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mbnails_suitdiary]].png](https://i.ecency.com/p/2N61tyyncFaFnNFKLegVvzmsrMAExSDXzsHdqwaiSjpWynjoTegL2zDfigdknYoiwA62p1wTR3Sq27QQP2rULmABnHdog2y3rNGrE393ZMhauUpv5HLAz2yMizUd9fBXRgJunB7Gf6Jz?format=match&mode=fit)
❏ Korean
저는 현재 성추행 가해자와 그 가해자를 제대로 처벌하지 않은 회사를 상대로 싸우고 있습니다. 이 싸움도 이제 2년이 넘어가네요.

상대측 변호사로부터 첫 서면이 도착했다. 꽤 화나고 상처 받을만한 내용이라고 한다. 차마 읽지 못한 채 며칠간 미뤄두었다. 그러다 친구랑 용기를 내서 읽어보았는데 간단히 요약하자면,
"몰랐다, 부인한다, 싸운다"
기억도 못하는 걸로 나에게 3년을 시달렸으며 반성문을 작성하거나 위자료를 지불하려고 하는 등 죄를 인정하듯 행동했던 것은 회사가 시켜서, 혹은 내가 변호사로 겁을 줘서라고 한다.
"배영을 알려줄 때는 필요에 의한 '최소한의' 접촉이었고,
성적수치심을 느낄 정도로 싫었으면
반사적으로 저항해서 주위의 주목을 받았어야했다."
'최소한의'가 누구 기준인 걸까? 나에겐 그 '최소한의' 접촉이 집요했다. 그 집요함이 불편해서 가려는 사람을 붙잡아 다시 물 위에 눕히고 그 '최소한의' 접촉을 계속 한 것은 집요의 끝판왕이었다. 물론 바로 주위의 주목을 받을만한 반응을 할 수 있는 사람들도 있겠지. 하지만 나처럼 머릿 속으로 상황을 파악하려 애쓰고 어떻게 해야하는지 그 상황에서 무엇이 최선인지를 생각하느라 반응을 바로 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는 걸 정말 모르는 걸까, 아니면 알면서 일부러 이렇게 말하는 걸까? '다른 건 다 모르겠고 내 몸을 지켜야한다' 라고 심플하게 생각했다면 상대측 변호사 말대로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일을 크게 만드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다같이 놀러왔는데 그 사람의 못된 장난으로 인해 도대체 몇 명이 인상을 찌푸려야하는거야. 내가 그 상황을 부드럽게 넘어갔다면 피고가 그만했으면 될 일인데, 피고가 그만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기까지 왔다.
"원고는 패닉에 빠졌다고 기술했으므로 너무 놀라 물에 빠져도 이상하지 않다."
즉, 내가 큰 저항을 하지 않고 넘어갔으므로 패닉에 빠졌다는 것이 이상하다... 라는 건데, 나는 주위의 소리가 들리지 않고 머릿 속이 하얘지는 경험이 흔치 않다. 뭐지? 왜지? 왜 나는 다시 누워있는 거지? 이 개연성 없는 행동은 뭐지? 수많은 물음표가 머릿 속을 채웠다. 몸을 움직여서 여기를 벗어나야겠다, 또 붙잡으면 화를 내야겠다는 생각에 도달하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내 기준으로는 정상적인 사고와 판단이 바로바로 되지 않고 그 상황에 맞는 행동을 취하지 못한 것이 패닉에 빠진 것과 같다.
"차에서는 피곤해서 대부분 잤던 기억밖에 없다."
