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106: 동전의 양면에 대해서
새롭다는 것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것은 알고 있는 것에 다른 면을 보는 것이라고 합니다.
극복과 조화
기독교와 불교
기다림과 열정
자유와 평등
불행과 행복
무슨 차이야?
친하게 지내는 홍선배가 밥이나 한번 먹자고 전화를 했다. 이런저런 사소한 이야기들을 하던 중 나에게 질문을 하나 던졌다.
홍선배: 토마스! 불교와 기독교의 차이가 무엇일까?
토마스: 내가 아직까지 이해한 바로는 목적지는 같지만 가는 길은 다른 종교
홍선배: 길이 다르다, 어떻게…
토마스: 불교에는 살불살조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라) 라는 말이 있어, 무슨 말이냐 하면 스스로 깨우쳐야 한다는 이야기지
그렇지만 기독교에서는 신에게 자신을 온전히 내맡기지.
홍선배: 자세히 이야기해봐
토마스: 불교에서는 부처의 이야기도 고민을 해봐야 한다는 이야기지, 자신의 체험이 아니라면 고민을 해봐야 한다는거지. 부처도 끝없이 고민하여 원인을 찾아내는 연기설을 말씀하셨잖아. 그러니까 부처님의 좋은 가르침도 나의 고민이라는 과정을 통하지 않으면 자신의 것이 될수 없으니 살불살조 (부처도 죽이고 조사도 죽이고)의 과정을 통하라는 종교이고, 반면에 기독교는 예수가 고민을 다했으니 예수의 시스템을 온전히 받아들이라는 이야기지
홍선배: 그러면 기독교신자는 고민을 할 필요가 없나?
토마스: 이건 개인적인 생각인데! 기독교신자는 예수가 무슨 고민을 했는지 고민을 해봐야 하지 않을까? 고민을 하는 방법론이 성경공부인데, 신자들이 너무 글귀에 신경을 써서 뜻을 덜 생각하는 것 같해!
홍선배: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토마스 생각을 이야기해봐?
토마스: 만일에 내가 성지순례를 간다면 예수님이 40일동안 혼자서 고민했던 광야로 가서 하루라도 지내면 예수님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홍선배: 좋은 이야기네…
토마스: 불교는 부처님의 말씀이라도 각자 고민해보자는 것이고 기독교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만 어떤 고민을 통해서 그런 말씀이 나왔는지는 고민을 해보자는 것이니 가는 길을 다르지만 목적지는 같지 않을까해!
인생을 더 아름답게
홍선배와 또 이런 저런 이야기 중 요새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 에서 다루고 있는 동성연애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동성연애자가 피해를 끼치는 것도 아니고 나쁜 것은 아니지만 불편합니다. 불편하다는 것은 다르기 때문일겁니다.
불편하다고 해서 잊어버리지 말고 덜 불편해질때까지 아니면 익숙해질때 까지 가까워지는 습관을 들여야하지 않을까 합니다. 동전의 양면입니다.
불편한 것에 왜 익숙해지는 습관을 들여야 하냐고 질문을 던지신다면 대답은 이렇습니다.
신이 필요없는 것은 안만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일에 만들었다고해도 Natural Selection에 의해서 없어졌을겁니다. 나의 이해력으로는 이해가 안되는 무엇인가 있을겁니다. 그 무엇을 조금이라도 깨우치려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인정하는 것을 배워야 할것 같습니다. 그것이 인생을 더 아름답게 사는 방법이 아닐까 합니다.
세상에는 나와 다른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런 많은 것들을 다 무시한다면 인생을 사는 재미가 많이 반감될 겁니다. 다 필요하니까 신이 만드셨다고 생각하면 쉽지는 않지만 단순해집니다.
다른 종교, 다른 민족, 다른 직업, 다른 사람, 다른 성격 등등
동전의 양면 중 버릴 것은 없습니다. 동전은 양면이 있습니다. 그래서 동전입니다. 인생의 양면도 있습니다. 양지가 있으면 그림자도 존재한다는 간단한 진리. 역사가 있으면 신화도 있고…
과거가 햇볕에 바래면 역사가 되고
달빛에 바래면 신화가 된다.
소설가 이병주
보다 많은 실패와 고뇌의 시간이
비켜갈수 없다는 걸 우린 깨달았네
이제 그 해답이 사랑이라면
나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을 사랑하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