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기억에
가장 좋은 열차는 새마을호이고,
보통 통일호를 탔으며
서민들이나 매일 출퇴근 하시는 분들은 비둘기호라는
일명 완행열차를 타고 서울을 다녀오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처음 비둘기호를 탔던 날이 바로
크리스마스 다음 날,
당시 대학 합격자 발표가 난 후
실패의 고배를 마신 후 당시 후기대학 지원도 안한채
바로 노량진행 비둘기호를 타고 새벽 하늘을 달렸던 기억이 납니다.
5월 민주항쟁을 위한 투쟁을 하러간다는
이미 대학에 들어간 친구들도 만날 수 있었고
매일 똑같은 시간대에 출근하시는 아저씨 아줌마들도 볼 수 있었습니다.
학원 수업 후에는
집에 가는 비둘기호 시간까지 한 두어시간 남는 시간을
노량진역 아래에 있던 서점에서 늘 책을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게 근 1년을 타고 나니
다시 비둘기호를 타고 대학에 다녔습니다.
사실,
주로 버스를 타고 통학을 했는 데,
우연히 만난 아가씨가 맘에 들어
그녀를 보기위해 일부러 비둘기호를 타고
남는 강의시간을 때우기 위해
학교 도서관에 갔던 시간들...
그렇게 그녀와 약 1년정도 함께 했던 비둘기호는
지금도 생생합니다.
당시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회사에 다니던 그녀가
대학생인 제가 부담이 되었던지
축제에 한번 같이 다녀오고는
갑자기 이별을 통보했고
며칠간의 술병을 앓고 난 후
저는 그 이후로 비둘기호를 탈 일이 없어졌습니다.
오늘
간만에 서울 나들이를 전절로 하였습니다.
갈 때는 용산행 급행을 탔는 데
올 때는 시간이 맞지않아
그냥 일반 전철을 탔습니다.
용산 - 남영 - 노량진 -... 금정 군포 의왕...
저도 모르게 벌써 20여년이 지난
그 때의 순서들이 희미하게 떠올랐습니다.
물론
비들기호가 정차하던 역과는 다소 차이가 있었지만,
그래도 대동소이하였습니다.
그 시절
어쩌다 운이 좋아 앉게 된 자리에서 졸아도
귀신같이 내릴 역에서는 눈이 떠지던...
다음엔 어디겠지
그 다음엔 어디야...
따뜻한 전철 좌석의 온기를 느끼며
나도 모르게 스르르 눈이 감겼습니다.
옆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무섭다는 중2 딸과
또 그 옆에는 그 딸이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무서워하는 마나님
우리 마나님께서도
추운 크리스마스의 서울 나들이가 피곤하셨는지
곤히 잠에 들으셨더군요...
제가 아마 일어나지 않았다면
우리 가족은 아마 종점까지 갔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 몸은 잠결에도
다음은 어디역
그다음은 어디역...
저도 모르게 20여년전의 그 기차역에서
눈이 떠지는 것은
비둘기호와 함께 한 시간덕분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