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걸레는 빨아도 걸레, 영원한 걸레라고 한다.
뭐 그리 좋은 표현은 아닌 듯 하다.
보통 우리는 더럽고 역겨운 것에 걸레를 갖다 붙이다는 데,
사실 걸레만큼 숭고한 희생정신을 몸소 실천하는 것은
지구상 그 어느 곳에도 없지 않을까 싶다.
걸레에 대한 나의 이 개똥철학은
아마 도적놈 셋이서라는 책을 읽고 나서가 아닌가 싶다.
도적놈 셋...
시인 천상병, 걸레스님 중광 그리고 작가 이외수.
물론 세 분중에 천상병 시인은 지금까지도
존경하는 인물이요,
중광스님의 그 해탈적 얘술의 경지는 존경하지만
에술과 일상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점에서는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생각하고
지금까지 생전해있는 이외수 작가는
그냥 노코멘트이다.
물론 걸레스님의 걸레와
내가 가장 숭고하다고 주장하는 걸레는
그 의미가 좀 다르다.
중광스님께서 스스로는 걸레라 하였지만,
그는 스스로에 대한 자유 영혼의 상징으로서
차용한듯 하고,
정작 걸레 본연의 용도와는 다른 의미로
쓰신 듯 하다.
하지만 내각 생각하는 걸레는
그 본연의 임무에 충실한 개념이다.
걸레가 없다면 똥은 무엇으로 치울까
가장 더럽고 지저분한 곳을
밝고 희망찬 공간으로 만들어 줄 수 있는 것은
걸레가 할 수 있는 가장 소중한 가치가 아닐까 한다.
나는 세상의 걸레이다.
이 얼마나 용감하고 자기 희생적인 발언인가.
가장 더럽고 지저분하고 냄새나는 곳을
스스로 몸을 던져 기꺼이 희생하니 말이다.
나는 감히
그렇게 하질 못한다.
생각이 많아서가 아니라
두려움이 많아서이며,
용기가 없어서가 아니라
스스로 비겁하기 때문이다.
더러운 것을 더럽다 말하지 못하고
그저 피하가기 때문이다.
그러니 걸레는 나보다
수백, 수천만배는 위대한 존재가 아닐까 싶다.
세상에 걸레만한 삶을 단1초라도 살았다면
필명 그 분은 나보다 위대한 분이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