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15: 나에게 공부란 (놓아주고 보태지말고)
혜민스님의《완벽하지 않은 것들의 사랑》 중에서
고요한 마음 안에 한 생각이 일어나면 생각이라는 놈은 자기 자신이 엄청 중요하다고 느끼게 한다. 그래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생각과 나를 동일시하면서 생각 속에 빠진다. 수행은 생각이 올라왔을 때 그것을 붙잡지 말고 그냥 구름 지나가듯 놓아주는 것이다. 놓아주면 자기가 알아서 하늘과 같은 고요한 바탕으로 이내 사라진다.
아주 엄격하게 말하면,
어떤 상황이 스트레스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고
그 상황에 관한 생각들이 스트레스를 일으킵니다.
그래서 생각이 쉬면 내가 경험하는 세상은
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됩니다.
일어난 생각에 힘을 주어 생각을 보태지만 않으면
생각은 본래 고향인 텅 빈 고요로 저절로 사라지고
열린 채로 모양이 없는 환한 마음 본성이 드러납니다.
중용 첫장: 천명지위성, 솔선지위도, 수도지위교
天命之謂性 率性之謂道 修道之謂敎 (천명지위성, 솔성지위도, 수도지위교)
하늘이 명한 것이 성이고, 그것을 따르는 것이 도이며, 도를 닦는 것을 교라고 한다.
성리학에서는 사람의 마음은 性(성)과 情(정)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은 사람의 본성으로 하늘의 명한 것이고 정은 우리의 감정들입니다.
성은 완전무결하며 정은 희노애락 같은 감정이기에 불완전하다고 보는 겁니다. 그래서 성리학은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학문이 되겠습니다.
천명지위성, 솔성지위도, 수도지위교는 하늘의 명인 성을 따른 것이고, 그 성을 따르는 것이 도이며, 그 도를 닦는 것이 공부(교)입니다.
공부하는 것은 자신의 마음을 수양하는 것이고 수양을 하면 군자가 될 수 있습니다.
공부를 한다는 것
자신의 본성을 찾아가는 길일 것 같습니다. 자신의 본성을 찾아가려면 길이니까 많은 것들을 만날 겁니다. 수 많은 생각과 감정들입니다.
만나면 즉 상황이 벌어지면 생각이 들고 그 생각은 감정을 만듭니다.
수행은 생각이 올라왔을 때 그것을 붙잡지 말고 그냥 구름 지나가듯 놓아주는 것이다.
일어난 생각에 힘을 주어 생각을 보태지만 않으면
생각은 본래 고향인 텅 빈 고요로 저절로 사라지고
열린 채로 모양이 없는 환한 마음 본성이 드러납니다.
말은 참 쉽습니다 아니 글은 참 쉽습니다. 그냥 구름 지나가듯 놓아주고 힘을 보태지 말면 저절로 사라지고 환한 마음 본성이 드러난다고 합니다. ㅎㅎㅎ
명상을 할 때 아무런 생각을 안하려고 노력했는데 티벳 승려인 밍규르 림포체는 생각과 감정을 안하려고 하거나 버리지 말고 숨에 집중을 하라고 합니다. 생각과 감정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고 없앨 수도 없는 것이니 그냥 집중할 것을 찾으라는 것 같습니다.
구름 지나가듯 놓아주고 싶지만 놓을 수 없고 생각을 보태고 싶지 않지만 잡념은 끝이 없고 어떡해야 할까요?
집착을 하고 잡념을 버리지 못하는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냥 나 같은 경우는 그릇이 작아서 담지 못해서 그러는 것 같습니다. 하나의 생각이 떠오르면 그릇이 작으니 계속 마음에 떠다니고 그러니 잊을 수가 없고 그릇이 작으니 계속 부딪치고 그러니 또 떠오르고 그런 악순환을 하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놓아줄 수도 없고 생각은 더 보태지고...공간을 더 만들자니 타고 난 터도 작고 더 살 땅도 없는 것 같고 그래서 아인슈타인 할아버지의 시간을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시공간입니다. 공간이 크다는 것은 시간이 많은 것이고 시간이 많으면 큰 공간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을 놓아주고 생각을 보태지 않으려고 합니다.
'3분이 지나도 이 생각이 중요할까, 3시간이 지나면, 3일이 지나면?'
나의 공부는 (수양은) 나에게 시간을 주는 겁니다. 타고난 그릇이 작으니 여유가 없어서 참지를 못하고 그냥 터져나오니 실수가 많고 감정을 낭비합니다. 그래서 나에게 시간을 주는 겁니다. 시간의 주문을 속으로
'3분이 지나도 이 생각이 중요할까, 3시간이 지나면, 3일이 지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