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서양의 사단칠정논쟁 (경험론.합리론)
사단칠정 논쟁
조선 중기, 성리학자인 이황과 기대승 사이에서 일어난 인간의 본성에 대한 논쟁이다. 이황은 사단(四端)이란 사물의 이(理)에 해당하는 마음의 본연지성에서 발현되는 것이고, 칠정(七情)이란 사물의 기(氣)에 해당하는 마음의 기질지성에서 발현되는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기대승은 이에 대해반박하며 8년간의 논쟁이 시작되었다.
이황은 이(이성)과 기(경험)가 분리되어 있다는 것이고 기대승은 이.기를 분리시킬 수 없다는 겁니다.
이성적으로 보면 선과 악이 존재하게 됩니다. 좋은 것 나쁜 것 그렇지만 경험적으로 보면 좋고 나쁜 것은 없습니다. 상황이나 타이밍이 좋고 나쁨이 나타나게 할 수는 있습니다.
서양의 사단칠정 논쟁 (경험론.합리론)
유럽 대륙에 합리주의가 존재했다면 영국에서 경험론이 등장합니다. 영국 경험론은 비록 그 당시에 사용된 용어는 아니지만 17세기 초기 근대 철학과 근대 과학에서 파생되었습니다. 이 용어는 경험론의 창시자인 프란시스 베이컨과 합리론의 창시자인 르네 데카르트 사이의 차이를 묘사하기 위하여 유용하게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다음 세대인 토마스 홉스와 바뤼흐 스피노자는 각각 경험론자와 합리론자로 묘사됩니다. 존 로크, 조지 버클리, 데이비드 흄은 주로 18세기 계몽주의 시대 경험론의 주요 주창자이며, 존 로크가 일반적으로 경험론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르네 데카르트(프랑스어: René Descartes 1596년 3월 31일 - 1650년 2월 11일)는 프랑스의 물리학자, 근대 철학의 아버지, 해석기하학의 창시자로 불린다. 그는 합리론의 대표주자이며 본인의 대표 저서 《방법서설》에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는 계몽사상의 '자율적이고 합리적인 주체'의 근본 원리를 처음으로 확립한 것으로 유명하다.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1561년 1월 22일~1626년 4월 9일)은 영국의 철학자, 정치인이다. 영국 경험론의 비조이다. 데카르트와 함께 근세 철학의 개척자로 알려진다.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말을 한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종래의 스콜라적 편견인 '우상'을 배척하고 새로운 과학과 기술의 진보에 어울리는 새로운 인식 방법을 제창, 실험에 기초한 귀납법적 연구 방법을 주장했다. 그는 바른 지식을 갖기 위해서는 경험과 관찰을 중히 여기는 경험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사물을 하나하나 확인하여 마지막으로 근본 원리를 찾아내는 방법, 곧 귀납법이 가장 바른 학문의 방법이라고 하였다.
사단칠정 논쟁의 발전
조선에서는 기대승의 관점은 이이에게 전수되고 이황의 관점은 사림에서 유지가 됩니다. 서로 경쟁.발전을 하며 성리학이 정치.과학 등에 도움을 주고 있었는데 이이의 사망 후 경험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험주의자들이 이성과 이론을 중심으로 하는 사림에 밀리며 조선은 꽅통 수구보수로 변하게 됩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당해도 이론만을 중시하면서 조선은 침몰하게 됩니다. 왕의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무슨 옷을 있어야 하나, 어떻게 입어야 하냐 며칠 장을 지내야 하냐 라는 것으로 시간을 낭비하며 현실을 무시하며 정치적인 투쟁을 일삼습니다.
합리론과 경험론도 경쟁을 하며 발전을 하며 유럽의 과학은 눈부신 발전을 하며 동양을 묵사발로 만들게 됩니다. 대포와 화약은 중국으로 시작돼서 유럽으로 넘어가게 되는데 경쟁이 없던 중국은 대포와 화약이 대량살생을 유발해서 될 수 있으면 자제를 했는데 서로 전쟁을 일삼던 유럽은 엄청난 대포와 화약으로 무장한 배로 중국을 약탈하게 됩니다.
이론적으로는 대량살상무기는 좋지 않은 것이지만 그런 무기가 없다면 항상 적에게 당할 수 있다는 경험을 무시하게 됩니다.
유럽 변방에서 무시당하고 있던 프러시아가 통일을 이루면 독일의 이마누엘 칸트는 근대 철학을 정점에 올려놓게 됩니다.
이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년 4월 22일 ~ 1804년 2월 12일)는 근대 계몽주의를 정점에 올려놓았고 독일 관념철학의 기초를 놓은 프로이센의 철학자이다.
칸트는 21세기의 철학에 까지 영향을 준 새롭고도 폭 넓은 철학적 관점을 창조했다.
