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일까: 겨자씨 크기의 믿음
마태복음 17장
16절; 내가 주의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으나 능히 고치지 못하더이다
17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 그를 이리로 데려오라 하시다
18절; 이에 예수께서 꾸짖으시니 귀신이 나가고 아이가 그 때부터 나으니라
19절; 이 때에 제자들이 종용히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20절; 가라사대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 씨 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여기서 겨자씨의 비유된 믿음은 무슨 믿음일까요?
겨자씨는 아주 작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아주 크게 자란다고 합니다. 그래서 여러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작다는 것에 대한 비유이며 크게 자랄 겨자처럼 믿음을 키우라고 해석도 합니다.
스타워즈의 요다
룩 스카이워커는 요다에게 제다이 훈련을 받습니다. 훈련을 받던 중 머리만한 돌을 손을 안대고 움직입니다. 요다는 물속에 빠진 비행기를 꺼내라고 명령합니다. 룩은 너무 커서 불가능하다고 시도조차하지 않습니다. 그때 요다는 직접 비행기를 꺼내서 증명을 합니다.
겨자씨만한 크기의 믿음이란 돌과 비행기의 차이를 잊는 믿음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작은 기적은 실천했을겁니다. 그렇지만 병을 낫게하는 신통력은 없었나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17장 16절부터 19절까지의 스토리입니다. 왜 자신들은 할수 없는지!
do not want/wish, just do/be
성공을 원한다면 원하지말고 하라고 합니다. 믿음이란 복사기 같해서 원하는 것을 그대로 준다고 합니다.
I wish I become rich...이런 마음이 있으면 부자가 되고 싶은 마음을 줍니다.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고
부자가 되고 싶으면 부자의 마음을 가지는 겁니다. to not wish, just be
부자가 되려면 100원이나 1000원이나 같은 것이 됩니다. 숫자에 약해지라는 뜻은 아니고 100원을 버는 것이나 1000원을 버는 것이나 같다는 뜻입니다.
일단 목표를 정하고 모자란 것을 메꾸는 겁니다. 그리고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 겁니다. 최선을 다하는 겁니다. 겨자씨만한 믿음입니다. 결과는 제가 책임질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과정을 열심히 꾸준히 할수 있습니다.
결과를 신/미래/운명이 알아서 해줄 것이라는 것이 겨자씨만한 믿음입니다. 목표는 자신의 그릇크기를 고민하면 알수 있게 됩니다. 자신을 믿어주는 한사람만을 만나도 배가 되고 2명을 만나면 4배가 됩니다.
제가 믿는 신은 1억은 주시고 100억은 너무 많다고 안주시는 그런 신이 아닙니다. 제가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이 된다면 100억도 주시고 1000억도 주실겁니다. 대신 믿음이 없어지거나 교만해져서 감당할 크기가 안된다면 다시 가지고 가실 겁니다.
겨자에 비교되는 믿음은 머리만한 돌과 비행기의 크기 차이를 잊는 그런 믿음이 아닐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