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종: 제3대조 승산 (가려내고 택하지 말아라)
신심명이란?
부처님께서 설하신 법을 가섭존자에게 전하시고, 가섭존자가 아난존자에게 법을 전한 것을 2대로 하여 내려오던 중 28대 달마대사가 중국으로와 혜가대사에게 법을 전하였다.
혜능대사 이후 중국선사들이 법계(法系)를 세우기 위해 달마대사를 1조, 혜가대사를 2조, 승찬대사를 3조, 도신대사를 4조, 홍인대사를 5조, 혜능대사를 6조라고 정하여 불조(佛祖)의 법맥으로 삼았으니, 이 신심명은 3조 승찬스님께서 편찬하신 것인데 지금도 많은 불자님들이 즐거이 읽고 배우고 또 이에 대한 책자도 많이 나와 있어 널리 알려진 믿음에 관한 게송이고 법문이다.
승찬스님은 혜가스님을 만나기 전에 세속에서 살았는데 대풍질(나병)에 걸려 육체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어려움이 많았다. 어느 날 어느 산중에 도인이 계신다는 말을 듣고 혹 그 도인께서 병을 낫게 하는 방도를 일러주실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혜가스님을 찾아갔다고 한다.
혜가스님께서 승찬스님이 찾아온 연유를 들으시고 말씀하셨다. 육체의 병은 마음의 병에서 오는 법이고, 마음의 병은 신구의(身口意) 삼업에서 오는 법이며, 이 삼업의 과보가 마음의 병을 일으키고, 마음의 병은 몸의 병을 일으키나니, 삼업의 죄업을 우선 소멸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참회를 하면서 복을 심고 도를 닦아야 한다고 하셨다.
혜가스님의 이 말씀을 들은 승찬스님은 그 자리에서 혜가스님을 믿고 법을 청하게 되었고, 혜가스님의 가르침에 따라 참회하고, 불법승 삼보를 믿고 의지하여, 복을 짓고 도를 닦아 마침내 병에서 완쾌하게 되었고, 그리고 스님의 법맥까지 이어 3조가 되시었다.
평생 동안 고치지 못할 병을 치유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그의 믿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하여 후학들을 위해 이 신심명(信心銘)을 찬술하셨고, 이 책 한권에 의해 승찬스님이 불가의 조사스님들로부터 존경과 찬사를 받게 되니 승찬대사가 돌아가신지 150년쯤 뒤에 당나라 현종황제가 간지선사라고 시호를 내렸고, 탁호를 각정이라고 내려서 그의 명호가 더 널리 알려지게 되니 대대로 후학들에게 이어져 오게 된 동기가 되었다.
승찬스님은 수나라 양제 대 2년 10월 5일, 서기 606년에 입적하셨는데 태어난 시기와 혜가대사와 만난 시기에 대한 기록은 없다.
「신심명」은 믿을 신(信), 마음 심(心), 새길 명(銘)인데 ‘믿음을 마음속에 새기는 글’이란 뜻이다. 큰 깨달음은 바로 마음을 믿는데 있다는 말인데, 이를 사언(四言) 이구(二句), 73송, 584자(字)로 구성하셨다.
신심명 게송 설명
「신심명」에서는 상대적인 개념을 여러 가지 예를 들어 철저하게 부정하고, 상대성이 있는 곳에는 고통이 따르게 되어 있지만 그 상대성이 소멸된 곳에 지도(至道)가 있다고 밝히고 있다.
「신심명」에서 그 상대성을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
01 지도무난(至道無難) 유혐간택(唯嫌揀擇)
지극한 도(道)는 어려운 것이 아니다. 오직 간택하는 것만 싫어하면 된다.
도란 진리를 탐구하는 길이니, 지도(至道)라 하면 더 이상 높을 수도 없고, 더 깊을 수도 없으며, 더 넓을 수도 없는 가장 지극한 진리로 가는 길이다.
이것은 위없이 높은 깨달음으로 가는 길이기도 하고, 가장 행복하게 사는 길이기도 하며, 극락세계로 가는 길이기도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심층 중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진아로 가는 길이다.
간택이라 함은 가려내고 택하는 마음이다. 가려내는 것은 몹쓸 것을 가려내는 것이고, 택하는 것은 쓸모 있는 것을 택하는 행위이다.
우리들은 일상생활에서 끊임없이 택하고 버리는 작용을 한다. 한 남자가 여자를 장난삼아 만날 때와 결혼 대상으로 만날 때 그 선택의 기준이 확연히 달라지는 것이 우리들의 간택심이다. 먹는 음식을 앞에 놓고도 간택하는 마음이 일어나고, 종교를 택하거나 자기가 다닐 절을 택하고, 친구를 사귐에 있어서도 간택심이 작용하는 것이 우리들의 일반적인 마음이다.
