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탕물 할머니-노자규-

Words
513
Reading
3 min
Listen
Play
9y

설탕물 할머니-노자규-

1.jpg

쓸모없는 물건들의 종착지
“고물상”
물건들의 마지막인 그곳에서
잊을 수 없는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머리는 기억을 지워도
가슴은 기다림으로
살아온 세월을
지울 수는 없나 봅니다

의지할 곳 없는 시간들이 모여
일생이 되어버린
할머니의 모진 하루는
늘 고물상이 종착역입니다

땡볕에다
내걸어진 자잘하게 금간 주름살
움푹 팬 괸 눈빛에
작고 노쇠한 어깨는
옷가지에 감추었어도 한눈에
알 수 있는 뼈마디라
종이박스 한 장이라도 가져올 수
없는 몸인듯합니다

“엊저녁에 설탕물
한 그릇으로 견디셨다는 할머니”

나이를 잊은 잠들지 못한 고달픔은
귀밑머리 하얀 운명을 부여잡고 하루라는 선물을 기둥 삼아 버티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산다는 것은
움직여야 하는 것이기에

“억지로 밀어다 줘서 여기 왔네“

설탕물 밖에 먹은 게 없는 할머니는 고물상 주인이 주는 요구르트
한 병으로 하루를 또 견뎌냅니다
이 고통 언젠가는 끝나도록
짜여진 삶이기에 기적의 마지막
한 방울까지 마시면서 버팁니다

한 끼 배고픔을
해결하려 고물상에 가져온
헌종이 박스로 할머니가 받은 돈은 고작 2500원
라면이라도 사 가게 된 걸
다행이라 여기는 할머니입니다
질겨진 가난은 이제 할머니 삶에 가격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돈으로 하루를
견뎌야 한다는 걸 알고 있기에 고물상을 나서는 할머니는
소음이 바람을 타고 흐르는 거리에서
다음 끼니를 위해
종이를 또 주어야 합니다

긴 허리 굽어
이마가 땅에 닿은 모습을
치켜뜬 하현달처럼 사람들은
훑어만 보며 둥둥 떠다니고
슈퍼 아저씨의
싱거운 인사만건네지는 거리엔
“할머니는 가족들과 왜 헤어졌는지....
"왜 혼자 사는지
물어보는 이 하나 없습니다“

아픔은 되씹을수록 더 깊어지기에 눈물 한방울 영혼의 무게 위에 올려놓고
얼기설기 하루를 살아갈 뿐입니다

길어진 내 그림자 밟고 가는
가파른 세월이야 지나면 그뿐인데 고여 버린 세월에 얼어붙은 상처는
할머니의 느림 걸음처럼
걸어도 달려도 제자리인 것 같습니다
갯벌에 얻힌 폐선처럼 말입니다

샥은 실밥같이
혼자만의 사막을 걸어가듯
휘어진 등줄기에 내려서는 가난은 전자책에 박힌 글자들처럼
한 구절 구절이 손등에 먼지가
이는 삶이 전부였다 말합니다

주소 없는 편지를 들고나간 사람처럼 상실의 아픔만
굽어진 등허리에 매달고
길바닥에 묻은 먼지를 얹고서야 그리움이 병이 된 집으로 돌아옵니다

저물도록 돌아오지 않는 나를
기다려 줄리 없는 집이기에
긴 빈곤과 지겨운 외로움만
내걸린 빈자리가 할퀸 자국이
턱밑에선
주름이 되어 자라고 있습니다

집에서의 침묵이
거리엔 아직 도착하지 않았나 봅니다
저렇게 걸어가는 할머니를 보니 어제는 굻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오늘은 박스를 많이 실었습니다
할머니의 손수레가 무거워 보이네요
만선을 한 어부처럼
달뜬 표정입니다
할머니의 삶의 무게는
무겁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할머니가 다니는 골목엔
오르막을 오르기 위해 앉아
쉬어가는 곳이 있습니다
오늘은 비가 옵니다
콩나물 오백 원어치
두부 한모 사 들고
아이들 먹이려 바삐 걸어가든 그날...

시간의 퇴적 속에 화석 같은
추억을 떠올려봅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보내고
보내고
다 떠나보낸
때 지난 일상인데도 말입니다

속절없이 지상으로 내려오는
비를 맞고 앉아 있는 할머니에게
노오란 꼬마 우산 하나가
머리 위에 씌워집니다
그 꼬마 아이는 요구르트
한 병을 할머니에게 건냅니다
드시기 좋게
노오란 빨대를 꽂은 채 말입니다

그때부터
할머니의 여윈 마음에 들어온
꼬마 아이는 친구가 되었답니다

요구르트 한병의 힘으로
오늘도 언덕을 오릅니다

언제나 꼬마 아이가
먼저와 기다리고있습니다
이제 할머니에게도
기다려주고
챙겨주는 이가생겼습니다

할머니가 나타나면
반갑게 뛰어가서
아련한 마음을 만져보듯

두손을 이끌고
그 자리에 앉혀
요구르트 한 병을 건냅니다

“너 먹고 많이 커야지”
“할머니 저는
유치원에서 매일 먹어요”

그렇고 그런 하루가
지나가든 어느 날
언제부터인가
할머니가 보이질 않습니다

“없는 이의
안부만 묻고 간 사람만 있을 뿐”

할머니의 소식을
아는 이도 없습니다

오늘도 기다림에 길목에선
말없이 앉았다 가는 그 자리에
요구르트 한 병이 놓여 있습니다

사랑을 가로지르는
예쁘게 꽂혀있는
노오란 빨대도 같이 말이죠

-당부의말씀-

위글을 옮기실땐

“출처:노자규”를 꼭 밝혀주시길바랍니다

설탕물 할머니-노자규- | Ecenc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