하...! 잤다니! 휴게소에서 자리를 바꿔 앉은 후에 피고가 잤는지 어땠는지는 모르겠으나, 휴게소에 도착할 때까지 자는 척 했던 건 오히려 나였다. 내가 싫다는 표현을 해도 계속해서 믿기 힘든 곳에 손을 가져다 대길래, 몸을 둥글게 말고 앞 시트에 밀착시켜 자는 척을 했다. 앞 좌석 사람들이 괜찮냐고 물어봤을 때 "멀미가 나서요. 좀 잘게요."라고 대답하자 옆에서 걱정하듯 말하며 내 등과 엉덩이 부분을 쓸던 사람이다. 더군다나 하차 후 내게 다가와 너무 귀엽다며, 최고라며, 고맙다며 악수를 청하던 사람이다. 잤던 기억 밖에 없다니. 가장 어이가 없는 부분. 시간이 너무 많이 흘렀으므로... 내가 당시 차 안에 있던 사람들에게 증언을 부탁하지 못할 거라고, 또는 그 사람들이 내게 협조해주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당시 차를 운전했던 사람이 같은 부서의 상사에게 "은주씨 괜찮아? 뒷자리 분위기가 좀 이상하던데..."라고 걱정하듯 물었다고 한다. 그 사람이 나를 위해 증언을 해줄까? 내가 회사에서 한창 힘들 때, 나를 응원하고 지지해주던 사람들마저 너무 많이 힘들게 했다. 그 힘든 길을 다시 함께 걸어달라고 하기가 어렵다. 당시 나와 자리를 바꿔서 승차해주고 그 이후로 내가 어떻게 망가져갔는지 가장 잘 알고 있는 선배님조차, 일상에 지장을 끼치니 증인이 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며 증인이 되어달라는 부탁을 거절했다. 나도 간곡하게 매달리며 부탁하지 않았고 "역시 그렇죠? 그럴 것 같아서 주위사람들을 다시 힘들게 하는 재판은 가능한 하고 싶지 않았어요."라고 말하며 프로듀스48로 화제를 돌렸다.
"차 뒷자리에는 한 명 더 앉아있었다.
만약 원고가 성적수치심에 의해 큰 소리로 저항을 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이 모를리가 없다. "
그래, 내 오른편에는 한 사람이 더 있었다. 그런데 그 남성의 얼굴도 이름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는 내 기억 속에서, 꿈 속에서 언제나 달걀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사람이 분위기를 무마시키려는 듯 웃으며 농담을 하던 것이 기억 난다. 차가 커브를 돌 때마다 그 사람이 나를 밀며 "휘이~ 쏠린다~ 쏠린다~"라고 장난을 쳤고 피고도 장단을 맞추며 본인의 체중을 내게 실었다. 나는 오랫동안 그 사람을 기억하지 못했다. 내게 있어서 오른편의 그는 없는 사람과 마찬가지였다. 나를 도와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몸을 말아 자는 척을 했고, 그는 더이상 장난을 치지 않았다. 피고가 내게 하던 행동을 가볍고 흔한 성적인 장난 정도로 생각했던 걸까.
내가 괜찮은 척을 했기 때문에 내가 괜찮았다고 생각할거야.
내가 괜찮은 척을 했기 때문에 그들이 모르는 것도 당연해.
내가 괜찮은 척을 했기 때문에 아무것도 증명할 수 없을거야.
내가 괜찮은 척을 했기 때문에 그것이 죄가 되지 않을거야.
그럼 내가 잘못한건가?
3년간 꾸준히 나를 괴롭히는 생각...
상대측 변호사가 말하듯 부자연스러울 수 밖에. '피고의 행위에 대해 어떻게 반응을 해야하는 건지'만 생각하면 되는데, 나는 그러질 못했다. '그 반응을 해도 되는 건지, 그럼 이 공간과 주위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건지, 이 사람은 도대체 왜 이러는 건지, 충동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상습범인 것인지, 이 사람에게 반성의 기회를 줘야하는 것인지, 이 행위에 대해 지금 당장이 아니라 나중에 1:1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인지' 따위를 생각했다. 나는 나 자신을 지키기보다, 가능한 역겹지 않은 상황을, 주위 사람들과의 즐거운 추억과 미래의 관계를 더 지키려고 했다. 그래서 그 사람만 알 수 있는 정도의 조용하고 소극적인 저항이 내게는 최선이었으며, 다른 사람들에게는 괜찮은 척 웃는 것이 최선의 방어였다.
"원고는 사건이 있다고 주장하는 2015년 7월 25일로부터
3개월이 지나 회사에 호소했다.
더군다나 원고에게
[불면증, 식욕부진, 집중력저하 등의 증상]
이 나타난 것은 2016년 2월경이다.
