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길다고 감동이 크고 긴 것은 아닙니다. 아름다운 영화는 짧아도 아름답고 사랑스럽습니다. 오히려 군더더기 없는 내용과 영상으로 단편 영화가 더 오래 기억되는 영화들이 있습니다. 좋은 단편 영화를 만나면 참 여운이 깁니다. 어제 정말 아름다운 단편 영화를 만났습니다.
시각장애인 인수(박형식 분)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사진동호회에 가입을 합니다. 복지관에 들어서서 지나가는 사람에게 모임 장소를 알려달라고 합니다. 인수의 부탁을 들은 수영(한지민 분)은 인수에게 자신의 팔에 손을 올리라고 합니다.
인수는 그 제안을 거절합니다. 약간은 보인다면서 혼자 올라가겠다고 합니다. 수영은 자신도 시각장애인이라고 소개를 하지만 시각장애가 시작된지 얼마 되지 않은 인수는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합니다. 사진동아리에 모인 시각장애인들은 자신들을 소개합니다.
인수는 시각장애가 시작된 지 3년이 지났다고 소개를 하고 수영은 7살부터 시각장애가 시작되었다면서 한쪽 눈은 시력을 잃었고 한 쪽 눈은 뿌옇게 보인다고 말합니다. 그래도 피구왕 통키까지는 봤다고 밝게 말합니다.
인수는 피아노 조율사이고 수영은 아로마 테라피를 만들고 감별하는 조향사입니다. 그렇게 인수와 수영 그리고 다른 시각장애인과 이들을 도와주는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첫 출사를 갑니다. 앞이 보이지 않거나 잘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들이 사진을 찍는 방법은 비정상인과 다릅니다.
먼저 찍고 싶은 피사체를 손으로 만지고 그 촉각을 느끼고 카메라를 들어서 촬영합니다. 카메라 앵글과 초점은 비장애인인 자원봉사자들이 도와줍니다. 그렇게 수영과 인수는 출사를 하면서 서로 가까워집니다.
수영은 인수와 출사를 다니면서 인수를 사랑하게 됩니다. 직접 말을 하지만 인수는 시각 장애가 아직은 몸에 맞지 않는 옷처럼 거북스럽기만 합니다. 좌절, 절망, 체념이라는 과정을 다 지나온 수영은 인수가 겪는 과정을 다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출사를 마치고 사진전시회가 시작되고 두 사람은 다시 만납니다.
짧은 영화라서 많은 이야기 복잡한 이야기가 담긴 영화는 아닙니다. 메인 스토리는 아주 단순합니다. 그러나 시각장애를 경험하지 못한 비장애인들에게 시각장애의 고통이나 현실을 아주 잘 담고 있습니다.
인수를 만나기 위해 남산공원에 도착한 수영은 지팡이를 꺼내서 계단을 내려가려고 하자 한 할머니가 덥석 손을 잡더니 도와주겠다고 합니다. 수영은 너무 놀라서 주저 앉습니다. 비장애인이 하는 흔한 실수이자 편견입니다. 도와주겠다고 말을 먼저 건네고 장애인이 도와주세요. 아니면 괜찮습니다에 따라서 도와줘야 하는데 다짜고짜 도와주려고 합니다.
이런 행동의 선의를 알겠지만 비장애인들은 장애인들에 대한 도움의 표현법을 잘 모릅니다. 도옴을 받고 안 받고는 장애인이 선택해야 합니다. 장애인은 무조건 도와줘야 해야 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무조건 해야 하는 것은 배려이지 도움이 아닙니다. 배려는 도와줄까요?라는 물음이지 도와줘야해!라는 명령이 아닙니다.
그래서 가끔 장애인들을 무조건 친구라고 생각하는 일방적인 시선이 담긴 장애우라는 단어를 쓰는 분들이 있습니다. 장애인들은 비장애인의 친구가 될지 안 될지를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장애우는 장애인은 무조건 우리들이 친구다!라는 명령이 담긴 단어죠. 물론 이해합니다. 선의라는 것을요. 그럼에도 배려심이 있다면 장애우 대신 장애인이 바른 표현입니다.
수영은 원하지도 않는 호의에 깜짝 놀라게 됩니다. 할머니는 열심히 살라면서 사탕까지 쥐어줍니다. 감독 허진호는 수 많은 시각장애인들과 만나면서 이 영화를 조율해 갔습니다. 감독은 말합니다. 시각장애인 분들이 시각장애가 삶이 되어서인지 생각보다 우울하거나 어둡지 않았다고요. 그렇다고 너무 가볍게 담지 않게 조율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영화 전체가 밝고 맑습니다. 그렇다고 시각장애가 쉽다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인수를 통해서 시각장애로 접어드는 고통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보이지 않는 세상에도 좋은 사람들은 많이 있다고 귓속말을 해줍니다. 인수는 그렇게 수영이 준 손전등을 켜고 어두운 세상을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갑니다
꿈도 보이지 않는 꿈을 꾼다는 수영이나 시각장애도 아예 안 보이는 것이 아닌 빛을 감지 하거나 부분만 안보이는 등 다양한 시각장애가 있음을 영화는 짧은 시간에 잘 담고 있습니다.
배우 한지민은 참 맑고 밝은 배우입니다. <대장금>에서 처음 봤으니 연륜도 참 많은 배우입니다. 드라마 쪽은 활약이 좋지만 영화 쪽에서는 아직 이렇다 할 흥행작이나 대표작이 없습니다. 조연으로 많이 나오고 <플랫맨>에서는 주연을 했지만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연기를 하는 듯한 모습이 아쉬웠습니다.
그러나 이 단편 영화 <두개의 빛 : 릴루미노>는 딱 한지민으로 나옵니다. 너무 예쁘게 나와서 순간 천사가 아닐까 할 정도로 눈 부시게 나옵니다. 게다가 시각장애인 연기를 엄청나게 잘 합니다. 한쪽 눈동자를 움직여서 실제 시각장애를 가진 분이라고 느낄 정도로 눈동자 연기와 전체적인 연기가 아주 좋습니다.
한지민 최고의 영화입니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더니 삼성전자가 만든 저시력자를 위한 VR기기와 앱 이름이 릴루미노라고 하네요. 저도 다 보고 나서 알아봤더니 이 영화는 삼성전자에서 저시력자를 위한 VR기기를 소개하기 위해서 만든 영화입니다.
아니 마케팅용 영화가 이렇게 잘 만들어도 되나요? 전 아무것도 모르고 봤지만 영화가 너무 좋습니다. 그렇다고 VR기기를 대놓고 홍보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저시력자들이 뿌옇게 보던 세상을 선명하게 보는 모습에 저게 가능해?라고 궁금했었네요.
<8월의 크리스마스>를 만든 허진호 감독은 한국을 대표하는 멜로 감성 영화를 잘 만드는 감독입니다. 허진호 감독의 감수성을 빼어난 연기를 한 한지민이 받아주네요. 참 아름다운 영화이고 맑고 밝은 영화입니다. 영화 보고 나면 기분이 아주 좋아진 나를 볼 수 있습니다.
무료 영화입니다. 유튜브에 올라온 영상을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