어쩔 수 없이 간택을 해야 하는 사회에 우리가 살고 있으니 지도(至道)가 무난한 것이 아니라 지도를 방해하는 간택이 극심하므로 도를 이루기에 더 어려움이 많은 것이다.
02 단막증애(但莫憎愛) 통연명백(洞然明白)
다만, 미워하고 좋아하지 않으면 (도는) 화통해져 명백히 드러난다.
미워하고 좋아하는 마음도 우리 마음의 일반적인 작용이므로 미워하지도 않고 좋아하지도 않는 마음을 얻어 지도(至道)가 통연명백하기는 대단히 어려운 일이 아닐까 생각된다.
가려내는 것은 미워하거나 싫어하는 감정적인 마음의 작용이고, 택하는 것은 좋아하거나 사랑하는 감정적인 마음의 작용이다. 이러하니 ‘간택하는 마음의 작용을 꺼려한다.’는 것은 사물이나 사람을 대할 때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아야 가려내거나 택하는 마음도 일어나지 않게 되는 것이니, 이를 분별심이 없는 마음이라 하여 무분별지(無分別智)라고 하는데, 무분별지에 이르면 지도가 환하게 보인다는 말씀이 단막증애 통연명백이다.
03 호리유차(毫釐有差) 천지현격(天地懸隔)
(간택을 싫어하고 증애가 없는 마음에서) 털끝만큼이라도 차이가 있으면 하늘과 땅의 간격으로 벌어진다.
간택함이 없는 마음이나 증애함이 없는 마음바탕에 털끝만큼이라도 가리고 택하는 차별심이나 미워하고 좋아하는 차별심이 남아 있으면 이 차별이 하늘과 땅의 간격으로 벌어진다고 했다. 이 하늘과 땅의 간격으로 벌어져 있는 상태가 우리들의 현실이라고 생각한다.
앞 세 구절을 종합해보면, 택하고 버리는 마음이나, 미워하거나 좋아하는 마음은 모두 자기 욕심에서 일어나는 마음이며, 욕심은 구하는 마음이 심해지면서 일어나는 마음이다. 구하는 마음이 없으면 불만스러운 것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구하는 것이 있으면 반대로 구하지 않는 것도 있게 되니 자연히 좋고 나쁜 것이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구하던 것이 구해지면, 더 좋은 것을 구하려 하게 되고, 또 점점 더 좋은 것을 구하려는 것이 우리의 욕심이니 언젠가는 불만이 생기게 된다. 또 이렇게 구하고 모아서 쌓아놓은 자기 것을 잃게 되었을 때도 역시 불만스럽게 되고, 그 불만이 커지면 원한으로 변하게 되어 있다.
원한은 복수로 이어질 수 있으니, 사태는 더욱 악화되어가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호리유차 천지현격 (간택을 싫어하고 증애가 없는 마음에서)털끝만큼이라도 차이가 있으면 하늘과 땅의 간격으로 벌어진다.’고 했다.
이러한 악순환의 발단은 간택하는 분별심과 증애의 분별심에서 일어나는 법이니 오직 간택하는 마음을 싫어하면 지도에 무난히 이를 수 있고, 증애 하는 마음이 없으면 지도하는 길이 통연하고 명백해진다고 한 것이다.
간택하는 마음과 증애하는 마음을 없애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간택하는 마음이나 증애하는 마음은 이기심의 근본인 오온심에서 일어나는 마음이다. 오온심이란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 물질, 느낌, 생각, 행동, 의식인데, 물질은 몸이고 느낌, 생각, 행동, 의식은 통틀어서 마음이라고 하는데 우리들의 감각작용은 몸을 통해 일어나는 느낌이나 생각, 말이나 행동, 즉 간택 및 증애하는 느낌, 생각, 언행의 근본이 되는데 식에서 일어난다.
이 의식은 전생에 있었던 나의 경험이나 금생에 있었던 나의 경험이 지배하는 나의 생각이다. 미워하거나 좋아하거나, 택하거나 버리는 생각의 요인은 나의 과거의 경험에 의해서 그렇게 판단되고 행하는 것이지 그 사물이나 사람 자체에 미운 털이 박혀있어서 미운 것은 아니라는 말씀이다. 미운 털이 박혀있는 사람이나 물건이 아니기 때문에 나와 다른 경험을 가진 사람은 그 사람을 좋아할 수도 있고 그 물건이 필요할 수도 있다는 말씀이 된다.
