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공산 선본사

Words
344
Reading
2 min
Listen
Play
8y

image

팔공산 선본사

나는 소위 말하는 모태신앙을 가진 기독교인이다. 내가 원해서라기 보다는 독실한 믿음을 가진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 때문이라고 해야 맞을 것 같다. 그래서 불교에 대해서는 무속신앙의 일종으로 약간 경시하는 태도를 가지고 있었고 알려고 노력도 하지 않았다.

이차돈의 사(異次頓의 死)

그러나 나의 불교에 대한 관점을 바꾼 사건이 하나 발생했다. 기독교인이라면 절대 읽지 말았어야 할 금서 이광수의 소설 “이차돈의 사”를 읽고 말았다. 한참 감수성이 예민할 사춘기 시절에 읽은 그 소설은 불교에 대한 나의 관점을 완전히 바꾸어 버렸다.

이광수 소설 특유의 이루지 못할 달님, 평양공주와의 사랑이 가슴을 아프게 했고 불법을 전하여 백성을 제도하는 것이 신라를 구원하는 길이라는 신념으로 순교를 택한 스물한 살 청년 이차돈의 죽음이 안타까워 오래도록 가슴앓이를 했다.

특히 잘린 목에서 젖처럼 새하얀 피가 솟았다는 순교 장면은 지금도 너무 생생하다. 결국 이차돈의 순교로 신라 법흥왕은 불교를 받아드리게 되고, 진흥왕 때는 불교를 국교로까지 발전시켜 삼국통일의 정신적 기틀로 삼았다.

선본사(禪本寺)

경상북도 경산군 와촌면 대한동 팔공산(八公山)의 관봉(冠峯) 아래에 위치한 대한불교조계종 직영사찰로써 갓바위 바로 아래 위치해 있어서 소원성취를 바라는 많은 중생들로 항상 붐빈다. 특히 입시철을 앞두고는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이다.

인간은 물질 없이 살 수 없는 것은 자명한 일이나 속세를 떠나 스님이 된다는 것은 욕심을 버리는 일 일진데 소원성취를 원하는 연약한 중생들에게 기도축원비란 명목으로 헌금을 요구하는 행위는 좋게 보이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누구나 볼 수 있는 곳에 버젓이 놓인 기도안내 팻말은 가슴을 무겁게 했다.

신라시대에 극달화상(極達和尙)이 창건하였다고 전하지만 정확한 자료는 없다. 따라서 선본사의 정확한 창건 시기를 언급하는 것은 그 자체로 무리한 일이 되겠으나, 극달화상과 선본사 소재 유물에 대한 검토를 통하여 창건 시점을 유추해 볼 수는 있다.

우선 선본사의 창건주로 등장하고 있는 극달화상이라는 스님은 이른바 정사류(正史類)에 해당하는 역사서나 주요 불교 문헌에는 전혀 나타나지 않고 있으나 선본사와 인접해 있는 팔공산 동화사(桐華寺) 관련 일부 문헌에 그 법명이 보이고 있다.

선본사의 유물 가운데 특히 주목되는 것은 <선본사삼층석탑(禪本寺三層石塔)>(경상북도유명문화재 제115호)이다. 이 석탑은 8세기 전반에 조성된 것으로 추측되고 있으며, 팔공산에 산재하고 있는 석탑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에 해당하는 것으로 주목되는 유물이다




팔공산 선본사



이 글은 스팀 기반 여행정보 서비스

trips.teem 으로 작성된 글 입니다.

image

팔공산 선본사 | Ecenc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