시록에서는 일곱교회에 보내는 내용과 장차 앞으로 일을 성령께서 보여주시는데로 적었고, 지시하시는대로 기록하였습니다. 계시록에는 성도에 관한 내용과 믿지않는자들에 대한 심판과 천년왕국과 죽음과 부활과 천국에 대한 내용이 기록돼어져 있습니다.
사도행전
사도행전은 요한복음서 다음에 나오는 성서입니다. 지금까지 함께 살펴보았던 네 복음서들은 예수님의 생애와 언행을 태어나서부터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기까지의 과정을 가능한 한 충실하게 기록하려 하였던 반면에, 사도행전은 예수님의 승천 이후 사도들이 성령의 힘을 받아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면서 교회를 세워나가던 과정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들의 행적이 담겨 있다 해서 사도행전(使徒行傳)이라고 불리우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까지 복음이 전해질 수 있게 한 모태라 할 수 있는 초대교회의 창립과정을 상세히 그려내고 있는 셈이죠. 그렇다고 해서 12사도의 활동상이 모두 담겨 있지는 않습니다. 실제로 사도행전의 앞 부분에서는 12사도를 대표하는 사도 베드로의 행적이 다루어지고 있고, 뒷 부분에서는 하늘나라의 복음을 온 세계에 전하는 데 큰 역할을 한 사도 바오로의 행적이 주로 다루어지고 있어요.
누가 썼나요?
루가복음서를 쓴 사람이 복음서의 후속편으로 사도행전을 집필했을 것이라고도 합니다. 4복음서를 한데 모으기 전만 하더라도, 사도행전은 루가복음서와 함께 전해져 왔으니까요. 또 두 성서의 내용을 비교해 보더라도, 신약성서 중에서 이 두 권만 데오필로에게 바치는 헌정사가 실려 있어요. 두 책에 사용된 문체나 용어도 비슷한 부분이 많습니다.
하지만 서로 다루고 있는 내용이 달라서 차이나는 부분도 상당히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 성서는 예수님의 탄생서부터 교회가 창립될 때까지 벌어졌던 일들을 일관성있게 보여주고자 한 동일인물에 의해서 기획 집필되었을 거라고 봅니다. 바오로를 따라다녔던 의사 루가가 저자가 아닌 것만은 분명하지만, 편의상 그를 루가복음 - 사도행전의 저자로 부르고 있어요.
언제 썼나요?
루가복음서와 사도행전은 한 사람의 신학적인 의도 아래 두 권의 책으로 쓰여졌습니다. 사도행전은 80-90년경에 쓰여진 루가복음서의 후속편으로 대략 95년경에 완성되었다고 봐요. 사도, 장로, 부제 등 교계제도적인 모습과 세례, 안수, 성찬 등 원초적인 성사제도가 1세기 말엽의 교회상을 잘 반영하고 있거든요.
왜 썼나요?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 이후로 교회가 어떻게 건설되고 성장했는지 일러주고자 하는 목적으로 쓰여졌어요. 당시에는 이교적인 가르침을 바탕으로 한 행전들이 많이 통용되고 있었기 때문에, 교회의 올바른 가르침이 스며들어 있는 사도들의 행적을 기록할 필요가 있었던 거지요.
당시 커다란 힘을 떨치고 있던 로마 제국 안에서 그리스도교가 순조롭게 성장해 나갈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성령께서 이끄셨기 때문임을 일러주며, 로마황제 숭배 및 유대인들과의 불화로 말미암아 어렵게 신앙생활을 해나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고자 집필했어요.
베드로와 바울 그리고 요한
베드로와 요한은 12명의 제자고 바울은 나중에 예수님을 만나 후에 복음을 전한 분입니다.
복음서도 그렇고 사도행전도 많은 부분이 베드로와 바울의 행적입니다. 그리고 베드로보다 바울이 더 많을 일을 했는지는 알수 없지만 바울의 행적이 더 많이 나옵니다. 예수의 말씀을 전하지만 전한 사람은 베드로와 바울입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이 돌아가시전에 어머니 마리아도 부탁하고 마리아를 어머니처럼 섬깁니다. 그래서 요한이 예수와 형제라는 이야기도 나왔나봅니다. 예수가 제일 사랑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제일 믿을만한 분이였나봅니다. 아니면 코드가 제일 맞았는지도 모르죠!
그래서 요한의 요한의 복음서, 묵시록, 게시록에 더 정이 갑니다. 예수를 통하여 마리아를 통하여 예수에 대해서 더 많이 알고있었을것이고 베드로나 바올보다 복음보다는 예수님의 생각과 철학에 더 고심을 하지 안았을까 합니다.
성경에는 예수의 철학과 사랑을 베드로와 바울의 행동과 편지로 전합니다. 플라톤이 책으로 소크라테스의 철학을 전달한것 처럼. 그리고 맹자가 공자의 철학을 전했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