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하고 탁한 지하철을 벗어나 마침내 팔레르모 역 출구 밖으로 빠져 나오면 시원하게 쭉 뻗은 큰 길이 있다. 그 길 한쪽 면으로는 붉은 장벽이 한참이나 시야를 막고 서 있기 때문에, 원래가 그 방향으로 가는 길인데도 내 의지와는 상관 없이 직진당하는 것만 같다. 핸드폰 구글맵과 장벽을 번갈아 보며, 이 근방에 식당이 이렇게 많다고 나오는 게 순 엉터리야 라고 친구가 말한다.
붉은 벽돌이 켜켜히 쌓인 벽면 위로는 커다랗게 프린트된 세련된 광고판이 종종 걸려있다. 너무 흉흉할까봐 붙여놓은 것 같아도 눈에 띄는 것이 적재적소의 광고판이로군 싶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중간중간 문이 난 곳에 경비원이 지키고 서 있는 것도 그렇고, 시내 한복판에 벽이 막고 선 모습이 마치 감옥같다.
도대체 안에 무엇이 있지? 경비원이 방심한 사이 어깨너머로 몰래(왜 몰래 보았지?) 훔쳐 보니 이럴 수가. 커다란 아울렛이었다. 햇빛을 받아 빛나는 넓은 광장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의 모습이 딴 세상처럼 활기차다. 스타벅스, 아바나 등 각종 카페와 식당 사이사이로 큰 쇼핑백을 들고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보인다. 경비원이 나를 쳐다보는데 왠지 출입카드 없이는 들어갈 수 없는 곳만 같아 초라해진다. 그늘지고 인적이 드문 내 쪽이 오히려 감옥같다.
붉은 벽에 붙은 광고판 중에 유독 눈에 띄는 것이 있었는데 가판에서 신문과 잡지를 팔고있는 노인이 달콤한 듯, 노곤한 듯 낮잠에 빠진 모습을 찍어 놓은 흑백사진이었다. 대문짝만하게 걸려 있는 그 사진이 재미나 냉큼 그 앞으로 달려가서 할아버지와 비슷한 포즈로 사진을 찍었다.
지나는 행인이 즐기도록 걸어놓은 건가? 국내 사진작가 단체를 홍보하는 건가? 혹시나 어디서 사진전이라도 열린 걸까? 이런 류의 (그 시대와 장소, 인물의 정서가 느껴지는) 사진전에 목이 말라있던 탓에 눈을 커다랗게 뜨고 봐도 fola 라고 하는 웹사이트 주소만 달랑 적혀있다. 사진 밑에도 작가 이름인지 사진의 제목같은 것이 쓰여있긴 한데, 역시 잘 모르겠다.
며칠 전에도 지하철을 기다리다 우연히 본 광고판에서 무료공연을 홍보하는 것을 보고 신나게 놀다 온 적이 있다. 산마르틴(San Martin) 극장이 재개장을 기념하며 극장이 놓인 길 한복판에서 야외공연을 열었는데 그 규모와 수준이 기대를 훌쩍 넘어 한참을 즐기다 왔다.
이번에도 웹사이트 주소를 기억해 놓았다가 집에 돌아와 검색을 해보니 Fola 는 사진 전시관 이름이었고 한참 전 나의 호기심을 강하게 자극했던 미스테리 작가의 사진전이 열리고 있었다. 대문짝만한 사진 아래에 대문짝만하게 적혀있던 Vivian Maier 가 바로 그녀의 이름이었던 것이다.
어렴풋이 기억한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단편영화를(실은 다큐멘터리) 소개하는 글이었는데 고작 두세 줄에 걸쳐 쓰여 있었다. 생전에 누구에게도 공개하지 않았던 그녀의 사진이 그녀가 죽은 뒤 우연히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는데 그녀의 실제 직업이 유모였다는 사실 외에는 아무것도 정확히 밝혀진 것이 없다는 내용.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Finding Vivian Maier) 라는 영화 제목과 포스터가 어쩐지 수년 전 보았던 밥, 딜런의 일대기를 입체적으로 그려 낸 영화, 아임낫데어(I'm not there) 를 연상시켰고 꼭 보고싶다, 라고 생각했었다.