원고는 3개월간 사죄를 기다렸다고 주장하지만,
당시 원고가 저항하지 않았으므로 피고로부터 사죄를 받을리가 없다.
원고가 말하는 상황이 부자연스러울 뿐만 아니라,
원고가 그 사건을 말한 시기도 부자연스럽다.
따라서 사건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 상황이 자연스럽지 않아서, 내가 너무 오래 참는 바람에 적절한 시기에 말을 꺼내지 못해서, 사건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게 맞는 논리인 건가? 납득이 되지 않는다. 피고는 너무나도 믿기 힘든 행위를 했고, 원고인 나는 상황을 파악하고 생각을 하느라 대응하지 못했다. 웃지 않으면, 모른 척 넘어가지 않으면 내 일상이 부서질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참기 힘들만큼 괴로워서 더이상 웃지 못 했을 때 상태가 급속도로 나빠지며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되었다.
상대측 변호인은 모든 피해 여성들을 '피해자는 이래야 한다'로 일반화 시켜서 생각하는 걸까? 피해자가 스스로를 제때 지켜내지 못하면 가해자의 행동이 정당화 되고, 피해자가 참고 괜찮은 척 하는 것은 부자연스러우며 그로인해 피해사실조차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되는 것일까?
"피고는 2016년 4월 15일에 퇴직하였으며
그 이후 원고와 접근을 차단 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고는 2016년 5월 10일에
호흡이 불안해지며 의식을 잃는 등의 증상을 보였다.
원고가 그 이후로도 증상이 계속 된 것은 피고가 원인이라고 생각되지 않으며,
그에 의한 손해는 피고로부터 기인했다고 볼 수 없다.
더군다나 원고가 제출한 진단서도
사건으로부터 2년 반이 경과한 2018년 1월 3일을 시점으로 발행된 것으로
원고에게 발생한 손해가 피고에 의한 것이라기에는 무리가 있다.
따라서 원고의 손해와 피고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일절 존재하지 않는다."
아... 3월 말이 아니었구나? 정식으로 처리된 것은 4월 15일이었구나... 동료가 해준 말에 의하면, 그것도 해고가 아닌 자진사퇴라던데. 해고를 할 경우 회사에 패널티가 생긴다고 한다. 그래서 감봉을 시켜 더이상 다니기 힘들게 만들어서 자진사퇴 하도록 했다던데. 후배라서 그랬을까? 그가 한 짓에 비하면 너무 대응이 무른데... 그래서 나는 회사의 입장을 이해하면서도, 그의 행위에 대한 합당한 대응이 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실망을 했다. 그래서 괴로웠다. 사장님과 전무님이 집에 찾아와서 보장해주었던 휴가에 대한 결과는 마이너스가 표시된 월급명세표였다. 나는 이후의 증상에 대해서는 회사의 대응에 원인이 있다고 생각을 하는 편이다. 하지만 회사가 그런 대응을 하게 된 원인은 피고에게 있다. 피고가 내게 손을 대지 않았다면, 회사는 실망스러운 대응을 할 필요가 없었고, 내가 회사에 크게 실망할 이유도 없었고, 발병의 의한 큰 손해도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진단서는 최근 발행인이 2018년 1월 3일일 뿐, 첫 발행은 2016년 5월 30일이다. 따라서 상대측 변호사의 말은 똥이다.
"원고가 주장하는 행위는 존재하지 않으며,
원고에게 발생한 손해와 피고 사이에 인과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여성인 원고의 일방적인 주장을 근거로
남성인 피고가 퇴직하게 되는 등 불이익을 입었으며,
이것은 남성차별이다.
피고는 이런 부당한 차별을 용인할 수 없으므로
소송이 제기된 이상 철저히 싸울것이다."
맞고소? 남성차별? 하하.
나도 여성이 사익을 위해 생트집을 잡아서 무고한 남성의 인생을 망친다면 좋게 볼 수 없다. 그 또한 내가 원하는 사회가 아니다. 성차별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권침해를 논해야 하는 거 아닌가? 회사에서 피고에 의해 불안에 떠는 여성들이 없었다면 나는 나서지 않았을 것이다. PTSD가 발병하지 않았다면 피고를 회사에서 쫓아냈다는 것에 만족하고 소송까지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강하지 않았다... 발병의 원인은 피고와 회사에 있다. 내가 직접 싸우게 만들지 않았다면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무너지는 일 또한 없었을 것이다. 음, 확실히 상처를 후벼파는 내용이었다.
