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벨로타고 제주일주-8 한라산 구상나무
영웅이나 위인은 살았을 때 보다 죽어서 그 가치를 인정받는 경우가 더 많다. 나무 중에도 그런 나무가 있다. 진달래밭 대피소에서 백록담 사이에서 군락을 이루어 살고 있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에서만 자생하는 구상나무이다.
살아서 100년, 죽어서 100년
내가 이 나무의 고사목을 처음 만난 것은 덕유산 등반에서 이다. 당시 기기묘묘하게 생긴 고사목은 주목이 죽어서 만들어진 것으로 착각했다. 살아있는 구상나무도 멋있지만 죽은 고사목도 마치 조각가 빚어 놓은 듯 아름답다. 덕유산, 지리산에도 일부 있지만 한라산에 있는 군락에는 비교가 안 된다.
2kg 이나 되는 DSLR 카메라를 목에 메고 가파른 산을 오르는 것은 속도를 엄청 떨어뜨리는 행위이다. 몽고병사처럼 속전속결을 좋아하는 나는 가능한 한 빨리 정상을 정복하는 게 잠재된 나의 질주본능을 충족시키는 또 하나의 시도이다. 그래서 산을 오를 때는 어지간하면 배낭에서 카메라를 꺼내지 않거나 잠깐 찍고 바로 배낭에 넣는 버릇이 습관화되어 있는데 여기서는 사정이 다르다.
푸른 구상나무와 고사목이 오케스트라처럼 절묘한 하모니를 이루는 풍경은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한라산이 만들어 낸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 주었다. 그 풍광이 카메라를 배낭에 넣을 시간을 주지 않는다. 광활한 자연을 작은 CCD 상에 담는 것은 조족지혈에 불과하지만 난 큰 화면을 조금씩 쪼개어 수백 장의 조각을 메모리에 담았다.
구상나무
소나무과에 속하는 구상나무는 피라미드형태로 곧게 펴진 늘 푸른 모습, 죽어서도 기묘한 형상 등을 간직해 ‘살아서 100년, 죽어서 100년’이라는 별명이 있다. 늘 푸른 바늘잎나무로 키는 10~15m이다. 한라산 구상나무 숲은 세계에서 가장 광활한 면적을 자랑하는 제주의 보물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 수년 전부터 구상나무가 시름시름 앓더니 말라 죽기 시작했다. 2006년 738.3㏊였던 숲 면적은 2015년 626.0㏊로 15.2% 감소했다. 10년 동안 구상나무 숲 112.3㏊가 사라진 것이다. 태풍에 따른 뿌리 흔들림, 가뭄, 겨울철 폭설 등 복합적인 기상이변으로 구상나무가 말라 죽은 것으로 분석됐지만 아직도 정확한 원인을 규명하지 못하고 있다. 한라산 구상나무숲 중 고사목이 차지하는 비율은 45.9%로 절반 가까이 된다.
구상나무는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에서 구상나무를 멸종 위기종으로 지정할 만큼 세계적인 보전가치를 지녔다. 이전 영실탐방로에 시험 식재한 구상나무는 현재 90%이상 생존율을 보여 구상나무 숲 복원 가능성이 높아져 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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