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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주제곡을 부탁받았다고?”
진하는 격한 반응에 대물은 고개를 끄덕였다.
젠이 카페에서 대물에게 건네준 명함은 바로 그녀가 촬영을 마친 영화 ‘루시 인 더스 페이스’의 음악 감독 연락처였다. 젠은 자신이 보컬로써 노래할 영화의 주제곡을 대물이 써주기를 원한다고 했다. 영화의 사운드트랙 녹음은 끝났지만, 아웃트로를 장식할 주제곡에 대해서는 최근에 기획이 잡혔다고 한다. 젠은 음악 감독에게는 이야기해둘 테니 뜻이 있으면 연락해서 진행해 달라고 했다.
대물은 헤어진 여자친구가 뜻밖에 내민 구원의 손길을 망설이지 않고 잡았다. 다음날 오전부터 음악 감독과 연락한 대물은 개런티, 납기일까지 구두로 협의했다. 젠이 손을 써 준 덕분인지, 의사 결정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리허설 룸에 모인 임프람 멤버들은 대물이 전해준 소식에 모두 반가워했다.
“드디어 재기의 기회가 오는거냐?”
“오빠, 이번엔 진짜 잘 해야겠다. 근데 그렇다고 대회 준비 제대로 안 하면 안 되는 거 알지? 이번에도 리프트가 이겼어. 4연승이래.”
대물은 미소지으며 대답했다.
“알아, 대회는 대회고 주제곡은 주제곡이야. 그나저나, 루디. 네 도움이 상당히 많이 필요할 것 같아.”
루디가 말했다.
“내가 먼저 맞춰 볼까? 프로듀싱이 필요하다 이거지?”
“전부 다. 사운드 디자인, 믹싱, 마스터링까지. 진하랑 상아도 가이드 레코딩을 도와줘. 주제곡으로 선정되면 저작권료는 밴드 수익으로 하자."
“정말이야?”
“팀이니까.”
멤버들의 눈이 빛났다.
“수익을 너무 기대하지는 마. 상징적인 의미가 더 중요한 건이라."
“물론 상징적이지. 정성들여 쓴 곡으로 옛 여자친구의 마음을 돌린다! 로맨틱하잖아?”
대물은 진하의 엉덩이를 걷어차고, 루디를 돌아보며 말했다.
“네가 원하는 스타일로 프로듀싱해. 단, AI 툴만 쓰지 마.”
“당연한 말씀을. 우리가 머릿수가 많으면 아예 스튜디오 원테이크 라이브를 하는 것도 좋을 텐데, 아쉽네.”
대물은 멤버들과 함께 몇 달 만에 신곡 작업을 시작했다.
‘뮤즈 챌린지’ 대회가 며칠 남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짧은 시간 안에 집중적으로 결과물을 만들어내야 했다. 대물과 임프람 밴드 멤버들은 곡 작업에 5일을 할당했다. 작곡, 작사, 레코딩, 마스터링을 모두 포함하기에는 빠듯한 일정이지만, 모처럼 찾아온 기회인지라 모두의 집중력은 최고조였고 효율을 끌어올릴 자신이 있었다.
멤버들은 음악 감독을 통해 전달받은 영화의 편집 전 영상과 해설을 첫 하루 동안 분석했고, 곧바로 컨셉을 잡기 위한 브레인스토밍에 들어갔다. 대물은 가사를 끄적이며 노트 위에 떠오르는 모티프를 기록해 나갔고, 진하와 상아는 악기를 들고 그 옆에서 멜로디 라인을 하나씩 제시하며 주제에 대한 해석을 덧붙였다. 루디는 연주자들이 사용할 음색 라이브러리를 선별해서 검토하며 다듬었다.
“완전 렘비언트한 스타일이네.”
대물이 기보한 악보를 시퀀서를 통해 확인하며 루디가 말했다.
“영화 제목이 ‘루시 인 더 스페이스’랬지? 사이키델릭한 느낌이 꽤 어울리긴 하겠다.”
대물이 루디 뒤에 앉아서 말했다.
