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둘째를 데리고 병원에 갔습니다. 추석 무렵부터 기침을 해서 두 번이나 병원에 가고 약을 먹였는데도 감기가 낫지 않네요. 주로 아내는 오전에 시간이 있어서 어린이집 등원하기 전에 병원에 가고, 저는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점심을 먹은 후에 데리러 가서 병원에 갑니다. 사실 하루쯤 어린이집에 안가도 된다고 생각하는 편이어서 아예 안보내고 싶기는 한데 그러면 첫째가 자기도 집에 있겠다고 하니 일단 둘 다 어린이집에 보내는 게 속편합니다.
집 근처에도 소아과가 있지만 저는 이사 오기 전에 다니던 병원을 자주 갑니다. 홍제역 근처에 있는데 집에서 그렇게 멀지도 않고 유료이긴 하지만 바로 옆에 넓은 주차장이 있어서 편하기도 합니다.(홍제동 일대는 오래된 건물이 많아서 주차장이 있는 병원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런데 사실 오늘 아이를 데려간 K소아과가 홍제동은 물론이고 서대문구 전체에서 유명한 소아과입니다. 병원 문 열기 전부터 대기자 명단이 공책 한 페이지를 넘기고 2~3시간씩 기다리는 건 예사입니다. 허름한 건물의 입구에 항상 유모차가 서너 대씩 있고 건물 옆 약국에는 유모차를 맡겨놓고 가라는 호객성 문구가 붙여져 있습니다.
의원급 병원을 환자가 많이 찾는 것은 단 하나, 의사가 환자를 잘 본다는 이유일 것입니다. 여의사인 K원장은 다른 병원에서 감기라고 하는 것도 단번에 수족구라고 족집게처럼 알아맞히고, 환자가 너무 많아서 정작 자신은 링거를 맞으며 진료를 본다는 이야기가 근처 엄마들 사이에서 회자됐습니다. 처음에 아내는 그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집 근처라는 이유로 아이를 데리고 갔다가 K소아과는 기다리다가 아이가 없던 병도 생길 것 같다며 투덜거리기도 했습니다.
명성만 전해 듣다가 저도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갈 기회가 있어서 한참을 기다린 끝에 K원장의 진료 현장을 목도할 수 있었는데, 흔한 감기여서 그랬는지 다른 의사와 별다른 차이를 느끼지는 못했습니다. 굳이 다른 점을 찾는다면 그분의 말투가 매우 단정적이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는 조심스러운 말투보다 ‘이건 이래서 그렇다’는 단정적인 말투에 더 끌리는 것 같습니다. 제가 생각하건대 K원장의 가장 큰 장점은 풍부한 임상이 아닐까 합니다. 환자가 많이 찾아오니 독감이나 수족구처럼 아이들 사이에 유행하는 병을 빨리 알 수 있고 투약에 대한 피드백도 그만큼 빨리 얻을 수 있어서 정확한 처방이 가능한 것은 아닐까요. 그리고 아픈 아이를 둔 부모를 향한 단정적인 말투도 그분에 대한 믿음을 강화하는 데 일조하는 듯합니다.
그래도 저는 아이들이 아플 때 K소아과를 자주 갔습니다. K원장의 진료를 경험한 뒤, K소아과에는 K원장 말고도 부원장으로 불리는 의사 한분이 더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마도 몰려드는 환자를 혼자 감당할 수 없었던 K원장이 고용했을 그분에게는 거의 대기시간 없이 바로 진료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다른 소아과에 가더라도 20~30분은 기다려야 하는 것에 비하면 대기시간을 절약할 수 있었고, 한 병원이니 그분의 처방도 K원장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제도 저는 K원장 쪽에 끝이 보이지 않는 대기자 명단을 간단히 무시하고 부원장(그동안 사람은 한두 번 바뀐 것으로 기억합니다) 쪽에 아이 이름을 적고 곧바로 그분의 진료실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아이의 감기가 기관지염으로 발전한 것 같다며 당분간 약을 계속 먹여야 한다네요. 원장님이 보셨든 부원장님이 보셨든 오랜만에 아빠와 함께 K소아과에 가서 약을 처방받았으니 아이의 병이 빨리 낫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