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에 대해서: 부처님의 침묵
종교는 받아들임 같은데
요새 내가 접하는 종교는 받아들임이 아니고 극복주의 같습니다. 무엇을 이루고 싶고, 무엇인가 바꾸고 싶고, 가만히 있으면 안될 것 같고.
부처님은 명상과 요가를 통해서 깨달음을 얻고 싶었지만 잠시 마음의 평화를 주는 명상을 뒤로 하고 육체를 파괴하는 요가도 뒤로 하고 보리수 나무 밑에서 깊은 상념에 빠지게 됩니다.
12 연기론이라는 자신만의 삶의 이해를 얻고 득도를 하게 됩니다. 삶이란 '고' 라는 아주 특이한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나름대로 삶을 극복하려는 시도가 아니고 그냥 받아들였다고 여겨 집니다.
삶은 '고' 를 받아들이면 '도' 편해질 수 있다는 겁니다.
예수님도 비슷합니다. 십자가에 올라가서 하느님을 탓하기도 하고 자신을 버린다고 억울해 하기도 했지만 마지막에는 자신을 이용해 달라고 하느님을 받아들입니다.
예수님의 삶은 처음에는 투쟁이고 극복이었지만 마지막에는 '받아들임' 이었습니다.
세상이 힘들어지면 혹세무민하는 무리들이 생겨나고 천국에 보내준다는 사이비들이 등장합니다.
혹세무민 (惑 미혹할 혹 世 세사 사 誣 무고할 무 民 백성 민) :세상을 어지럽히고 백성을 속임.
혹(惑)은 정신을 혼란스럽게 하여 어지럽힌다는 뜻이고, 무(誣)는 없는 사실을 가지고 속이거나 깔본다는 뜻을 갖습니다. 따라서 이 표현은 그릇된 이론이나 믿음을 이용해 사람들을 속이고, 그들을이용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사이비(似而非) 종교 교주, 그릇된 주장을 내세우는 학자와 정치가 등이 모두 이런 행동을 하는 자들이라 할 수 있죠.
[네이버 지식백과] 혹세무민 [惑世誣民]
부처님의 침묵
어떤 바라문이 14가지의 형이상학적 질문을 한 적이 있는데 이에 대해 부처님께서는 가타부타 아무런 말없이 잠잠히 계셨습니다. 이를 무기답이라 하고 이때의 질문을 14무기라 합니다.
세계는 영원한가?
세계는 무상한가?
영원인 동시에 무상인가?
영원도 무상도 아닌가?
끝이 있는가?
끝이 없는가?
끝이 있는 동시에 끝이 없는가?
끝이 있는 것도 끝이 없는 것도 아닌가?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하는가?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가?
존재하면서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가.
존재하지도 존재하지 않지도 않는가?
개아와 신체는 같은가?
아니면 다른가?
이상이 14무기입니다.
부처님께서는 항상 지금 이 자리에서의 삶과 삶의 변화를 중요하게 생각하셨습니다.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지 못하는 형이상학적이고 논리를 위한 논리, 말을 위한 말에는 묵언으로 답하셨습니다.
공자님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 저승에 대해 묻는 질문에 '이 세상도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저승에 대해서 알겠냐고' 답하셨다고.
예수님도 천국에 대한 질문에 Now and Here에서 실천할 것을 강조하신 것 같은데 사이비들이 천국으로 사람들을 꼬십니다.
현실세상이 힘든 중생들은 사이비들의 유혹에 쉽게 빠지고.
IS의 천국
요새 IS의 테러가 세상을 어지럽히고 있습니다. 자살테러는 너무나 처참합니다. 전쟁과는 전혀 관계없는 시민들을 몇 십 명씩 희생시키고 가는 IS의 천국은 어떤 곳일까요?
몇 십 명의 아름다운 처녀들이 기다린다는 IS의 천국. 테러를 한 철없는 젊은이들은 좋겠지만 아름다운 처녀들은 무슨 생고생인지...누구는 좋고 누구는 고생하는 그런 천국이 천국일지!
자신들이 살고 있는 현실을 부정하고 천국만을 추구하는 삶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요?
천국을 만드는데 룰이 있을 것 같습니다. 경쟁도 할 수 있고 노력도 할 수 있고 창의력을 발휘할 수는 있지만 살생을 하거나 속이는 것은 안될 것 같습니다.
손자병법에 쓰인 전쟁에 대한 정의가 있습니다. '전쟁은 수단일 뿐이고 전쟁의 본질은 속임수라고 그리고 전쟁은 정치의 마지막 선택이지 목표가 아니라고' 그런데 자신의 천국을 만들려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지옥을 선사하는 그런 방법으로 천국으로 가려고 한다니...
현실을 천국으로
출근할 때 트레픽이 없으면 천국이고 길 막히면 지옥,
아이들이 공부 잘하면 천국이고 공부 못하면 지옥,
일이 잘 풀리면 천국이고 일이 안 풀리면 지옥,
먹고 살만 하면 천국이고 배 고프면 지옥,
잠 잘자고 몸이 개운하면 천국이고 몸이 불편하고 지옥
이정도 수준이 우리가 생각하는 천국과 지옥이라면 현실에서도 천국을 건설할 수 있습니다.
세상을 바꾸려고 하지 말고 조금씩 이지만 자신의 관념을 바꿔가는 겁니다. 관념을 바꾸는 방법은 단순합니다. 현실을 받아들이는 겁니다.
세상이 어렵고 복잡해지는 이유는 현실을 바꿔보려는 노력에서 발생합니다. 자신이 추구하는 이상과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이상이 다르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자신의 천국을 위해서 전쟁을 벌어야 할까요 아니면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주고 이해해주려고 노력하고 받아 들어야 할까요?
부처님은 자비로, 예수님은 사랑으로, 공자님은 호학으로, 소크라테스는 지혜로 현실을 받아들이려고 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사용해서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많이 부족하고 그저 평범하고 속 좁고 대충 대충 사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어 보입니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하려고 합니다. 기다리는 겁니다.
조금 수동적이긴 하지만 지금까지 사용하던 조바심과 서두름보다는 나은 선택 같습니다.
세상이 이해될 때까지 기다리는 겁니다. 일이 잘될 때까지 기다리는 겁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이해할 때까지 기다리는 겁니다. 때가 될 때까지 기다리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