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시리즈 글은 지난여름 @thinky가 세계적 미술행사인 카셀도큐멘타 2017과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 2017을 관람하기 위해 유럽을 방문하며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쾰른, 뒤셀도르프, 뮌스터, 카셀, 그리고 체코의 프라하를 경험했던 여행기 입니다.
물론 길지 않은 일정에 독일의 모든 박물관, 미술관을 들릴 수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각 도시의 대표적인 미술관 몇 군데를 둘러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여행기가 스티미언 분들 중 독일 여행을 계획하시는 분들이나 독일의 문화예술 현장에 관심이 있는 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문화, 예술 분야의 관심을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취지로 쓰게 되었습니다.
먹방이나 여행의 에피소드 보다는 박물관, 미술관, 갤러리 등 소개 중심으로 쓸 예정이니 관심 있는 분들의 응원 부탁드리겠습니다. 미리 감사드려요 :)
며칠간의 빡빡한 일정으로 지친 저희 일행은 약간 늦게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호텔에서 제공하는, 간단하지만 정말 정성스럽고 맛있었던 식사를 마친 뒤 K21 미술관으로 향했습니다. 1980년대 까지의 근대 작품들이 있는 K20과는 달리, 현대미술관인 이곳에서 실험적 현대미술 작가들의 작품들을 관람하였습니다. 전시된 작품들은 현대적이지만 여기도 건물은 중세 느낌이 나네요.
기획전으로 K21 아티스트의 공간 Künstler-räume 전시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2018년 3월까지 계속된다고 하네요). 2010년부터 미술관에서 진행해 온 전 세계 작가들의 포럼을 기반으로 3개 층에 위치한 22개의 방을 현대미술 작가들에게 제공하여, 각각을 작가의 공간으로 설치, 1년간 진행하는 프로젝트 전시라고 합니다. 멋진 설치작품들이 많이 있었는데, 코소보 출신의 살리후Leunora Salihu 작가의 나무 계단 작품과 파멜라 로젠크란츠Pamela Rosenkranz의 “아마존”이라는 푸른 방 안에 LED와 정글 속 음향을 설치한 작품이 기억에 남습니다.
파멜라의 작품은 지금 제가 대문으로 쓰고 있는 푸른 배경의 출처 사진입니다 :)
마지막으로 토마스 사라세노Tomas saraceno의 유명한 설치미술인 궤도 속에서 in orbit을 체험(?)했습니다. 거미줄로 제작한 공간 드로잉을 기반으로 K21 천정 부분에 거대한 그물을 설치하여 그물로 된 공간을 경험할 수 있도록 제공합니다. 건물 전체가 4~5층 높이로 고층 건물은 아니었지만, 워낙 한 층의 높이가 높은데다, 건물의 중앙 부분은 1층부터 천정까지 뻥 뚫려 있었는데요. 밑에서 보기에는 만만해 보였지만 막상 그 높이에서 그물 위를 걸어 다니자니 다리가 후들거리더군요. 여기에 올라가려면 만약의 위험을 감수하겠다는 서약서를 쓰고, 모든 소지품은 사물함에 넣은 뒤 안전복과 안전화를 신은 상태에서만 올라갈 수 있습니다. 거미가 느끼는 공간은 이런 것일까, 새삼 다른 관점으로 생각해 보게 됩니다.
미술관을 나와 점심 식사를 하느라 식당이 많은 라인 강변의 거리를 들렀습니다. “하이네 생가 Heine Haus”에 들려보고 싶었는데, 하필 주말이라 문을 닫아서 밖에서만 예쁜 서점같이 운영되고 있는 모습을 구경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뒤셀도르프 외곽의 남쪽에 있는 작은 도시인 노이스시에 있는 인젤 홈브로이히 미술관으로 향했습니다. 미리 방문했던 지인을 통해 “정말 아름다운 곳”이라는 약간의 정보만 받은 채로 도착한 이곳에서 저는 일종의 문화충격을 경험했는데요. 나중에 알고 보니 2004년 아트뉴스ARTnews(뉴욕에서 발행되는 100년이 넘은 권위 있는 시각미술잡지)의 ‘세계의 숨겨진 미술관 TOP10’에 들어있는 곳이었더라고요(별 순위가 다 있지요ㅎㅎ). 들어가는 입구의 티켓판매소 건물부터 그냥 시골 상점과 주차장 같은 느낌인데요. 이런 곳 어디에 미술관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꼭꼭 숨겨져 있습니다.
