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다신 이 산에 오르나 봐라.’
등산에는 젬병이다. 중간에 산행을 포기하고 내려가고 싶었던 적은 한두번이 아니오, 단 한번도 빼놓지 않고 늘 그룹의 꼴찌를 도맡았다. 가장 체력이 좋았어야 할 것 같은 20대 초반에 함께 설악산을 등반한 선배 하나는 내 배낭을 대신 짊어지고 올라갔으며 후배 하나는 나를 전담마크했다.
그로부터 10년도 더 지난 지금, 나는 설악산행을 곧 물 만날 물고기처럼 기다린다. ‘드디어 몸을 풀 때가 왔군.’
우리가족 여행지는 늘 설악산이었다. 내가 한국에 오면 네 식구가 함께 하와이에 가자느니 태국에 가자느니 작년부터 말이 나왔지만, 이번에도 역시 설악산이었다. 아빠가 사랑하는 설악산.
언제나 지친 우리를 독려하며 이끄셨던 아빠는 4년 사이에 급격히 체력이 떨어져 몇 시간이나 뒤쳐지시게 되었다. 무엇보다 자존심을 다치신 아빠께 ‘이제라도 저를 이해하게 되셔 다행입니다.’ 라고 말씀드렸다. 다행이긴 무슨.
반면, 그 사이 나는 산을 껑충껑충 오르게 되었다. ‘내 인생에서 지금처럼 저질체력이었던 적이 또 있던가’ 를 자문하는 요즘같은 때 말이다. 체력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산에 오르는 것을 무척 좋아하게 되었다.
‘힘들거야’ 라는 생각으로 산에 올랐을 때는 도대체 이 고생이 언제 끝나나 싶었는데, ‘좋을 거야’ 하며 발걸음을 내딛으니 설레고 신이 나는 것이다.
페루 와라스에서 4600미터에 놓인 69호수까지 트레킹을 한 적이 있다. 출발점부터가 해발 3900미터인 고산지대였다. 산 중턱에 놓인 에메랄드 빛 호수를 보려고 수많은 여행자들이 숨을 헐떡이고 어지럼증을 겪으면서도 그 산에 오른다. 그때도 나는 꼴찌 그룹에서 헤매고 있었다. 도시락으로 싸온 볶음밥(전날 중국집에서 먹다 남은 것)이 세상 꿀맛이었다는 것만은 선명히 기억한다.
그로부터 불과 한달 후, 아르헨티나 엘 찰텐의 해발 3400미터 피츠로이 봉을 보기 위해 등산을 했을 때는 일행의 가방을 들어주고 신발끈을 묶어주는 여유를 보였다.
스페인 순례길을 걷기 시작할 때도, 나는 남들보다 걸음이 느리니 늘 한두시간 먼저 출발했고 그저 800km 를 완보하면 성공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금세 다리에 근육이 붙고 몸이 가벼워진 덕분인지 함께 출발한 순례자들보다 이틀을 앞서가게 되었다. ‘언제 끝날까’ 싶었던 순례길 여정은 ‘겨우 이것밖에 안남았다니’ 하는 아쉬움으로 변한 지 오래였다.
‘성취의 경험’,
아니더라도 ‘즐거운 경험’ 은 삶에서 무척 중요하고 필요하다. 만약 내가 산을 오르지 못하고 중간에 포기했든가 순례길 내내 아프거나 기분이 좋지 않았다면 그 둘은 내게 피하고 싶은 고난이나 넘어야할 장애물처럼 기억되었을 지 모른다. 요리가 내게 그렇듯이.
대신 이겨내거나 이뤄내면 안다. 내가 얼마나 멋지고 강한 사람인지.
전날 폭우처럼 쏟아지던 비는 산행을 시작하기로 한 날에는 부슬비로 변해있었다. 하염없이 내리는 빗속 진흙탕을 며칠이나 걸어본 일이 있기에 겁이나 걱정이 드는 것이 아니라, 설레기 시작했다. ‘나 이거 할 줄 알아.’
남미여행을 함께 했던 트레킹화를 신고, 순례길을 함께했던 가방을 메고 판초를 뒤집어 썼다.
<페루 와라스 69호수>
<아르헨티나 엘찰텐 피츠로이>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