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패케지 투어는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는다. 일정을 왜 그렇게 타이트하게 짜는지 이해가 잘 안 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짧은 시간 많이 보는 걸 선호해서 일 꺼라 추측한다. 언제 다시 올 기회가 없으니 가능한 한 많은 걸 보여주고 사진이라도 남기게 하는 수법이 잘 통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아시아나를 타고 온 우리 멤버는 26명이었지만 터키항공을 타고 온 13명과 합류하여 39명의 대 군단이 되었다. 가이드의 통솔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에는 부담스러운 인원이다. 30년 전에 스페인으로 이주해 왔다는 현지 가이드도 상당히 걱정하는 눈치였다.
그녀는 태권도 보급을 위해 혈혈단신 스페인에 왔다가 8살 적은 여기 사람과 결혼해서 아들을 낳고 한국에 있는 식구들을 모두 불러드려 귀화했다고 했다. 다시는 암울한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으리라 굳게 다짐했었는데 최근 조국의 발전상을 보면 기분이 묘하다고 했다.
6시 15분 모닝콜, 식사하고 짐 챙겨 출발까지 딱 한 시간이다. 난 이렇게 일정이 빠듯하면 항상 불안하다. 슬로모션 와이프가 이런 일정을 소화해 내기 아주 어렵기 때문이다. 짐을 대충 정리하고 시간이 없으니 빨리 식당으로 내려오라고 몇 번의 다짐을 하고 먼저 식당으로 갔다.
거의 식사가 다 끝날 무렵 내려와 접시에 엄청난 양의 빵을 담아 왔다. 그걸 시간 내에 다 먹기는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시간도 없는데 어떻하려고… 난 불안했다. 예전 같아서면 소리라고 질렀겠지만 강산이 몇 번 바뀌는 동안 내 교육방법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체험했기에 여행을 망치지 않기 위해서는 최대한 절제해야 했다.
첫 출발부터 39명이나 되는 멤버들로부터 따가운 눈총을 받는 환상이 어른거렸다. 방에 올라가 캐리어를 정리해 내려와 하염없이 음식을 즐기고 있는 와이프를 반 강제로 끌고 버스에 올라 타 위기를 간신히 모면했다.
7시 15분, 리스본에서 서쪽으로 30km 정도 떨어진 휴양지 카스카이스로 출발했다. 보슬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여행에서 날씨가 차지 하는 비중은 엄청 지대하다. 황량한 해변은 텅 비어 있었고 예전 군사요충지를 증명해 주는 요새 앞에서 부리나케 사진 한 장 찍고 바로 버스를 타고 로시우 광장으로 이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