인젤 Insel 이라는 말은 독일어로 ‘섬’을 뜻한다고 합니다. 섬에 있어서가 아니라, 숲속과 늪지대에 설치한 미술을 위한 하나의 섬 같은 곳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는데요. (웃지 못 할 이야기로, 인터넷에 떠도는 몇몇 글에는 홈브로이히 미술관이 섬 위에 있다고 쓰여 있기도 하더라고요. 곳곳에 있는 호수 같은 늪에 수달도 살고 있고 그래서 오해를 하셨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 유명한 미술 컬렉터인 칼 하인리히 뮐러 Karl-Heinrich Mueller가 거대한 현대의 미술관들에 반발하여 자연과 함께 미술품을 감상할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하고자 1982년에 설립을 시작하여 1987년에 문을 열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말씀드린다고 해서 거대하지 않다고 생각하시면 그건 오산입니다. 넓이가 20ha라고 하니 20만 제곱미터, 평으로 바꾸면 6만평이 넘는 숲에 15개의 아름다운 건물로 조성된 자연과 함께하는 미술관입니다.
홈브로이히 미술관의 재미있는 특징 하나는 매우 불친절 하다는 것이었어요! :D
밝게 웃으며 드리는 이것이 무슨 말씀인가 하면, 미술관의 직원 분들이 불친절하다는 뜻이 아니고요(실제로 티켓을 끊어주시던 직원 분은 매우 친절하고 동네 아주머니처럼 농담도 잘 하셨어요), 입장할 때 지도를 하나 주는데 이 거대한 미술관에 대한 정보는 그게 전부라는 것이죠. 처음에는 너무 아름다워서 사진 찍느라 정신없고, 수달도 만나 인사를 나누며 자연을 즐기고 있었는데요. 두 번째로 만난 엄청나게 큰 전시장 건물에는, 들어가서 잠시 길을 잃기도 했는데;; 나중에 나와 건물을 한바퀴 돌면서 살펴보니 이 거대한 건물의 네 귀퉁이에 문이 한 개씩 있었고, 어느 것이 입구이고 어느 것이 출구인지 전혀 표시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무슨 영국 미로 정원의 새로운 버전을 보는 듯 하더군요ㅎㅎ
그 뿐 아니라 미술관이라면 응당 이곳저곳에 배치된 전시나 작가에 대한 텍스트를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전시장 안을 지키는 도슨트는 두말할 필요 없이, 한 명도 없고 말이죠. 일반적으로는 미술관이라는 곳에 가면 입구가 있고, 방향표시가 있고, 이 라인을 따라서 입장해라, 작품 가까이 가지 마라 등등 당연하게 느껴지는 그런 안내문구와 도슨트 분들이 있잖아요. 그런 것들에 익숙해져 있던 저로서는 마치 엄청나게 넓은 미로로 꾸며진 숲 속의 미술관에 버려진(?)듯 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런 불친절함에 놀라, 설마 웹사이트에는 뭔가 설명이 있겠지 하고 스마트폰으로 접속해 보았습니다만, 기본적인 미술관에 대한 설명과 취지 등을 제외하고는 영어 서비스가 되는 메뉴는 거의 없더군요! 그래서 처음엔 좀 기분이 안좋달까, 무섭달까 그랬는데요. 그도 그럴 것이 6만평의 숲속에서 진행되는 전시 관람 내내 15개나 되는 미술관 건물 내에서도 관람객을 한두 명 만나면 많이 만나는 거였고, 다른 건물을 찾아가는 숲길에서는 뭐... 그야말로 헨젤과 그레텔이 되어 숲 속을 헤매고 있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하지만 우리에겐 다행히도 간략하기 짝이 없는 독일어로 되어 있는 지도가 있었어요! 그래서 이렇게 두세개의 건물을 경험한 후에는 그 지도를 무슨 보물지도 인양 소중하게 간직하고, 용감하게 숲 속을 헤쳐 가며, 독일어 퍼즐을 풀어가며, 미지의 세계를 향해 모험을 떠났습니다! :D
그리고는 이내 알게 되었죠.
