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이유로 소공동을 지날 때면, 선친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나에게 기억되는 소공동은 우리나라 최고의 양복기술자들이 모여있는 곳이고, 선친께서는 그 기술자들이 인정하는 재단사이셨다.
초5 봄 어느 일요일, 아버지께서는 뜬금없이 나하고만 서울에 가자고 하셨다. 초4때인가 당시 한양증권에 근무하시던 이모부님을 따라 여의도 빌딩에서 경험했던 엘리베이터의 기억에 설레는 마음으로 세수를 하는 둥 마는 둥 부랴부랴 옷 챙겨입고 아버지를 따랐다.
고속버스를 타고, 복잡한 서울 시내를 지나 도착한 곳은 소공동 롯데호텔. 아버지께서는 당시 로비에 마련되었던 춤추는 분수를 보여주시며, 음악 소리에 맞춰 휘황찬란한 빛을 뽐내며 춤추던 분수를 자랑스럽게 나에게 보여주시며 한마디 하셨다.... 신기하지...
그 때 처음 에스컬레이터를 타 보았다. 올라가고 내려오면서 밑으로 보이는 그 분수의 무지개 빛을 하염없이 지켜 보던 기억이 새롭다.
한참을 넋을 놓고 보다가 아버지 손에 이끌려 간 곳은 소공동 뒷골목 어느 식당... 익숙한 주문을 하시고는 후다닥 점심을 해치우고, 남산 식물원과 남산타워를 보여주셨다. 무슨 생각이셨는지, 어느 새 스케치북과 크레파스를 준비해 오셔서는 따뜻한 계단에 앉아 남산 식물원을 그려보라고 하셨다.... 따뜻한 봄 햇살에 아들이 남산 공원에 앉아 그림 그리는 모습을 보고 싶으셨나보다...
그림을 그린 후, 찾아간 곳은 코엑스... 기억에 세계 여러도시들에 대한 전시를 했던 것 같다... 일본과 미국 여러 도시들에 대한 책자 및 팜플렛을 하나가득 종이 가방에 담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다시 찾아 가신 곳이 소공동... 멋진 양복점에 들어가시더니 이윽고 그 곳 사장님께서 반갑게 아버지를 맞이 하신다... 아마 그 분을 만나시고자 약속시간이 될 때까지 나를 데리고 서울 구경시켜 주신 듯 하다.
담소를 나누신 후, 그 사장님께서는 나에게 용돈을 쥐어 주시고는 하신 말씀이... 네 아버지는 이 곳 소공동에서도 알아주는 실력자이시다... 지금은 지방에 계시지만 네가 꼭 성공해서 소공동에 네 아버지 양복점하나 차려 드려라...
운이 라는 것이 정말 존재하는지... 아버지께서 세탁소를 운영하실 때, 문득 문득 내가 반드시 성공해서 소공동에 양복점을 차려 드리리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생각 뿐이었다...
롯데호텔은 아니지만 소공동 호텔에서 연말에 약속이 있다... 소공동을 지나는 것이 아니라 소공동에 갈 생각을 하니... 아버님에 대한 기억에 잠시 설레이다가 아련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