“트랙 구성은 어떻게 할 거야? 대충 감이 와?”
“음, 사실 이 쪽 장르의 곡을 작업해본 적은 없어. 형한테 소스가 좀 있으면 도움이 될 것 같은데?”
대물은 주머니에서 디스크 하나를 꺼내 루디에게 건넸다.
“최근에 쓴 곡들 소스는 전부 들어 있어.”
루디는 디스크를 받아 마스터 스테이션에 꽂았다. 화면에 나타난 곡의 리스트를 보며 루디는 입을 벌렸다.
“곡을 엄청 썼다고는 알고 있었지만, 이건 어마어마하네. 이걸 다 나한테 열여 줘도 괜찮겠어?”
“짧은 시간 내에 완성도를 높여야 되니까, 최대한 서로 도와줘야지.”
대물은 루디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내 전성기 때 스타일로 잘 만들어 줘. 알겠지?”
주 테마와 구성작업이 끝나자, 나머지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루디는 대물이 넘긴 소스를 기반으로 각 트랙에 쓰일 악기들의 음색을 다듬었다. 듣고 있으면 꿈속을 헤맬 것 같은 매력적인 음색의 리듬과 백킹 트랙을 바탕으로 상아가 베이스 라인 녹음을 끝냈다. 3일째에 대물이 가사와 보컬 멜로디 작업을 마쳤고, 진하는 여성용으로 맞춰진 조성을 바꾸지 않고 음정 보정에도 의존하지 않은 채 가이드 보컬 녹음을 끝냈다.
5일째 되는 날, 루디의 마스터링이 끝났다. 음원을 감상한 멤버들은 자신감이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진짜, 끝내준다. 음악 엔진이 이런 곡도 쓸 수 있을까?”
“못 쓰겠지. 그런데 안 쓰는 걸 수도 있어. 사실 좀, 옛날 스타일이잖아? 그래서 영화하고 더 어울리기도 하고.”
“진하 목소리로 들어도 소름 돋는데, 젠이 부르면 정말, 상상이 안 된다.”
대물은 싱긋 웃으며 마스터본이 담긴 디스크를 지갑에 챙겼다.
“다들 수고했어. 지금 가서 전달해주면 일정은 칼 같이 지키는 거야.”
“그 음악 감독, 너무 꼰대 아냐? 메일로 보내면 되지, 마스터 음원을 직접 들고 찾아오라는 게 어딨어?”
진하가 불평했다.
“저 감독하고는 첫 작업이기도 하고, 보안을 워낙 중시하니까. 이따가 다 같이 저녁이나 하자고.”
“같이 나가자. 담배 좀 태우게.”
루시와 상아를 뒤로 하고, 진하는 대물과 함께 리허설 룸의 문을 나섰다. 계단을 올라와서 담뱃불을 붙인 진하가 대물에게 물었다.
“사실 노래, 되게 익숙하다.”
“눈치챘어?”
“다른 노래는 잊어도 아이즈는 잊을 수가 없지.”
대물은 진하가 내미는 담배를 받아 들고 불을 붙였다.
“멜로디도 완전히 다르고, 리듬하고 화성 전개도 달라.”
“그렇게 분석적으로 나온다면... 곡 구성이 비슷하고, 전조할 때 화성 진행은 완전히 같은 것 같던데? 사용하는 음색도 그렇고.”
“쓸데없이 귀만 좋아가지고.”
“대물하고 일하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지.”
진하는 담배를 깊이 빨고 연기를 내뱉으며 말했다.
“내 느낌이긴 한데, 차라리 아이즈를 주제곡으로 넘기는 것도 괜찮았을 것 같은데? 시간도 부족했잖아.”
“아이즈는 렘비언트 스타일에 있어서 주형 같은 곡이야.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난 그 곡만은 공개하고 싶지가 않아.”
“어련하시겠어.”
대물은 반쯤 태운 담배를 떨구며 말했다.
“아무튼. 그럼 갔다온다.”
“길 잃어버리지 마라.”
진하는 뒤돌아 계단을 내려가며 손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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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