정해진 규칙에 방해받지 않고 자유롭게 자연과 예술을 즐기는 기쁨을 말이에요. 얼마나 유명한 작가의 작품인지, 얼마나 비싼 작품인지, 아프리카의 유물과 현대미술 설치작품을 어떤 순서로 봐야 하는지, 이런 정보들을 제공받고 그런 관점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작품 감상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도요 :)
중간에 화장실을 찾지 못해 잠시 불안함을 감출 수 없었지만, -_-;; 다행히도 대부분은 처음에 걱정했던 바와 달리 매우 순조롭게 지나갔습니다. 곳곳에 설치해 둔 조형물들도 자연과 구름과 조화를 이루었고, 특이한 구조의 아름다운 벽돌 건물들이 자연 속에 어우러져 방치되어 있는 이곳은 모든 것이 규정되어 있지 않아 완벽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술관 입장료는 다른 미술관에 비해 좀 비싼 편이었던거 같아요.(정확한 가격은 벌써 기억이.. ㅠㅠ) 그런데 거의 마지막 코스에 접어들었을 때 그런 생각 역시 참 어리석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본연의 자연 경관 속에 유리로 된 식물원 같은 카페테리아가 있었고, 그곳에는 관람객 모두가 자유롭게 즐길 수 있는 커피, 차, 물(물이 비싼 유럽에서 500ml 물병을 그냥 테이블 가득 세워놨어요. 가져가던 말던 알아서 해라 뭐 이런 식으로요 ㅎㅎ), 이곳에서 자연스럽게 자라난 못생긴 과일, 그 열매들로 만든 유기농 잼, 통밀 빵 등등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몇 시간을 헤매고 난 뒤 만나는 오아시스 같았달까요.
아! 그리고 반갑게도 사람들이 좀 모여 있었습니다!
오랜 시간을 걸어 다리가 아픈 탓도 있었지만, 시간이 멈춰있는 것 같은 이 곳에 오래도록 앉아서 거의 문을 닫을 시간 까지 자연을 만끽했습니다. 다행히 저희는 차가 있어 굳이 버스 시간을 맞추지 않아도 되었거든요. 분위기에 취해, 사진은 많이 못 찍었네요. 카페테리아 주변은 인스타그램빨 받는 스타일의 건물과 풍경은 아니어서(가 아니라 잘 찍지 못해서;;) 사진은 좀 그저 그렇네요. 게다가 시간의 정지를 경험하느라 그나마 딱 한 장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 글을 쓰는 지금이라도 당장 다시 가 보고 싶습니다.
참고로 코스 중간 중간에 이런 식으로 있는 어느 건물에도 아주 기본적인 편의시설조차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현대적 시설이 아닌 곳을 불편해 하시는 분이라면 굳이 추천 드리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자연과 예술을 동시에 사랑하는 분이라면, 기회가 되면 꼭 들려보시라고 강추합니다.
이번 독일 여행을 다녀온 뒤 어떤 곳이 가장 인상적이었느냐고 질문을 받으면 저도 모르게 인젤 홈브로이히 미술관을 가장 먼저 꼽게 되더라고요. 기존의 관념에 얽매이지 않는, 그들의 문화를 누리는 자신감이 배어나오는 멋진 곳이었어요.
또한, 자연 그대로 조성된 숲 속에 가급적 인간의 흔적을 최소화하고, 벽돌이라는 건축 소재를 이용해서 자연 속에 녹아들도록 배치하여, 인위적인 설명을 배제한 다양한 작품들을 감상하도록 유도한 홈브로이히 미술관만의 특이한 구성은, 자연과 문명이 조화를 이루는 모습을 제시한다는 생각이 들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전시가 그리 자주 바뀔 것 같지는 않아서 혹시 직접 방문하게 될 분들을 위해 가급적 전시된 작품들은 소개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홈브로이히를 잔뜩 칭찬하긴 했지만, 아직 여행지의 하이라이트인 뮌스터와 카셀이 남아있으니 남은 시리즈 글들도 그리 걱정은 하지 마세요! :D (하지만.. 막상 이렇게 말씀드리고 나니 제가 걱정이 되네요;;;)
이번 포스팅은 소개하고 싶은 사진이 좀 많아 스크롤의 압박이 있는 것 같네요. 언제는 안 길었던....
다들 주말 잘 보내셨는지 궁금하고, 또 새로운 한주가 기대 됩니다.
오늘도 감사드립니다 :)
[지난 시리즈 읽기]
[#1_thinky와 함께하는 독일여행기] 프랑크푸르트 _ MMK미술관 및 주변 거리
[#2_thinky와 함께하는 독일여행기] 프랑크푸르트 _ 슈테델 미술관
[#3_thinky와 함께하는 독일여행기] 쾰른 대성당과 콜룸바 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