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애호가인 친구는 음악 문외한인 나에게 많은 노래를 들려주었다. 사실 그 친구는 ‘프로그레시브 록’을 좋아해서 나에게도 그런 장르의 노래들을 들려주었는데, 그건 마치 피타고라스 정리도 모르는 학생이 미적분 수업을 듣는 것과 같아서 나에게는 그저 ‘시끄러운 소리’로 들릴 뿐이었다. 나에게 감흥을 준 노래들은 친구의 말을 빌리면 ‘소설과 같이 기-승-전-결이 있는’ 노래였다.
1학년 겨울방학 때 친구가 자취방에 놀러 와서 ‘Stairway to Heaven’을 들으면서 음악이 한 편의 소설 같지 않느냐며 동의를 구하기에 나는 그런 것도 같다고 건성으로 대답했다. 내가 그 노래에 호감을 보였다고 생각했는지 친구는 오래 듣고 줘도 된다면서 카세트테이프를 나에게 빌려주었다. 사실 처음 들었을 때 큰 감흥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데, 긴긴 겨울밤 자취방에서 뒹굴거리면서 여러 번 듣다 보니 나도 모르게 좋아하게 되었다.
이런 식으로 레드 제플린의 ‘Stairway to Heaven’ 퀸의 ‘Bohemian Rhapsody’ 스틸하트의 ‘She's Gone’ 같은 노래들을 친구 덕에 알게 되었고 좋아하게 되었다. 생각해 보니 내가 좋아하게 된 노래들은 대부분 ‘드라마틱한 전개와 절정’이 있었다. 하긴 위에서 언급한 곡들은 워낙 명곡으로 평가받고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노래들이어서 내가 좋아하게 된 데도 그리 특별할 것은 없었다.
그런데 듣자마자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필이 꽂힌 노래 중에 그렇게 유명한 곡도 아니고 장르도 메탈에 가까운(지금 검색해보니 얼터너티브 락, 프로그레시브 메탈, 메탈 발라드 등 사람에 따라 여러 장르로 구분해놓았는데 어떤 게 맞는지는 잘 모르겠다) 곡 하나가 있었으니, 크림슨 글로리의 ‘Lost Reflection’이라는 노래였다.
하루는 친구가 귀한 LP라면서 앨범커버에 괴상한 얼굴이 그려진(나중에 알게 됐지만 그 괴상한 얼굴의 킹 크림슨 1집이 프로그레시브 록 앨범커버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것이었다. 앨범에 수록된 ‘Epitaph’도 명곡이고 드라마틱하기는 하지만 ‘절정’이 없어서인지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았다) 킹 크림슨의 노래들을 들려주었는데, 그 옆에 크림슨 글로리라는 앨범이 보여서 친구에게 이 앨범은 안 귀하냐고 물어보았다. 친구가 그것도 귀하긴 한데 그렇게 유명하진 않다면서 한번 들어보겠냐고 하기에 ‘킹 크림슨’이 별로였던 나는 그러겠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듣게 된 ‘Lost Reflection’에 나는 완전히 매료되었다. 내가 곡이 끝나자마자 좋다고 하자 친구는 내가 노래를 듣고 바로 좋다고 말한 건 처음이라면서 너무나 기뻐하며 그 자리에서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해주고 가사도 따로 적어주었다.
나는 카세트테이프가 늘어질 때까지 그 노래를 들으며 가사를 보고 따라 불렀다. 그리고 언젠가 술자리에서 한명씩 돌아가며 노래를 부를 때 그 친구의 강력 추천에 힘입어 무반주로 부르기까지 했다. 노래방도 아닌 자리에서 팝송을, 그것도 ‘프로그레시브 메탈’을 부른 건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