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천재 행동 부족: 자신의 객관화 (옆집 아저씨처럼)
옆집 아저씨처럼
어떻게 하면 자신을 객관화해서 볼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옆집 착한 아저씨처럼 좋은 조언을 할 수 있을까요?
옆집 아저씨는 엄친아처럼 있다고는 하는데 한번도 보지 못한 그런 사람입니다. 옆집 아저씨도 자신의 집에서는 보통사람일 겁니다. 그렇지만 남의 일은 잘 보이니까 훈수는 잘 둘 수 있습니다.
자신의 일이 어렵지 남의 일은 아주 객관적으로 합리적으로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아마 이런 식일 것 같습니다.
세상은 흘러간다는 마음자세
안되면 말고 정신
그냥 영화 보듯이
무위, 관조하는 상태 아주 객관적인 자세
옆집 아저씨에서 얻고 싶은 것
자신의 안과 밖을 같이 살핌
대세를 살피는 여유
대세 안에 자신은 어디 있는지 살핌
그런데 그 유명한 옆집 아저씨는 옆에 없습니다. 그래서 때때로 스스로 옆집 아저씨가 되야 합니다. 그래서 옆집 아저씨가 되는 방법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옆집 아저씨 수행
힌두교의 제3의 눈 혜안 (慧 슬기로울 혜 眼 눈 안)
사물을 밝게 보는 슬기로운 눈. 모든 집착과 차별을 떠나 진리를 밝히 보는 눈.
슬기로운 눈은 어떤 눈일까요? 아마 안에 있지 않고 밖에 있어서 자신이 하는 행동을 볼 수 있는 눈일지도 모릅니다. 거울 같은 눈 CCTV 같은 눈일까요?
불교의 관조 (觀 볼 관 照 비칠 조)
고요한 마음으로 사물이나 현상을 관찰하거나 비추어 봄.
한문으로만 해석하면 환하게 봐서 본질을 이해하는 겁니다. 보면서 비판하지 말고 예언하지 말고 참견하지 않으면 됩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의 인생이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자신의 인생을 관조하려면 유체이탈을 해서 자신을 제 삼자의 눈으로 관찰해야 합니다.
도교의 무위 (無 없음 무 爲 행할 위)
중국의 노장 철학에서, 자연에 따라 행하고 인위를 가하지 않는 것. 인간의 지식이나 욕심이 오히려 세상을 혼란 시킨다고 여기고 자연 그대로를 최고의 경지로 본다. 그래서 무위를 실천하려면 세상의 이치를 깨달아야 한다고.
기독교의 믿음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요한복음 14장6절)”라고 하셨죠. “나를 통하지 않고선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고 했습니다.
갈라디아서 2장20절’입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으니,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내 안의 그리스도가 사는 것이다.’
자신을 잊고 그리스도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겁니다. 그리스도 모든 것에 척도가 되는 겁니다.
아담 스미스의 도덕감정론에서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이고 싶어 하며 실체로 그렇듯 아니든 스스로 착하다고 생각한다. 바로 그 순간이 공정한 관찰자를 떠올려야 하는 타이밍이다.
공정한 관찰자를 자주 떠올릴수록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
공정한 관찰자를 상상하면, 나 자신으로부터 한 걸음 물러서서 객관적으로 나를 바라볼 수 있다. 이는 인생을 살면서 우리가 피하거나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행동이다.
맹자의 사단설 (공손추편)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는 것은 사람이 아니고, 부끄러운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사양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옳고 그름을 아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 (측은지심)은 어짐의 극치이고,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 (수오지심)은 옳음의 극치이고, 사양하는 마음(사양지심)은 예절의 극치이고, 옳고 그름을 아는 마음 (시비지심)은 지혜의 극치이다.
사람이 자신에게 있는 4단을 보충하고 확장시킬 줄 안다면, 마치 불이 타 번져나가는 것과 같고 샘이 솟아 흘러나가는 것과 다름없고,
진실로 사람이 이 4단을 확충시켜 나갈 수 있다면, 천하를 온전히 일으켜 세울 수 있고, 반대로 확충시켜 나가지 못하면 자신의 부모를 섬기기에도 부족하다는 말씀입니다.
옆집 아저씨의 선택 (지혜의 보물지도)
힌두교에서 말하는 제3의 눈인 혜안이 생기면 자신의 행동도 볼 수 있을 텐데 그런 것이 가능한 것인지 물리적으로는 불가능하게 보입니다. 제3의 눈이 몸 밖에 있어야 가능하고 또 그것을 관리 조정해야 합니다. CCTV 같은 것을 이야기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몇 년 전 달라이라마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는데 직접 라이브로...옆에 비서실장을 동행하고 모르는 것이 있으면 묻고 잘못된 것이 있으면 비서실장이 정정해주는 것을 보았습니다. 옆에 신뢰하고 믿을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것이 제3의 눈을 같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보면서 비판하지 말고 예언하지 말고 참견하지 않으면 됩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의 인생이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자신의 인생을 관조하려면 유체이탈을 해서 자신을 제 삼자의 눈으로 관찰해야 합니다.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실천은 어려운 옆집 아저씨의 지혜를 어떻게 하면 얻을 수 있을까요?
지혜의 보물지도를 가지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여기저기 기웃거렸는데 맹자님의 사단설이 이해하기가 제일 편한 것 같습니다.
지혜를 얻으려면 자신을 객관화해서 시시비비를 잘 가려야 합니다.
시시비비 (是 이 시/옳을 시 非 아닐 비/비방할 비)
옳은 것은 옳다, 그른 것은 그르다고 한다는 뜻으로, 사리를 공정하게 판단함을 이르는 말.
시시비비를 잘 가리려면 시비지심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그럴려면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맹자님의 말씀.
다른 사람을 측은하게 느껴야 하고, 부끄러움을 알아야 하고, 사양할 때가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하고 그래야 자신을 객관화해서 평범한 옆집 아저씨의 지혜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