꼭 보고싶다, 라고 생각했었으면서 여태 잊고 지내다니. 바빴던 것인지 게을렀던 것인지(아마 둘 다 였을 것이다)는 알 수 없지만 그저 이번에야 말로, 마치 지난 번 실수는 만회하겠다는 듯, 이 사진전만큼은 꼭 보러 갈테니 반드시 시간을 비워놓으라고 친구에게 큰소리쳤다. 사실 혼자 보러가도 전혀 상관없었으면서.
토요일, 팔레르모 역의 붉은 장벽으로 갔다. 경비원이 지키고 서있는, 터널같은 아치형의 문을 당당하게 지나갔다. 마치 해리포터가 9¾ 플랫폼을 통과한 것처럼 전혀 다른 세상이, 밝고 경쾌한 안전지대가(아울렛이) 눈 앞에 나타났다.
토요일이라 그런지 유난히 가족단위의 사람들이 많았는데, 노천테이블에 앉아 푸드트럭에서 산 음식을 먹거나 광장에서 롤러스케이트를 타거나 하는 모습이었다. 이날따라 저녁이 되도록 한 끼도 먹지 못해 배가 고팠지만 사진전을 여유있게 관람하고 싶었던 나는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듯 Fola 로 직행했다. 그렇다. 사진 전시관이 바로 이 아울렛 매장 안에 있었던 것이다.
전시 마지막 주말이라 예상대로 관람객들이 많이 모여있었다. 나처럼 사진기를 든 사람, 노트에 필기를 하는 학생들, 큰 배낭을 메고 사진 앞에서 토론을 하는 커플..
기뻤다. 그녀가 찍은 사진을 볼 수 있다는 것으로도 신이 났는데 그녀의 사진들이 나의 설레는 마음에 꼭 들었기 때문이다. 사진 한장한장마다 그 앞에 한참을 서있었다. 감탄하기도 진부해서 말 없이 감동했다. 알려진 것이 없는, 그마저도 죽고 나서 알려진, 평생이 유모였던 사람의 작품이라 더욱 특별히 와닿았을 수도 있다. 아마도 대부분이 몰래 찍은 것만 같은 사진들이지만 그녀의 조용한 관찰과 겸손한 감각에 소리없이 탄식했다.
2007년, 존 말루프(John Maloof)라는 청년이 시카고의 어느 경매장에서 필름이 잔뜩 담긴 그녀의 수집품 상자 하나를 구입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는 구매 후에 경매처로부터 물건의 주인이 비비안 마이어라는 것을 들었고, 그녀가 사진작가인가 싶어 인터넷에 그 이름을 검색해보았지만, 그녀에 관한 정보는 단 하나도 찾을 수 없었다.
그녀의 사진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게된 후에 그녀의 다른 상자를 구입한 사람들을 찾아가 물건을 되사고, 몇년 뒤인 2009년, 사망한 비비안의 부음기사에서 그녀의 이름을 발견하게 되어 추적을 시작한다.
Vivian Maier (1929~2009)
그녀의 수집하는 습관은 실로 대단해서 각종 영수증, 편지봉투 하나도 버리지 않고 모아 두었는데 그 덕에 그녀가 뉴욕과 시카고 등을 전전하며 하숙하던 유모였다는 것을 알게 된 존은 그녀의 목격자들의 이야기를 토대로 다큐를 만들어 갔다.
