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로마의 초대 황제
로마제국
로마 제국은 아우구스투스가 황제 지배 체제 혹은 원수정(principatus)을 사실상 시작한 기원전 27년부터 몰락까지의 로마를 일컫는다. 로마 제정 시대의 종식은 395년 동서 로마의 분할, 476년 서로마 제국 멸망, 1453년 비잔티움 제국 멸망 등 관점에 따라 다르게 볼 수 있다.
로마의 1200년 역사는 3번의 변화로 나눌 수 있습니다.
로마 왕정: 기원전 753년부터 공화정까지 250년
공화정: 기원전 509년부터 500년
로마제국: 아우구스투스부터 서로마 제국 멸망 476년까지 500년
왕정이 몰락하여 공화정으로 이행하는 과정은 로마사 연구의 주요 쟁점이다. 고대 전승에서는 마지막 왕 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스가 전제적인 통치를 일삼고, 그의 아들이 다른 남자의 정숙한 아내 루크레티아를 겁탈하여, 수치심에 루크레티아가 자결하자 폭력 혁명이 일어나 왕조가 무너지고, 공화정 정부가 수립되었다고 전한다.
로마 공화정이 제정으로 이행되는 정확한 시점은 해석하기 나름이다.
역사가들은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종신 독재관에 오른 기원전 44년, 마르쿠스 안토니우스가 악티움해전에서 패배한 기원전 31년, 로마 원로원이 아우구스투스에게 특별한 권력을 부여한 기원전 27년 등을 공화정이 종식된 시점으로 제시한다.
또 로마 공화정은 마리우스와 술라의 패권내전 그리고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의 제1차 삼두정치 그리고 옥타비우스와 안토니오우스의 제2차 삼두정치를 거쳐서 제정으로 변하게 됩니다. 영화와 소설에 수 없이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삶입니다.
크레오파트라가 등장하고 크레오파트라는 알렉산드로스의 부하였던 프톨레마이오스가 이집트에 세운 왕조의 마지막 파라오입니다. 크레오파트라 후 이집트는 세계역사에서 뒷전으로 물러가게 됩니다.
로마 제국은 지중해 동부의 헬레니즘 문화권과 이집트, 유대, 서부의 옛 카르타고, 히스파니아, 갈리아 등의 기존 영토에 이어 브리타니아와 라인 강 서쪽의 게르마니아, 그리스 북쪽의 다키아까지판도를 넓혔다. 이러한 패권주의는 로마 제국에 막대한 부를 안겨주었을 뿐만 아니라, 로마 제국의문화를 고대 지중해 세계에 널리 퍼뜨려, 로마 제국의 건축, 법, 정치, 종교 등이 전해지게 되었다.
아우구스투스(IMPERATOR·CÆSAR·DIVI·FILIVS·AVGVSTVS, 기원전 50년 9월 23일 ~ 서기 14년 8월 19일)
로마 제국의 초대 황제(재위 기원전 27년 ~ 서기 14년)이다. 또한 로마 제국의 첫 번째 황조인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의 초대 황제이기도 하다. 본명은 가이우스 옥타비우스 투리누스(Gaius Octavius Thurinus)였으나 카이사르의 양자로 입적된 후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Gaius Julius Caesar Octavianus, 라틴어: CAIVS IVLIVS CÆSAR OCTAVIANVS)로 불렸다.
기원전 44년 옥타비아누스는 자신의 외할머니 율리아 카이사리스의 남동생이자 자신의 외종조부뻘인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되자, 유언장에 따라 카이사르의 양자가 되어 그 후계자가 되었다. 기원전 43년, 옥타비아누스는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와 함께 군사 정권인 제2차 삼두 정치를 열었다.
삼두 정치를 행한 집정관의 한 사람으로서 옥타비아누스는 효과적으로 로마와 속주를 지배하였고, 세력을 모아 히르티우스와 판사가 죽은 뒤 집정관에 재선되었다. 이후 제2차 삼두 정치도 깨지는데다른 집정관이었던 레피두스는 유배되고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는 기원전 31년 악티움 해전에서 진뒤 자살하였다.
제2차 삼두 정치의 붕괴 후 옥타비아누스는 대외적으로 로마 공화정을 부활시키고 정부에 관한 권한은 로마 원로원에게 주었으나, 사실상 권력은 그의 손에 들어가게 되었다. 유일한 통치자가 다스리지만 대외적으로는 공화국 형태인 정치 체제의 기틀을 다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껍데기만 공화국인 이 나라는 훗날 로마 제국으로 불린다.
황제권은 옥타비아누스 이전에 로마를 통치했던 카이사르와 술라의 독재권과는 전혀 달랐다. 옥타비아누스는 로마의 원로원과 시민들로부터 “독재권을 부여받았지만” 거절하였다. 법에 따르면 ‘존엄자’(아우구스투스)라는 칭호를 받은 옥타비아누스에게 원로원은 평생 동안 권력을 가지도록하였고 “호민관 권한”(tribunitia potestas)을 가졌으며 기원전 23년까지 집정관을 역임하였다.[3] 아우구스투스는 재정적인 성공과 원정에서 얻은 물자, 제국 전체에 걸쳐 맺은 여러 피호 관계(clientela), 군인과 재향 군인의 충성, 원로원에서 부여한 여러 권한과 명예 그리고 사람들의 존경을 받아 절대적인 권력을 누렸다.
