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22: 지난 일이니
논어 팔일편 21장
哀公問社於宰我 애공문사어재아
宰我對曰 재아대왈
夏后氏以松 하후씨이송
殷人以栢 은인이백
周人以栗 주인이율
曰使民戰栗 왈사민전율
애공이 宰我(재아)에게 社(사)에 대해 물었다.
재아가 이에 대답했다.
하나라 사람들은 소나무를 심었고,
은나라 사람들은 잣나무를 심었습니다.
주나라는 栗을(율, 밤나무를) 심습니다.
이것은 백성으로 하여금 '전율(두려움)'을 느끼게 하려는 의도라 합니다.
子聞之曰 자문지왈
成事不說 성사불설
遂事不諫 수사불간
旣往不咎 기왕불구
공자께서 이를 듣고 말씀하셨다.
다된 일이니 말을 않겠다.
끝난 일이니 충고하지 않겠다.
지난 일이니 나무라지 않겠다.
지난 일이니
공자님은 제자들의 지난 일에 대한 질문에 이렇게 답하셨습니다.
다된 일이니 말을 않겠다.
끝난 일이니 충고하지 않겠다.
지난 일이니 나무라지 않겠다.
모든 지난 일에 이렇게 답하셨을 것 같지는 않고 그때 상황을 모르는데 뭐라고 하라고 마땅치 않았을 것 같습니다. 상황에 대해서 정확히 알았다면 뭐라고 말씀하셨을까요?
그래도 이렇게 말씀하셨을까요?
말을 하건 충고를 하건 나무라건 아마 변하는 것은 별로 없을 겁니다. 실수를 하는 사람은 같은 실수를 반복할 것이고 충고하는 사람은 같은 충고를 반복할 것이고.
어떡하면 이런 악순환의 반복을 막을 수 있을까요?
실수와 충고의 악순환이라는 윤회의 고리를 끊는 방법이 있을까요?
포기와 인정입니다. 실수를 하는 사람이 앞으로 잘할 것이라는 희망을 포기하는 겁니다. 대신 실수를 하면 도와주는 겁니다. 잘 해결하라고.
포기하고 실수를 하는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겁니다. 그 사람의 능력이 그것 밖에는 되지 않는데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리고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왜 충고를 하고 싶을까요?
화가 나서 그렇습니다. 그런데 왜 화가 날까요? 실수는 다른 사람이 했는데 화는 왜 내가 낼까요?
자신이 아는 사람이 더 잘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그리고 더 솔직히 말한다면 자신이 잘난 사람인데 자신이 그런 사람을 아는 것이 화가 나는 겁니다. 그리고 자신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도 화나고 한마디로 시건방진 겁니다.
현명하다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에 집중을 하지 말고 어떻게 해결할 건지에 집중을 하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무슨 일이 왜 어떻게 벌어질까요 집중을 하면 화가 납니다. 일이 이렇게 될 때까지 이렇게 바보처럼 있었다니, 왜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지 답답합니다.
우리가 이런 수준 밖에는 안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인정하면 좋겠습니다. 그렇지만 벌어진 일을 잘 해결하면 대단한 사람은 되지 않겠지만 괜찮은 사람 정도는 됩니다.
얼마전 법륜스님 즉문즉답에서 TK (대구.경북) 아줌마가 요새 분해서 잠을 잘 수가 없다고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질문을 했습니다.
평생 꼴통.또라이 소리들으면서도 모든 선거에서 1번을 찍었는데 박근혜대통령을 지금 보니 분해서 잠을 잘 수가 없다고 화가 나서.
법륜스님의 답은 길었지만 한 마디로 줄여서 이야기 하면 '잘나지도 않은 사람이 잘났다고 평생 살아서 그렇다고 그냥 평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그리고
'촛불시위에 나가고 싶으면 열심히 참가하면서 화내지 말고 민주주의도 배우고 즐기라고!'
별로 잘나지도 않은 사람들이 평생 잘난 맛에 삽니다. 그래서 화도 나고 짜증도 나고 답답하기도 합니다. 자신이 평범하다는 것을 받아들이면 화도 짜증도 답답함도 줄지 않을까요?
평범한 이유
어떻게 보면 나도 공범입니다. 대통령에 당선 됐을 때 혹시 친일.반공.독재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덧없는 꿈을 꾸었고, 몇년 동안 지속적으로 실수를 하고 있는데 잘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더 이상 희망이 없을 것이라는 것을 알지만 내가 뭐를 할 수 있을까 소시민의 자격지심에 빠지고.
공자님은 제자들의 지난 일에 대한 질문에 이렇게 답하셨습니다.
다된 일이니 말을 않겠다.
끝난 일이니 충고하지 않겠다.
지난 일이니 나무라지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