1950년대 그녀가 보살폈던 아이들은 이제 성인이 되어, 아이들의 부모는 노인이 되어 그들이 기억하는 비비안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그녀는 아이들을 아끼던 보모였지만 때때로 독설이나 손찌검을 하기도 했으며 그녀가 사진찍는 것이 끝날 때까지 아이들은 도로위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녀에게는 분노가 있었고, 재능이 있었다고 사람들은 회고했다. 하지만 어느 부모들은 그녀가 사진을 찍는지조차 몰랐다. 그녀를 아는 누구하나 그녀의 과거나 가족에 대해 알지 못했다. 방문은 항상 걸어두고 그 속에 신문과 종이를 탑처럼 잔뜩 쌓아 올려 발 디딜 곳이 없었으며 혹시라도 수천장의 신문지가 조금이라도 사라지면 불같이 화를 내기도 했다. 그리고 어느날은 문득 그녀가 말했다. The Poor is too poor to die.
그 이상한 성격에 해고라도 당하면, 마치 익숙하다는 듯 혹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수긍했다. 어떤 부부는 이사를 가게 되어 비비안을 해고하면서도 지낼 곳이 없는 그녀를 배려해 집이 팔릴 때까진 그 곳에서 혼자 생활하게 해주었는데, 그녀가 집을 구매하고 싶어 찾아오는 방문객들에게 문을 열어주지 않아 변호사와 상담했던 일도 있었다.
그녀에게 삼남매를 맡겼던, 지금은 할머니가 된 여성은 마지막으로 비비안을 우연히 만났을 때 반가운 인사를 나눈 뒤 가던 길을 가려는 그녀와 아이들에게 가지말라고, 더 얘기하자고 애원하던 비비안의 모습을 잊지 못했다.
비비안의 노년을 기억하는 동네 주민들은, 그녀는 늘 혼자 같은 벤치에 앉아 사람들을 관찰했으며 아무도 그녀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고 했다. 때로 괴팍한 성격에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음식을 얻어 먹기도 했다고 그녀를 기억하는 모습에 문득,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이라는 영화가 떠올랐다.
그녀는 대단한 관찰가였음이 틀림없다. 슬픔과 비극에 관심이 많았던 그녀의 작품에는 인간의 희노애락이 모두 담겨있으며, 시대상과 자연의 아름다움까지 담아내고 있었다. 워낙에 사생활을 중요시하고 타인과는 심지어 본명조차 공유하지 않은 그녀였기에 그녀 살아 생전이었다면, 존이 그녀의 인생을 캐고 그녀의 사진을 유출하는 것을 절대로 용납하지 않았을 거라고 그녀를 아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말했다.
그래서 가슴 한편엔 그녀를 향한 죄책감이 있다고 말한 존 루프는 비비안의 수많은 종이서류 중 하나가 쓰고 부치지 않은 편지라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불어로 (그녀는 뉴욕에서 태어났지만 유년기를 프랑스에서 보내 늘 이상한 프렌치억양을 썼다고 사람들은 기억한다) 쓰여진 그 편지에는 그녀가 엄청난 양의 사진을 찍어 왔으며 이것을 양질로 인화할 사업파트너가 되어줄 수 있겠냐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 편지가 전해지지 않은 것인지, 그녀가 부치지 않은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결국 10만통이 넘는 필름은 그녀의 유품이 되었다. 유서에는 유품을 가족에게 전하지 않을 것이며 그 이유는 친한 친구들만이 알고 있다고 적었지만 그녀의 사진 속에는 물론, 그녀가 세상에 알려진 지금까지도 친한 친구들의 흔적은 없었다.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은 남들에게는 실제 이름을 가르쳐 주지도 않고 항상 방문을 닫고 살던, 오직 관찰가였고 수집가며 평생을 유모로 살았던 비비안 마이어가, 고용주에게 ‘나는 이제부터 세상을 구경하러 갈 것’ 이라며 휴가를 요청한 뒤 실제로 태국, 인도, 예맨, 이집트와 아프리카, 남미를 여행했다는 점이다.
그 당시, 잘 알려지지도 않은 이국땅을 여성이 홀로 여행하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도 아니거니와 누구보다 조용했던 그녀가 실은 누구보다 열정적이었음이 여과없이 드러나서 놀랍고도, 면목이 없어지는 순간이었다.