내가 승소하든 피고가 승소하든, 피고의 행위가 존재하지 않는 일이 되는 것이 아니다. 내가 괴로워했던 시간들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판결은 제 3자에게 맡겼고 나는 결과에 집착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내게 있어 이 재판으로 얻을 수 있는 소중한 것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 과거나 정신질환에 지지 않고 앞을 향해 한 발 한 발 내 딛고 있다는 것.
- 내가 살고 싶은 사회를 위해 싸우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
나는 일본이 좋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여성인권이 똥망이라, 싸우지 못하고 눈물로 베갯잇만 적시는 사람들이 많다. 왜 보호 받는 것을 체념해야하지? 응, 목소리 내고 싸우면 나처럼 되니까. 그래서 더욱 포기할 수 없다. 나 하나 싸우든 안 싸우든 사회가 크게 변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소수점만큼의 변화도 없다. 비트코인 매수하듯 깨작깨작 소수점을 찍어야 언젠가 1이 된다고 믿는다. 한국 사회나 일본 사회나 많이 닮아있다. 하지만 일본의 경우 싸우는 여성이 많지 않은 것 같다. 나는 한국인이지만 일본의 회사에서 일본인에게 인권이 침해되었으므로, 일본의 사회가 더 성숙하길 바라며 싸운다. 내가 포기하지 않음으로 인해 이 건에 연루된 모든 사람들이, 그리고 지켜보는 사람들이 조금이나마 이런 사회문제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가 된다면 기쁠 것이다. 그리고 만약 내가 승소한다면, 당시 지키지 못했던 자신을 겨우 지켜내었다며 안심하겠지. 판례를 하나 늘린 것으로 세상에 한 줄 공헌했다 느낄 것이다. 그것은 자존감의 튼튼한 기반이 되어주겠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따위 씹어먹을만큼 당당하고 씩씩하게 살겠지. 음, 승소하지 않아도 언젠가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라 믿지만, 가능하면 빨리 벗어나고 싶다. 변호사가 산출한 위자료 중 단 5000엔 밖에 받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승소를 한다면 좋을 것이다. 패소를 하더라도 과거가 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사회에서 살아가는 게 무지 기분 더러울 거야.
오랜만에 악몽을 꿨다. 사건 당일에 대한 것은 아니었고 사람에 대한 것이었다. 소름이 돋고 무서웠다. 알람소리에 눈을 떴다. 6시였다. 형부는 출근 준비를, 언니는 그런 형부를 챙겨주고 있었다. 나는 혼자 있기 싫어서 안방으로 들어가 곤히 자는 조카 옆에 붙어 누웠다. 이렇게 싸우는 거 보면 멘탈이 강한 것 같다가도, 자고 있는 네 살배기 조카에게 의지해야 할 만큼 겁이 많고 나약하다. 사람들 만날 땐 유쾌하고 밝은 것 같다가도, 혼자 있을 땐 우울하고 어둡다. 책을 읽다가 본 건데, 쌍둥이 자리는 원래 이중적인 면이 있다더라. 그렇다해도 너무 극과 극 아닌가? 넘나 혼란스러운 것.
❏ Japanese
私は現在、セクハラの加害者とその加害者をちゃんと処罰せず私をPTSDに至らせた会社を相手にして2年以上戦っています。
えーと、ポスティングが長くなりすぎたので、日本語での日記は別のポスティングに分けます。
#metoo #withyou
![[[under_fire]].png](https://i.ecency.com/p/6VvuHGsoU2QD2aHbJiivbVZV6nAA4BJrX2xi1YbtwHPdc8ePVzPiYrgCT48eyFNux7U5aofGXBuK4NhKi7rpvMNqqj3DLzoCJ8xJ1dGVjwXe5qma92bQQdezucteSa?format=match&mode=f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