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100: 포용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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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100: 포용에 대해서

포용 (包容): 남을 너그럽게 감싸 주거나 받아들임. ‘감쌈’, ‘덮어 줌’으로 순화.

도덕경 16장의 중하반부

歸根曰靜, 是謂復命. 復命曰常, 知常曰明. 不知常, 妄作凶.

귀근왈정, 시위복명. 복명왈상, 지상왈명. 불지상, 망작흉.

귀근왈정 - 뿌리로 돌아가는 것을 고요함이라 하고

시위복명 - 이것을 제명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복명왈상 – 명으로 돌아가는 것을 그러함이라 한다

지상왈명 - 그러함을 아는 것을 밝음이라 한다..

불지상 - 그러함을 알지 못하면

망작흉 - 흉해지고 망할 것이라고 한다.

그러함을 행해야 밝음에 도달 할 수 있다고 한다.

(자신을 알려면 침묵을 수련하고 침묵을 배우면 진리에 도달하여 지혜로와진다)

知常容, 容乃公. 公乃王, 王乃天. 天乃道, 道乃久. 沒身不殆.

지상용, 용내공. 공내왕, 왕내천. 천내도, 도내구. 몰신불태.

지상용 – 그러함을 알면 모든 것을 포용하게 되고

용내공 – 포용하면 공평하게 되고

공내왕 – 공평하면 천하가 귀순한다

왕내천 – 천하가 귀순하면 하늘이 들어맞고

천내도 – 하늘이 들어맞으면 도라고 하고

도내구 - 도는 영원하다

몰신불태 – 몸이 다해도 위태롭지 않다

모든 것을 포용하면 그것이 도!

(지혜로우면 모든 것을 포용하여 천하가 자연스럽게 도에 이르고 영원하다)

진리를 모른다면

진리를 알아야 포용할 수 있는 그릇이 되고 모든 것을 포용하면 그것이 도가 된다는 노자 도덕경의 16장입니다. 그런데 진리를 모르면 어떻해 해야 할까요?

그냥 모르는 척하고 포용하면 될까요? 그랬다가 배탈나면 어떻하죠?

제 경험상 진리를 모르고 포용하면 배탈납니다. 실패라는 경험입니다. 죄송스러운 말씀이지만 실패를 모르면 진리도 모르고 포용은 더더군다나 모를겁니다. 될수 있으면 빨리 배탈나는 것이 좋습니다. 아직까지 배탈이 나지 않으셨다면 진리를 모르는 것이던지 재수가 좋던지 천재일 겁니다. ㅋㅋ

배탈이 나건 안나건 일단 포용을 해보면 됩니다. 포용은 컴퓨터용어인 Reboot처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일단 전원을 꺼서 모든 것을 잊어버리는 겁니다. 과거를 다 잊는 겁니다. 희노애락을 다 잊고 다시 시작하는 겁니다. 좋은 것은 남기고 나쁜 것만 버리면 좋겠지만 우리 기억이 그런 일을 허용하지 않으니 다 잊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포용하고자 하는 사람이나 물건에 대해서 Reboot 시작.

포용의 자세 1: 천주교 고백기도

(미사 중에 하는 참회 예절 기도입니다.)

전능하신 하느님과 형제들에게 고백하오니

생각과 말과 행위로 죄를 많이 지었으며, 자주 의무를 소홀히 하였나이다.

가슴을 치며 제 탓이요.

가슴을 치며 제 탓이요.

가슴을 치며 저의 큰 탓이옵니다.

그러므로 간절히 바라오니 평생 동정이신 성모 마리아와 모든 형제들은

저를 위하여 하느님께 빌어 주소서.

모든 것이 자신의 탓이라고 생각하며 다른 사람들을 원망하거나 비판하지 않는 겁니다.

포용의 자세 2: 노자 도덕경 49장 중에서

善者吾善之, 不善者吾亦善之, 德善.

선자오선지 불선자오역선지 득선

선한 사람에게는 선하게 대하고,

선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역시 선하게 똑같이 대해

모든 사람이 선함을 얻도록 하고

信者吾信之, 不信者吾亦信之, 德信

신자오신지 불신자오역신지 득신

믿음이 있는 사람에게는 믿음으로 대하고,

믿음이 없는 사람에게도 역시 믿음으로 똑같이 대해

모든 사람들이 믿음을 얻도록 합니다

미국의 Motivation Speaker, 작가, 심리학자인 Wayne Dyer는49장을 아래와 같이 해석했습니다.

Verse 49:

It is my choice to be kind, to those who are unkind

Because the nature of my being is kindness

And that is all I have to give away

한문을 모를 것 같은 웨인 다이어의 해석이 제일 맘에 듭니다. ‘드릴 것이 친철함 밖에는 없어 친철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친절한 것이 나의 선택입니다’

달라이라마는 아주 간단하게 자신의 종교에 정의를 말합니다. ‘My religion is kindness.’ 저의 종교는 친절함입니다.

한번 더 생각해보니…

모를때는 무식하니까 이정도면 대충 괜찮은 것 아니냐고 들이댔었는데 약간 알고나니 알면서 실천을 못하고 있으니 더 불편하고 많이 창피합니다. 포용해도 될뚱말뚱인데 조금 불편하고 짜증난다고 포용은 커녕 걷어찹니다.

요새 며칠 마음이 많이 불편했습니다. 누가 저에게 조금 불편한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내가 잘못 이해했다는 이야기였는데 그분의 이야기가 불편했다기 보다는 저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었는데 기대 밖으로 불편한 이야기를 들어서 내 자신에게 불편했습니다.

그리고 속이 불편한 자신이 불편해서 조금 더 생각을 했습니다. 생각해보았더니 내가 마음대로 생각하고 결정을 했다는 결론이 났습니다. 포용이라는 것은 나의 철학을 실천하는 것이 아니고 상대방의 철학으로 세상을 보는 것인데 당연히 나의 철학이 옳다는 교만이 넘쳤었나 봅니다. 아직 많은 것을 포용하기에는 그릇이 작아서 많이 불편합니다.

Reboot을 해서 나의 경험을 잊어버렸어야 했는데 그리고 그냥 상대방의 말대로 해주었어야 했는데Reboot을 안했더니 습관적으로 행동했습니다.

아침마다 일어나서 Reboot을 해서 백지를 만들어야 할텐데…백지에 매일 새로운 것을 적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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