그는 또한 인식론을 다룬 중요한 저서를 출간했고, 종교와 법, 역사에 관해서도 중요한 책을 썼다. 그의 탁월한 저서 중 하나인 《순수이성 비판》은 이성 그 자체가 지닌 구조와 한계를 연구한 책이다. 이 책에서 칸트는 전통적인 형이상학과 인식론을 공격하고 있으며, 칸트 자신이 그 분야에 공헌한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그가 만년에 출간한 다른 주요 저서에는 윤리학을 집중적으로 다룬《실천이성 비판》과 미학, 목적론 등을 연구한 《판단력 비판》이 있다.
토마스의 결론
너무 한쪽으로 치우치게 되면 침몰하는 배처럼 물에 잠기게 됩니다. 양쪽이 균형을 잡아야 합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경험주의를 중요하게 생각한 영국이 먼저 발전을 했습니다. 그렇지만 이론이 뒷받침이 없다면 경험주의는 공룡이 될지도 모릅니다.
철학은 경험과 이론이라는 양 날개로 발전을 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60% 경험주의 40% 합리론이면 좋겠습니다. 아무리 머리 속에서 완전한 이론을 만들어도 능력이 부족하면 현실세계에서는 헛것이 되기 때문에 여러 번의 시도도 필요하고 자신에 맞는 이론도 경험을 곁들여서 만들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시다시피 아무리 몇 십 번을 시도해서 경험으로 이론을 만들어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또 변화를 해야 하고.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은 교조적이 되면 안 된다는 겁니다. 이것만이 진실이고 진리라고 말하는 순간 망조가 들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독재가 편하고 민주주의가 피곤하기 하지만 독재가 시작되면 자신도 모르면서 어딘가는 썩고 있고 곧 냄새가 나지만 악취가 나기 전까지는 무시하고 살게 되는 것이 사람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양 날개의 중요성.
저의 글은 여기서 끝이고 밑의 글은 경험론과 사단칠정논쟁을 위키백과에서 퍼온 것들입니다.
경험론
철학에서 경험론(經驗論, 영어: empiricism)이란 감각의 경험을 통해 얻어진 증거들로부터 비롯된 지식을 강조하는 이론이다. 합리론(합리주의)이 인식 원천을 오직 이성에서만 추구하는 것과 대립된다. 경험론은 인식론으로 알려진 인간의 지식에 관한 학문들 중 가장 널리 퍼진 관점이기도 하다. 경험론에서는 관념의 형성과정에서 생득관념이나 관습보다는 경험과 증거, 특히 감각에 의한 지각을 강조한다.
같은 맥락에서, 과학철학에서의 경험론은 증거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과학적인 지식들, 특히 실험에 그 토대를 두고 있는 관점들을 강조한다. 이는 모든 가설과 이론들은 오로지 연역적인 추론이나 직관, 또는 계시가 아니라 자연계에서의 기존의 관찰에 반(反)하여 검증되어야 한다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과학적 방법의 기초를 이루고 있다. 따라서, 과학은 완전히 방법론적으로 실증적인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영국 경험론은 비록 그 당시에 사용된 용어는 아니지만 17세기 초기 근대 철학과 근대 과학에서 파생되었다. 이 용어는 경험론의 창시자인 프란시스 베이컨과 합리론의 창시자인 르네 데카르트 사이의 차이를 묘사하기 위하여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다음 세대인 토마스 홉스와 바뤼흐 스피노자는각각 경험론자와 합리론자로 묘사된다. 존 로크, 조지 버클리, 데이비드 흄은 주로 18세기 계몽주의 시대 경험론의 주요 주창자이며, 존 로크가 일반적으로 경험론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다.
조지 버클리는 인식 주체 바깥의 실체를 인정한 로크의 견해를 비판하며 경험론을 극단적인 관념론으로 변형시켰다.
17세기 초중기 대륙 합리론에 대한 응답으로, 존 로크는 《인간 지성론》에서 인간이 얻을 수 있는지식은 오직 아 포스테리오리(a posteriori)하다는, 즉 경험에 기반한다는 매우 영향력 있는 견해를 제시하였다. 로크는 인간의 마음은 감각 인상으로부터 파생된 경험이 쓰여지는 타불라 라사, 즉빈 서판, 또는 로크의 용어로는 백지(白紙)라는 가정을 견지하였다. 우리의 관념에는 감각과 반영이라는 두 개의 원천이 있다. 두 상황에서 구별은 단순 관념과 복합 관념 사이에서 만들어진다. 전자는 분석할 수 없고, 주된 성질과 종된 성질로 나눠진다. 주된 성질은 객체에 반드시 필요하다.특정한 주된 성질 없이 객체는 그것일 수 없다.