아우구스투스가 가진 로마의 정예병 로마 군단 다수를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은 원로원에게 군사적인위협이 되어 원로원의 결정을 억압하였고, 군사적 수단을 사용하여 원로원의 정적들을 제거하여 원로원이 자신에 복종하게끔 하였다.
아우구스투스의 통치는 로마의 평화라 불리는 태평성대를 이루었다. 계속되는 변방에서의 전쟁과황위를 둘러싼 1년의 내전(기원후 69년)에도 불구하고, 지중해 세계는 두 세기가 넘게 평화를 지속할 수 있었다.
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제국의 영토를 넓혔으며 제국의 국경과 동맹국을 보호하였고 파르티아와 평화협정을 맺었다. 그는 로마의 조세 체계를 개선하였고 파발을 위해 육로 교통망을 구축하였으며 상비군과 소수의 해군 그리고 황제의 친위대인 로마 근위대를 창설하였다. 또한 로마에 경찰청과 소방청을 설치하였고 로마 시의 상당 부분을 재개발하였다.
아우구스투스는 죽기 전에 자신의 업적을 기록으로 남겼는데, 이것은 《아우구스투스 업적록》로불리며 아직까지도 남아 있다. 서기 14년 그가 죽은 직후, 원로원과 민회는 아우구스투스를 신으로선포하였고 로마인들의 숭배를 받았다. 이후 모든 로마 황제들이 그의 황제명인 ‘아우구스투스’와 ‘카이사르’를 이름으로 썼다. 또한 그를 기념하기 위해 기존의 "여섯 번째 달"(Sextilis)을 "아우구스투스"(Augustus)로 바꾸어 불렀다. 그의 황위는 의붓아들이자 양자인 티베리우스가 물려받았다.
로마 왕국
왕정 시대의 고대 로마를 일컫는다. 로마는 전통적으로 기원전 753년에 창건되었다고 하며, 창건자 로물루스 이래 왕정은 기원전 509년 공화정이 들어서기까지 이어졌다. 전승에 따르면 로마는 건국 이래 기원전 500년경까지 일곱 명의 왕이 통치했다고 전한다.
처음 네 왕은 라틴인과 사비니인 출신의 로물루스, 누마 폼필리우스, 툴루스 호스틸리우스, 앙쿠스마르키우스였다. 마지막 세 왕은 에트루리아인으로 타르퀴니우스 프리스쿠스, 세르비우스 툴리우스, 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스였다. 그리하여 이 시기는 종종 일인정 혹은 왕정 시기라 불린다.
왕정이 몰락하여 공화정으로 이행하는 과정은 로마사 연구의 주요 쟁점이다. 고대 전승에서는 마지막 왕 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스가 전제적인 통치를 일삼고, 그의 아들이 다른 남자의 정숙한 아내 루크레티아를 겁탈하여, 수치심에 루크레티아가 자결하자 폭력 혁명이 일어나 왕조가 무너지고, 공화정 정부가 수립되었다고 전한다.
그러나 고대 전승에는 개연성이 없는 내용이 많아 그대로 믿기 어렵다. 학자들은 몇 차례에 걸친군사적 패배로 사회ㆍ경제ㆍ정치적 쇠퇴 때문에 왕정이 몰락했으리라 본다. 당시 에트루리아 세력이 위축되었고, 사비니인 등 산지 부족들이 라티움을 침공한 사건도 이와 관련이 있다.
로마 공화정
고대 로마 시대에서 기원전 510년경 왕정을 폐지하고 이후 450여 년간 로마 정치를 이끌었던 공화정 정체와 그 정부를 일컫는다. 로마 공화정은 권력의 분리와 견제와 균형 원칙에 중점을 둔 복합적인 정치 체제였다. 오랜 세월 파트리키와 그 밖에 명문가 출신이 아닌 플레브스가 정치 투쟁을벌이면서 공화정은 발전했다. 공화정 초기에 로마는 왕정 시대에 기원을 둔 귀족들이 통치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귀족이 정부를 장악할 수 있게끔 한 법이 철폐되었으며, 그 결과 신귀족이 출현했다.
공화정이 출범하고 처음 2세기 동안 로마는 이탈리아 중부에서 지중해 세계 전체로 영토를 넓혔다. 기원전 3세기에 로마는 북아프리카, 이베리아 반도, 그리스, 갈리아 남부까지 정복했다. 이후 2세기 동안 로마는 오리엔트의 상당한 지역과 갈리아까지 지배하게 된다. 이 시점에서 공화정 체제는 제국주의로 변질된다.
로마 공화정이 제정으로 이행되는 정확한 시점은 해석하기 나름이다. 역사가들은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종신 독재관에 오른 기원전 44년, 마르쿠스 안토니우스가 악티움 해전에서 패배한 기원전 31년, 로마 원로원이 아우구스투스에게 특별한 권력을 부여한 기원전 27년 등을 공화정이 종식된 시점으로 제시한다.
로마가 이룬 수많은 법률 및 입법 제도는 유럽을 비롯한 세계 전역의 근대 국민 국가와 국제 기구에 그 자취를 남겼다. 또 로마의 라틴어는 유럽 여러 지역의 문법과 어휘에 영향을 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