절에 오면 사람들이 많다 보니 그 중에는 자기 비위에 맞는 사람도 있지만 맞지 않는 사람도 있다. 우리는 흔히 그 사람 자체가 좋아서 내 비위에 맞고, 그 사람 자체의 성격이 나빠서 내 비위에 거슬린다고 생각하기 쉽다. 사실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자세히 자신을 돌이켜보면 그것은 자신의 오온심에서 비롯된 자신의 사고방식에서 온 결과임을 알 수 있다. 그런 것을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은 자기의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지 상대방에게 허물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이 깨달음으로 자기의 사고방식을 바꿀 수만 있으면 그 누가 어떠한 방식으로 나에게 접근해 온다 하더라도 그를 간택하거나 증애하는 마음 없이 평온한 마음으로 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서로 다른 형형색색의 사람과 물건이 서로 어우러질 때 생함이나 성장함이 일어나는 법이고 창조가 가능해 질 수 있지만, 서로 대립하거나 배척할 때는 서로 쇠퇴해지고 멸하게 되는 법이다. 그렇다고 남을 상대하지 않으면 연기하는 대열에서 소외되고 자기 성격의 개선이나 발전을 기대할 수 없게 되어 더욱 외골수로 빠지게 된다. 이것도 역시 자기가 간택하고 증애하는 결과로 일어나는 현상이지 남에게 허물이 있는 것은 아니다.
위에서 말씀한 ‘상대방에게 허물이 있기도 하겠지만 많은 경우 상대방에 허물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사고의 허물에 의해 상대방에 허물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말씀은 불교의 인과응보설을 바르게 이해하게 하는 중요한 관점이다.
이러하기 때문에 간택하는 마음을 싫어하고 증애하는 마음을 없애기 위해서는 우리들의 오온심에 기록되어 있는 과거의 경험을 소멸하기 위해 참회하고, 복을 짓고, 도를 닦아야 한다는 말씀이다.
참회는 복을 짓는 뿌리이고, 복을 짓는 행위는 수행을 위한 뿌리이다. 즉 수행을 바르게 하기 위해서는 복 짓는 일부터 해야 하고, 복 짓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그 동안 남에게 도움이 되지 못하였거나 해가 되는 일을 한 성품, 말, 행동 등에 대한 참회가 있어야 한다.
참회를 통해서 복 짓는 일에 역행하였던 일을 다시는 하지 않음으로 서 복 짓는 일에 가속이 붙게 된다. 복을 짓고 수행하는 일에 근본이 되는 것이 내 마음을 믿는 신심(信心)이다. 인과응보를 믿고 제행이 무상함을 믿으며, 제법이 무아하다는 가르침을 내려주신 불법승 삼보를 믿는 마음이다.
복 짓는 마음이란 나를 위해 하는 모든 말과 행동이다. 전생에 좋은 일을 많이 했으면 그 과보로 금생에 복된 일이 많이 일어나게 된다. 건강 복, 부모 복, 형제 복, 친구 복, 스승 복, 관록 복, 명예 복, 재복, 사업 복, 부인 복, 남편 복, 자식 복, 불교를 만나는 복, 노래를 잘 부르는 복, 그림을 잘 그리는 복, 총명한 복 등등 수 없이 많다. 이것은 바로 우리들의 일상생활 자체가 복을 짓는 업이 되기도 하고, 무기이기도 하고, 또 악업을 짓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평소에 어느 쪽으로 복 짓는 일을 많이 하느냐에 따라 금생이나 내생에 그 과보를 받게 되는 것이다.
항상 남과 잘 사귀고 남에게 필요한 일, 좋은 일을 해 주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좋은 연을 많이 짓다 보면 선한 도반을 많이 만나고 훌륭한 스승이나 선배 또는 귀인을 만나 하는 일마다 잘 풀려가 더욱 좋은 일을 많이 할 수 있게 된다는 말씀이다.
남이 하는 언행이 나의 비위를 상하게 했을 때, 저 사람의 언행이 기분 나쁘다고 생각되는 즉시, 저 사람은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보다, 내가 어떻게 했으면 저 사람이 저런 언행을 하지 않았을까? 고 생각하는 마음이 간택이 없고 증애가 없는 마음이다.
상대방의 언행으로 말미암아 화가 났을 때, 자기가 낸 화를 정당화하려 하거나 변명하려 하는 것은 간택심과 증애심을 오히려 깊게 하는 결과를 낳게 한다.
그러므로 화가 난 것을 인지하는 즉시 마음 속 깊이 참회하고 복 짓는 일을 찾아 하면 화도 다스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간택심과 증애심도 점차 해소되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복 짓는다는 말씀이 우리들의 일상생활 밖에 있는 일이 아니다. 절에 와서 신도님들이나 불사를 위해 하는 여러 가지 봉사활동은 훌륭한 복 짓는 업이며, 예불에 참여하여 부처님께 공양 올리고 법문을 듣는 것 또한 좋은 복을 짓는 일이다. 부처님께 공양 올리고자 하는 마음이 곧 자기 마음을 가장 잘 다스리는 법이 되기 때문이다.
복을 잘 지어 부처님 법에 수순 할 수 있을 때 정(定)과 혜(慧)를 함께 닦아 탐욕심을 비워 선정을 이루고 무명을 밝히는 도를 닦고자 하는 마음이 일어나게 된다.
선종을 실천하는 최선의 방법은 착하게 좋은 일 하면서 살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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