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병법 중에서: 풍림화산
일본의 전국시대 (센고쿠 시대)를 풍미하다
중국 천추전국시대에 비교 될만한 일본의 전국시대에는 병법을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특별히 손자병법은 최고의 병법및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의 책으로 대우를 받았습니다.
에토 막부시대가 열리기 전 일본의 전국시대일 때 도쿠가와 이에와스, 도요토미 히데요시, 오다 노부나가 연합군을 위협하는 가이의 호랑이라는 별명을 가진 다케다 신겐이 있었습니다.
전쟁에서는 무패였지만 53살에 나이에 급사를 해서 자신의 시대를 열지 못합니다. 그는 손자병법 군쟁편에 나오는 풍림화산처럼 전투를 해서 모든 다이묘들을 위협했습니다.
그렇지만 1573년 다케다 신겐이 급사하고 우에시기 겐신도 1578년 뇌출혈로 사망을 합니다. 그 후 오다 노부나가, 도요도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와스 순으로 일본을 통일하고 에토 막부시대가 열립니다. 그 중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다이묘들을 관리하려고 임진왜란을 1592년에 일으키게 됩니다.
130년동안 센고쿠시대를 거치며 일본의 군사력은 엄청나게 커지며 병법도 발전을 했을겁니다. 조선 건국이래 200년동안 평화를 맛보던 조선은 일본 군사력 앞에 무릎을 꿇게 됩니다. 그렇지만 조선을 지켜낸 이순신 장군도 손자병법.오자병법을 공부했을 겁니다.
풍림화산(風林火山)은 센고쿠 시대의 일본 무사인 다케다 신겐의 전술 정신을 나타내는 말이다.
'바람처럼 빠르게, 숲처럼 고요하게, 불길처럼 맹렬하게, 산처럼 묵직하게'라는 뜻으로, 병법에서 상황에 따라 군사를 적절하게 운용하여야 승리를 거둘 수 있다는 말이다. 중국의 대표적인 병법서인 《손자병법 군쟁편)》에서 유래되었다.
風:바람 풍
林:수풀 림
火:불 화
山:뫼 산
《손자》의 〈군쟁(軍爭)〉편은 전쟁에서 기선을 제압하여 승리를 취하는 방법에 대하여 논하고 있다. 그 가운데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병법은 적을 속여 세우고 이익에 따라 움직이며, 병력을 나누기도 하고 합치기도 함으로써 변화를 꾀한다. 그러므로
군사를 움직일 때는 질풍처럼 날쌔게 하고,
나아가지 않을 때는 숲처럼 고요하게 있고,
적을 치고 빼앗을 때는 불이 번지듯이 맹렬하게 하고,
적의 공격으로부터 지킬 때는 산처럼 묵직하게 움직이지 않아야 한다
(故其疾如風, 其徐如林, 侵掠如火, 不動如山).
(고기질여풍 기서여림 침략여화 부동여산)
숨을 때는 검은 구름에 가려 별이 보이지 않듯이 하되,
일단 군사를 움직이면 벼락이 치듯이 신속하게 해야 한다.
(難知如陰, 動如雷霆)
(난지여음, 동여뇌정)
우회하여 공격할 것인지 곧바로 공격할 것인지를 먼저 아는 자가 승리할 것이니, 이것이 군사를 가지고 싸우는 방법이다"
이러한 전술을 전투에서 적극적으로 응용한 사람이 일본 전국시대의 무장 다케다 신겐이다. 그는 이 전술에 감명을 받아 '풍', '림', '화', '산'을 한 글자씩 장식한 군기를 만들었으며, 이후 풍림화산은 그의 군대를 상징하는 말이 되었다. 신겐은 병으로 죽을 때까지 여러 전투에서 승리하였으며, 타격을 입을 만한 패배는 당하지 않았다고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풍림화산 [風林火山] (두산백과)
다케다 신겐 (일본 전국시대 통일의 길을 열다)
일본 전국시대의 무장. 시나노의 다이묘들을 제압해 통일한 것을 시작으로 영토를 계속 확장했고, 우에스기 겐신과 5차례에 걸친 격렬한 전투를 하기도 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노부나가 연합군과의 전투 중 급사했다.
본명은 다케다 하루노부이며, 신겐[信玄]은 불교에 입문하여 지은 이름이다. 1521년 12월 1일 지금의 야마나시현에 해당하는 가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전국시대의 다이묘인 노부토라이다. 13세에 처음으로 출전하였고, 16세 때에는 300명의 적은 인원으로 큰 성을 빼앗기도 하였다.
그러나 격렬한 성격으로 인해 아버지의 신임을 받지 못하다가, 1541년 가신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아버지를 스루가로 추방하고 정권을 획득하였다. 이후 지금의 나가노현에 속하는 시나노의 다이묘들을 차례로 제압하고 시나노를 통일하였다.
이로 인해 우에스기 겐신과 대립하게 되어, 1564년까지 총 5차례의 대전을 치른 끝에 승리하였다. 이 5회의 전투가 바로 유명한 가와나카지마전투로, 특히 4번째 전투는 일본 전사에서 전설적인 전투로 불릴 만큼 유명하다.
영토를 빼앗긴 오가사와라 나가토키, 무라카미 요시키요 군대와 싸운 이 전투에서 승세를 타기 시작한 신겐은 이후 스루가·미카와·코즈케 등지로 계속 영토를 확장하였다. 1569년에는 지금의 가나가와현에 있는 오다와라성을 포위한 뒤, 1571년 호조 가문과 강화를 맺었다.
그 무렵 오케하자마에서 이마가와 요시모토를 패배시킨 오다 노부나가와 결혼동맹을 맺었다. 그러나 이후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노부나가의 연합군에 맞서 대립하던 중, 1572년 미카다 가하라전투에서 연합군을 대파하였다. 이어 이에야스의 여러 성들을 잇달아 함락시켰으나, 1573년 초 노부나가와 대립하던 중 진중에서 병이 들어 급사하였다. 그 뒤 다케다 가문은 나가시노전투에서 노부나가에게 패한 뒤, 몰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일본 전국 통일의 길을 연 인물로, 손자병법의 풍림화산(風林火山)을 도입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일본 최고의 전략가, 가이의 호랑이 등으로 불리며, 일본의 민간설화나 연극, 소설의 주인공으로 많이 등장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다케다 신겐 [武田信玄(무전신현)] (두산백과)
센고쿠 시대 (일본의 전국시대)
일본 무로마치 시대 말기 15세기 후반부터 16세기 후반까지 군웅이 할거하여 서로 다투던 시대.
일본에서 아시카가 바쿠후가 집권했던 무로마치 시대의 말기에는 중앙정부의 권위가 서지 않아 군웅이 할거하며 서로 다투게 되었다. 이 시대에 지방장관격인 슈고, 그 대리인 슈고다이, 지역 호족인 고쿠진 등의 출신들이 센고쿠 다이묘로 거듭나 지방의 영주로써 중세적 지배구조를 점차 붕괴시키고 자신의 영지를 지역국가로 발전시켰다.
이들 지역국가는 일본 각지에 병립하였고 지역국가간에서 발생한 정치적 ,경제적 문제는 주로 무력으로 해결하였다. 군웅할거의 계기가 된 오닌의 난이 발발한 1467년경을 센고쿠시대의 시초로 잡고 있다. 그 종말은 제15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아키가 오다 노부나가에게 쫓겨나 무로마치 바쿠후가 멸망한 1573년경으로 보는 설과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전국을 통일한 1590년으로 보는 설 등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센고쿠 시대 [戰國時代(전국시대)] (두산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