예를 들어, 사과는 그것의 원자적 구조의 배열로 인하여 사과가 된다. 사과의 구조가 달라진다면, 그것은 더 이상 사과가 아니다. 종된 성질은 우리가 주된 성질로부터 인식할 수 있는 종된 정보이다. 예를 들어 사과는 다양한 색, 크기, 감촉으로 인식될 수 있으나 그것은 여전히 사과이다. 그러므로 주된 성질은 객체가 무엇인지 결정하는 반면, 종된 성질은 그것의 속성을 정의한다. 복합 관념은 단순 관념을 결합하여, 그것을 본질(substances), 형태(modes), 관계(relations)로 나눈다. 로크에 따르면 우리의 사물에 대한 인식은 서로에 대해 관련되어 있거나 관련되어 있지 않은 관념의 인식이다.
사단칠전논쟁 발단
사단칠정논쟁은 추만 정지운의 책 「천명도설」의 한 구절로부터 시작된다.
四端發於理 七情發於氣 (사단은 이로부터 발하고 칠정은 기로부터 발한다.)
그는 이 책을 저술한 뒤 근처에서 살고 있던 이황에게 검토를 부탁했다. 이황은 이 구절을 발견하고서는 이와 기의 역할이 수동적으로 서술되어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다음과 같이 고쳐주었다.
四端理之發 七情氣之發 (사단은 이가 발한 것이고 칠정은 기가 발한 것이다.)
이렇게 고쳐진 구절의 의미에 대해 기대승이 이의를 제기하면서 일명 사칠변론이 시작되었다.
이황의 입장
이황은 기본적으로 이기불상잡(理氣不相雜)의 관점에서 이기론을 해석했다. 이기불상잡이란, 이는하늘의 이치이고 기는 그것의 구현 재료이므로 이 둘은 서로 섞일 수 없다고 보는 관점이다. 즉, 논리적 사유의 입장에서 형이상적인 이(理)는 형이하학적인 기(氣)와 서로 같지 않다고 보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이는 이이고, 기는 기이기 때문에 서로 섞일 수 없다고 보았다.
또한 사단은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으로서 그 발현의 결과가 항상 좋으므로 이에서 나오고, 칠정은 그 발현의 결과가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으므로 기에서 나온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단순히 사단은 이가 발해서 생기는 것이고, 칠정은 기가 발해서 생기는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기대승의 반박
그러나 기대승은 이황의 이런 관점에 대해 반박했다. 그는 이기불상리(理氣不相離)의 원리를 기본으로 이황의 주장을 반박했다. 그는 이황의 관점에서 사단과 칠정을 바라본다면 이는 성리학의 원칙을 벗어나는 것이라 생각했다. 성리학에서는 이와 기를 각각 그렇게 있도록 만드는 것과 그렇게있는 것으로 설명하는데, 이는 변하지 않는 하늘의 이치이고 기는 모든 변화의 근원임을 말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기대승은 변하지 못하는 이가 움직여서 사단이라는 감정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며오히려 사단과 칠정은 모두 기에서 나오는 것이라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와 더불어 기대승은마음의 이치는 사물의 이치와 같다는 성리학의 기본 입장을 언급하며 사물의 이와 기는 서로 떨어지지 않으며 작용하는데, 사람의 마음에서는 그 둘이 분리되어 작용한다는 것은 불가하다며 이황의입장에 대해 반박했다. 이런 입장에서 그는 사단과 칠정은 분리되는 감정이 아니며 칠정 중의 선한부분이 사단을 가리키는 것이라 결론지었다.
결론
이황은 8년간의 긴 논쟁 끝에 자신의 주장을 수정했다. 사단은 이가 움직이면 기가 따라서 생기는것이며, 칠정은 기가 움직이면 이가 따라서 드러나는 것이다. 즉 사단이란 이가 움직여서 기가 따라오는 것이고, 칠정이란 기가 움직여서 이가 그것을 조절하는 것이다. 비록 이렇게 주장을 수정하였지만, 여전히 이황은 사단은 선으로 귀결되고 칠정은 선, 악으로 모두 귀결이 가능하기에 그것의출발점을 살펴보면 서로가 다르다는 입장을 버리지 않음으로써 사단이라는 도덕적 원리가 인간의욕망과 관련된 칠정에 의해 오염될 수 있는 가능성을 차단해, 도덕적 원리의 절대성을 확립하여 주체적 인간의 확립과 사회질서를 수립하고자 했다.
한편 기대승은 성리학의 도덕적 측면보다는 관념적인 측면에서 용어의 불분명한 사용과 모호한 표현으로 인한 성리학 체계의 모순점을 합리적으로 해결하려고 노력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후에 기대승의 관점은 이이의 학풍으로 계승된다.
현대 심리학적으로 보면, 사단(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은 인간의 정신적 측면인이성적, 도덕적 판단을 말하고, 칠정(희노애락애구욕)은 신체적 변화를 동반하는 심리 측면인 감정혹은 정서를 말한다. 칠정이 인간의 감정 혹은 정서를 의미하는 것은 확실하고, 사단 또한 심(--지심) 즉 마음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사칠논변의 쟁점은 인간의 심리현상을 형이상학적인 이기론의 도식에 맞춰 설명하려는데서 발생한다. 그러나 이런 학문적 노력이 의미가 없는 지는 논의의 여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