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달여간 스페인을 여행했던 적이 있다. 한달은 스페인 북부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고, 다른 한달은 포르투갈과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 동부 카탈루냐 지방을 거쳐 다시 파리로 돌아오는 여정이었다. 혼자 여행했지만 길동무도 만나고 어쩜 우연히도 지인을 만나 하마터면 그 사람이 내 운명이라고 생각할 뻔한 적도 있다.
그 때의 여행이 많은 여운을 남겼기에 그 뒤로 누가 스페인을 간다느니, 갔다느니 하면 내 일처럼 설렜다. 아직 한달에 한두 번씩은 페이스북에 들어가던 때였는데, 중학교 동창 하나가 스페인에 다녀왔다고 써놓았다. 반가운 마음에 ‘스페인 너무 좋지!’ 라고 댓글을 달았다. 얼마 뒤엔 그녀가 스페인의 발렌시아에 간다고 했다. 빠에야의 원조인 발렌시아에 가서 삼시 세끼 빠에야를 먹던 행복한 기억에 ‘발렌시아에 가면 빠에야 꼭 먹어ㅠㅠ’ 류의 댓글을 또 남겼다.
그런데 그녀의 대댓글은 왠지 냉랭했다. ‘나 스페인 이미 여러번 다녀옴’, ‘발렌시아에 빠에야만 있는 줄 아냐.’ 등등. 어느 날은 내가 스페인 지명 오타 낸 것을 바로잡는 게 끝이었다. ‘○○가 아니라 ○□ 거든’.
나는 이미 한국이 아니었기에 그녀와 직접 만난 것은 1년도 더 지나 있었고, 연락이나 페이스북을 자주하지 않아 몰랐는데, 그녀는 그 해 여행사로 이직을 했고 그 때문에 스페인에 자주 출장을 간다고 했다. 그녀의 페이스북을 둘러보니 스페인의 기념품이나 맛집 등을 종종 소개하고 있었고 ‘부럽다’, ‘멋지다’ 는 댓글이 가득했다. 거기엔 그녀의 친절한 대댓글이 달려 있었다.
처음엔 그녀가 나에게 서운한 것이 있는지 되짚어 보았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도 우린 꽤 훈훈했고, 불과 얼마 전 그녀의 고양이 카페가 잘됐으면 좋겠다는 내 댓글에선 얼른 한국에 와서 만나자고까지 해 놓았는데.
나는 이 중 하나라고 결론을 지었다. A 그녀는 스페인이 싫다. 이직하고 출장을 자주 다니며 힘든 기억이 가득한데 나는 그녀 속도 모르고 즐거워한 것이다. B 내가 너무 나댔다. 그녀는 여행사 직원이고 나는 수많은 여행객 중에 하나인데 내가 전문가 앞에서 주름을 잡은 것이다. 어쨌든 그 이후로는 조금 의기소침해져서 그녀가 여행한 글에는 댓글을 달지 않게 되었다.
▲스페인 발렌시아(Balencia)의 식당 Canela 에서 먹은 빠에야(Paella)
최근 뉴비가 많이 유입되면서 이런 류의 글들을 가끔 보게 된다. ‘나와 같은 분야’, ‘나와 캐릭터가 겹치는’, ‘나보다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이 늘어날까 내심 걱정이 된다는... 아차 싶었다. 어쩌면 나도 누군가에겐 환영받지 않는 존재였겠구나, 가 처음 든 생각이었고 나 또한 과거에는 나와 비슷한 사람이 달갑지만은 않았었다는 사실을 기억해 냈다.
물론 지금도 그럴 때가 있지만 전에는 특히나 내 경험이나 방식, 나의 감정까지도 그것이 특별하고 고유한 것임을 인정받길 원했다. 그래야 내가 유일하고 가치있게 느껴졌으니까. ‘니가 뭘 알아’, ‘그건 내 꺼야’ 생각하면서, 어지간히도 남들과 다르고 싶었다. 어지간히도 남들 같았다는 소리겠지. 그 속에서 내가 누군지를 밝혀 내고 싶었던 거니까. 지금은, 내가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아니까, 자꾸만 뭐라도 같은 점을 찾고 싶어 하는 것 같다. 나도, 나도 맞장구 치며 혼자가 아니라는 걸 밝혀내고 싶은 건 아닌지.
스팀잇을 하며 글도 많이 썼지만 댓글도 참 많이 달았다. 특히 여행을 하고 요리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초면이면서 혼자 그렇게 반가워하고 아는 척을 했다. 그리고는 뒤늦게 내가 상대방 속도 모르고 너무 나댄 것은 아닌가 걱정스럽다. 감사하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함께 반가워해 주지만, 당연히 시큰둥한 사람도 있다. 나야 이제는 남들과의 공통분모를 발견하는 것이 기쁘지만, 상대방이 나와 같으리란 법은 없다. 별 감흥이 없는 사람도 있을테고, 심지어는 내가 탐탁치 않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얘기해 주고 싶었다. 내가 당신을 다 알아서, 다 이해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고. 나의 외로움을 나누고, 내가 이해받고 싶어서 그랬다고. 나는 절대 세상의 하나 뿐인 당신이 될 수가 없고, 당신 또한 세상 특별한 내가 될 수 없지만, 혹시라도 그래서, 혼자같아 외로울 때면 내게로 오라고. 그때 우리 서로를 반겨주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