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한 해 동안 정말 많이 언급된 단어 중 하나가 바로 '금수저, 흙수저'이다. 한 동안 굉장히 많은 커뮤니티에서 금수저 논쟁이 벌어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요즘도 금수저, 흙수저에 대한 얘기가 있긴 하지만 워낙 많은 이슈들이 있다보니 예전에 비해서는 뜸하다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오랜만에 헤드라인에 '금수저'가 들어간 기사를 만나서 오늘은 수저론에 대한 이야기를 간단하게 하고자 한다.
부모 재력=스펙…금수저 '高스펙' 만들 때 흙수저는 '알바'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sid1=001&oid=022&aid=0003184807
부모의 재력이 단순히 자식이 물려받을 유산과 평탄한 삶에만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니라 스펙 경쟁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내용의 기사였다. 사실 맞는 말이다. 부모의 재력에 따라 학력 수준이 달라질 수도 있고, 시간을 보내는 방식, 삶의 양식까지 달라질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금수저의 고스펙을 잘못됐다고 얘기할 수는 없다. 어쨌든 그들에게 주어진 환경에서 쌓은 것들이니 말이다. 그러나 주변 환경으로 인해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정해지는 건 참 안타까운 일이다. 그래서 다들 금수저를 부러워 하면서도 시기하는 것 같다.
금수저가 좋은 이유는 부모 혹은 조부모의 재력으로 인해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먹을 수 있고, 사고 싶은 게 있으면 살 수 있고, 배우고 싶은 게 있으면 배울 수 있는, 금전적 제약 없이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돈만 많았으면, 내가 조금만 더 여유 있었으면 훨씬 많은 걸 경험할 수 있었을텐데'라는 생각을 하다보면 내가 갖지 못한 것에 대한 동경이 생기게 되고, 내가 가지고 태어난 수저가 금수저가 아님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하고 싶은 걸 모두 하면서 사는 사람은 거의 없다. 수치적으로 봤을 때 충분히 여유 있는 집(예를 들면 소득 10분위-상위 10%)의 자식이어도 자기 스스로는 금수저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자신도 경제적 이유 때문에 무언가를 못해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기억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를 절대 금수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분명 누군가는 상류층에 속하고 누군가는 하위에 속할테지만 금수저라는 개념은 스스로를 다운그레이드 시키게 하는 힘이 있다. 자신의 수저를 저평가 하면서 환경 탓을 하게 만든다. 그래서 나는 수저를 이야기 하는 것을 굉장히 싫어한다.
어렸을 때 대기만성(大器晩成)이라는 사자성어를 배웠다. 큰 그릇은 만드는 데 오래 걸린다는 이야기인데, 즉 큰 사람이 되려면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어렸을 때는 '그릇'에 대해 이야기했다. 큰 그릇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배웠고, 우리는 큰 그릇을 갖기 위해 노력했다. 그릇의 멋진 점은 스스로 빚어서 만들어 나간다는 것이다. 노력으로 무언가를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릇을 잊고 '수저'만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
수저는 결국 밥을 먹기 위한 도구이다. 어떤 밥을 얼만큼 먹을 수 있는지는 수저가 아닌 '그릇'이 결정한다. 물론 좋은 수저를 가지고 있는게 유용할 것이다. 은수저를 가지고 독이 들었는지도 확인할 수 있고, 유사시에 금수저를 팔 수도 있을테니 말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릇에 들어있는 밥이 많아야 배불리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티스푼을 가지고 있어도 그릇이 크다면 결국 배불리 먹게 되고, 금수저를 가지고 있어도 그릇이 작으면 먹을 게 없다.
나는 금수저가 아니다. 객관적으로 모든 지표가 금수저가 아니라고 가리키고 있다. 혹자는 나에게 흙수저라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스스로를 흙수저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왜냐하면 나는 수저가 아닌 '그릇'이기 때문이다. 큰 그릇이라는 목적과 목표를 향해 나아가면서 수저라는 수단에 얽매이고 싶지 않다. 개인적으로는 금수저를 받는 것보다 큰 그릇을 만드는 일이 더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쉽지 않은만큼 더 재미있는 일이 분명하다.
아무리 이렇게 얘기를 해도 금수저면 많은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건 맞다. 태어나자마자 몇 백만원짜리 유모차에 누울 수 있고, 어려서부터 영어유치원이며 학원 등 교육의 기회도 제공받을 수 있고, 이게 학력과 스펙으로 이어지고, 심지어는 온실 속 화초처럼 아름답게 자라 온화한 성격을 갖는 데도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내가 가진 수저가 금수저가 아닌데, 백날 수저만 쳐다보고 있다고 답이 나오지는 않는다. 그럴 바에야 내가 만드는 그릇을 선택하는 게 합리적이지 않을까?
밥상에는 그릇도 있고 수저도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수저가 될 지, 그릇이 될 지는 각자의 선택이다. 그렇지만 분명한 건 누군가는 그릇이 되고, 누군가는 수저가 되고, 누군가는 컵이 되어야 밥상이 차려질 수 있다는 것이다. 요즘 세상은 오만가지의 수저로만 가득 차 있는 것 같다. 수저는 넘치는데 그릇이 없어서 먹을 게 없는 그런 세상으로 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내가 가진 게 흙이라면 수저를 만드는 게 아니라 그 흙으로 도자기를 빚어야 한다. 내가 가장 빛날 수 있는 길을 찾는 일이 우리를 '수저 논쟁'에서 자유롭게 해줄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