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작가의 전시를 보러 갔다. 포장지에 쓰인 노랑 테이프, 부러진 의자, 돌맹이 등을 그린 그림들이 벽에 걸려 있거나 귀퉁이에 놓여져 있었다. 몇 점 되지도 않고 굉장히 작은 사이즈의 그림이 전부였지만 좋았다. 소외된 것에 관심이 간다는 작가의 마음이 꾹꾹 수십번을 칠했을 파스텔톤 붓질에서 느껴졌다. 작가를 만났고 그간의 안부를 서로 묻는 사이, 나는 모르는 작가의 지인들이 하나둘 자리에 도착했다.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도 모두 그림 그리는 작가들이었다. 이야기가 시작됐다. 컴컴한 저녁 7시, 서울의 외딴 언덕 위, 오래된 주택 2층, 노란 불빛 아래 모인 작가들은 무슨 이야기를 주고받는지 궁금한 사람이 있을까? 누군가는 들뢰즈 책을 꺼내와 밑줄 친 부분을 전시 작가에게 소개했고, 누군가는 '개인적인 생각'임을 강조하며 이 전시가 실험이 부족했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또 누군가는 작가의 앞으로의 계획을 들어보자고 제안하기도 했고, 또 누군가는 묘사가 많아질수록 그림을 대하는 태도가 관성적으로 변할 위험이 있다고 주장했다. 한 사람이 말을 끝내면 짧지만 고요하고 깊은 침묵이 흘렀다. 몇 번은 모두 웃는 분위기도 연출된 것 같은데 그게 어떤 대화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다리를 모았다가 풀었고 등을 벽에 기댔다가 떼기를 반복했다. 평소 무표정이 인상 좋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어온터라 괜히 양쪽 입고리를 살짝 올리기도 했다. 나는 작가에게 이 전시가 좋았다는 말을 했다. 우리는 감자탕을 먹고 헤어졌다. 작업실에 도착해서 해야할 일들을 하고 이 글을 쓰고 있다. 문득 생각해보니 바로 버스를 타지 말 걸 그랬다. 헤드폰을 끼고 음악을 들으며 천천히 걷다가 올 걸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