베일에 둘러싸인, 괴팍한 그녀의 목격담을 들으면서 나는 ‘나를 가만히 내버려 두란 말이야!’ 라며 쉴새없이 걸어다니던 파트리트 쥐스킨트의 좀머씨를 연상했고, 사회성이 부족한 탓에 사람들과 직접 어울리지 못하는 대신 사진촬영을 통해 대리만족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도 해보았다. 그러나 그녀는 분명하고 용감했으며, 진심이었다.
그녀의 필름을 현상하려면 아직도 한참이나 남았다고 한다. 비비안 마이어와 그녀의 사진을 세상에 알린 청년 존 말루프에게도 경의를 표할 일이다. 나와 동행한 친구는 존 말루프가, 자신이 금광을 발견했다는 걸 눈치챘기 때문에 일을 벌인 거라고 했지만 그녀의 수집품을 한 데 모아 정리하고 추적하고 (그녀 사진에 나온 교회탑을 추적해 프랑스 어느 시골의 그녀 고향을 찾아내 취재를 갔다!) Moma모마에서 거절한 그녀의 사진을 직접 전시하고 다큐를 제작하기까지의 그 열정과 노력에 입이 떡 벌어졌다. 나라면 수입의 몇 프로를 받는 조건으로 전문가에게 맡기지 않았을까.
사진관의 입구이기도 하고 출구이기도 한 티켓오피스 한 켠에서는 다양한 사진집을 얌전히 판매하고 있었다.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여러 작가들의 사진집을 적극적으로 구경하는 내 모습이 낯설고 또 익숙했다. 내가 이토록 사진에 관심이 있었던가. 이건 영락없이, 좋아하는 식당에서 메뉴를 보며 무얼 먹을 지 고르는 모습이었다.
뭐 먹을까? 라고 말하니 요 앞에서 파는 부리또 먹고 싶어 죽겠어 한다. 전시관을 나와 어느새 깜깜해져 조명이 켜진 광장으로 나가니 핫도그를 파는 푸드트럭과 나란히 서있는 타코 파는 푸드트럭이 보인다.
먼저 친구가 소고기, 베이컨, 체다치즈와 토마가 들어간 부리토를 주문하고 나는 과카몰레와 사워크림, 토마토가 들어간 돼지고기 타코, 직원의 추천이었던 소고기와 베이컨, 감자, 버섯이 들어간 타코를 주문을 했다. 바쁜지 답답한 지 재촉하는 직원 앞에서, 못하는 스페인어로 꿋꿋하게 질문과 주문과 변경까지 마치자 그녀가 결국 실실 웃는다.
저녁인지 아침인지 점심인지 모를 끼니를 떼우고 겨울옷이 없어 아울렛을 좀 둘러보다가 마음에 드는 얇은 가죽자켓은 한국돈으로 30만원쯤 해서 다시 제자리에 놓고 사람들이 북적이는 매장에서 하나 골라 입어본 옷은 피부에 닿자 화끈하고 따가워서 얼른 원래 옷으로 갈아 입었다. 피부가 너무 손상돼서 아무 옷이나 살 수가 없다.
왠지 저 붉은벽을 지나면 등 뒤에서 사라지고 없을 것 같은 아울렛을 떠났다. 친구에게 사진전을 보고 무엇이 기억나냐고 물었더니 사진은 잘 기억이 안나지만 내가 왜 그녀의 사진을 좋아하는 지 알겠다고 한다.
너가 찍는 사진이랑 비슷한 것 같아.
그래? 이름을 숨기는 게 나랑 비슷하다고 생각했는데.
우리 앞으로는 짐 보따리를 잔뜩 짊어진 남성이 목발을 집고 왼쪽 발만으로 열심히 나아가고 있었다. 행색을 보아하니 노숙인이었다. 오른쪽 발은 신발을 신지 않은 것인지 의족인 것인지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를 도와줄 것도 아니면서 측은한 마음을 갖는 나의 위선이 불편해 곧 시선을 거두고 그를 앞지르는 순간, 누군가 내 뒤통수를 향해 말하는 것이 들렸다.
The poor is too poor to die.
사진출처
공식사이트 http://www.vivianmai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