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리주 외곽 작은 마을에 사는 밀드레드(프란시스 맥도맨드 분)은 아들 로비와 함께 차를 몰고 집으로 향하다가 국도 변에 볼품 없이 서 있는 3개의 버려진 광고판을 봅니다. 다음 날 밀드레드는 5천달러를 내고 이 3개의 광고판에 광고를 합니다.
딸이 죽었는데 아직도 범인을 못 잡은거야? 윌러비 서장!
이 광고판을 동네 경찰인 딕슨(샘 록웰 분)이 보고 월러비 서장(우디 해럴슨 분)에게 연락을 합니다.
밀드레드는 몇 개월 전에 처참하게 죽은 딸에 대한 수사를 하지 않는 경찰에 분노합니다. 아무리 경찰서에 가서 따지고 빨리 범인을 잡으라고 해도 별다른 진전이 없습니다. 이에 이목을 끌기 위해서 집으로 가는 길가에 있는 옥외 광고판에 경찰을 비난하는 광고를 합니다. 바로 지역 언론이 이 내용을 보도합니다.
다음 날 지목당한 윌러비 서장은 밀드레드에게 사건을 방치하는 것이 아닌 마을 남자들 DNA를 어떻게 다 채취하냐며 그건 위법 행위라고 호소를 합니다. 그러나 밀드레드는 꿈적도 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암에 걸려서 몇 개월 살지 못한다는 윌러비 서장의 동정심 유도에도 꿈쩍하지 않습니다.
밀드레드의 이런 행동을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좋아하지 않습니다. 윌러비 소장은 매우 성실하며 온화하고 사리분별을 잘하는 존경받는 경찰입니다. 다만 밀드레드 딸이 험한꼴로 죽은 사건을 아직 해결하지 못했을 뿐이죠.
오히려 윌러비 서장의 부하인 딕슨 경관 같은 인종차별주의자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꽤 많습니다. 그렇다고 밀드레드가 윌러비 서장 개인을 비난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건을 처리해야 할 경찰 중에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 윌러비이고 윌러비가 아닌 경찰서장이라는 책임을 져야 할 자리에 있는 사람을 비난한 것입니다.
작은 마을이라서 마을 사람들을 서로를 아주 잘 압니다. 그러나 그 잘 안다고 하는 것들은 겉만 아는 것이죠. 그 겉만 알고서 사람을 판단합니다. 저 사람은 인종차별주의자, 저 사람은 흑인, 저 사람은 난쟁이, 저 사람은 소수자. 그렇게 서로를 구분 짓고 편을 갈라서 봅니다. 이는 미국의 뿌리 깊은 인종차별과 소수자 차별을 한 마을로 구현한 모습처럼 보입니다.
증오와 미움으로 세상을 내편, 네편으로 갈라서 보는 우리들의 모습과도 닮았습니다.
이중 세상을 가장 강한 증오심으로 보는 두 사람이 밀드레드와 딕슨입니다. 두 사람은 세상이 온통 잿빛입니다. 타협 보다는 주먹이 앞서는 분노심 그 자체입니다.
며칠 후 윌러비 서장은 3장의 유서 같은 편지를 쓰고 권총 자살을 합니다. 마을 사람들은 일제히 밀드레드를 쳐다 봅니다. 피해자 부모에서 갑자기 잠정적 가해자가 됩니다. 그리고 밀드레드 앞에 윌러비 서장이 쓴 편지가 도착합니다. 이후 영화는 거대한 이야기 소굴로 안내를 합니다.
작년 라라랜드처럼 아카데미 작품상은 이 <쓰리 빌보드>가 받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말 뛰어난 영화입니다.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셰이브 오브 워터>와 <쓰리 빌보드>는 흥미롭게도 편견과 증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다른 점은 <셰이브 오브 워터>가 성인 동화 스타일이라면 이 <쓰리 빌보드>는 하드보일드한 영화입니다.
윌러비 서장이 죽은 후 이 영화는 예측할 수 없는 스토리가 펼쳐집니다. 마치 윌러비 서장과 밀드레드가 체스를 두다가 중간에 체스판을 돌려서 상대방 말을 쥐고 후반을 진행하는 모습입니다. 이 놀랍고 기발한 전개는 영화의 주제인 편견과 증오에 대한 이야기를 아주 자연스럽게 풀어줍니다.
상대방을 미워하는 감정은 상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나오는 것도 있고 상대방의 입장이 되지 못해서 생기는 것도 있습니다. 영화 <쓰리 빌보드>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바라보게 하는 방식으로 서서히 자신이 가지고 있던 증오를 돌아보게 합니다.
이 증오심을 녹이는데는 윌러비 서장이 자신의 가족과 밀드레드 그리고 딕슨에게 보낸 3통의 편지가 동토의 땅과 같은 증오의 땅에 포용과 이해라는 씨를 심어줍니다.
우리 세상은 디즈니 애니처럼 우리편인 착한 주인공과 나쁜편인 악당으로 구분되지 않습니다. 나에게 못되게 구는 악마 같은 상사도 집에 가면 천사표 아빠가 됩니다. 세상은 선과 악이 디지털처럼 0과 1로 똑부러지게 구분되지 않습니다. 또한 모두가 선한 모습도 나쁜 모습도 같이 가지고 있죠. 다만 그 모습 중에 어떤 모습이 나에게 더 보여주느냐에 따라서 우리는 저 사람은 나쁜 사람 또는 좋은 사람이라고 구분합니다.
<쓰리 빌보드>는 등장하는 거의 모든 캐릭터가 선과 악의 양가적인 모습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밀드레드도 경찰들에게는 악당같은 아줌마이지만 딸의 죽음 앞에서 흐느끼는 연약한 엄마입니다. 모든 캐릭터가 선한 모습과 악한 모습을 동시에 보여줍니다.
이런 입체적인 캐릭터들이 서서히 변해가는 모습에서 많은 사유을 이끌어냅니다. 특히 영화 마지막 장면과 대사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영화 <쓰리 빌보드>는 증오는 또 다른 증오를 낳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주 간단하고 흔한 말입니다. 그러나 그럴 알면서도 우리는 증오하고 증오합니다. 그리고 그 증오는 자신까지 파괴합니다. 증오 뒤에 있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서 제대로 몰라서 생기는 편견에서 발화된 증오를 끄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정말 멋진 영화이자 뛰어난 영화입니다.
강력 추천하는 영화입니다. 배우들의 연기와 스토리가 잘 어울어진 웰 메이드 영화입니다. 별 5개 추천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