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건장한 남성도 내 앞에선 부끄러워할만 한 식욕을 자랑하고 있다. 새벽 두시에 신라면 하나 끓여먹고 허전해서 야끼소바 컵라면을 먹고도 뭔가 부족해서 아이스크림 한통을 비우고도 성이 안 차 우유도 없이 씨리얼을 씹다말고 레스토랑에서 가져온 디져트도 좀 먹어보고. 뭐가 문제인가 싶어 물을 벌컥벌컥 마시고.
어느날은 룸메이트가 컴퓨터로 ‘위대한 탄생’ 을 다운받아 보고 있는데 나는 위대한 탄생을 귀로 들으며 눈으로는 웹툰을 보고, 입으로는 카레와 랍스터를 동시에 먹고 있었더랬다.
아버지를 여의고 가장노릇을 하게 된 어느 오디션 참가자가, 감정조절을 못하고 노래마다 한이 맺힌 듯 슬프게 부르자 김태원이 그러는거다. 니 인생엔 후렴구만 있고 1,2 절은 없다고. 후렴구는 그 누구보다 아름다운데, 니 노래의 1,2 절을 찾아야할 때라고.
나도 참 짧게 살아본 인생이지만, 나름 강한 마인드로 어려서부터 울지도 않고 후회같은 건 안하고 혹여라도 엄살부린다는 생각, ‘강한 척 하는 척’ 한다는 인상따위 주기 싫어 최대한 나를 단련해왔는데, 어느 순간 그런게 와르르 무너지더니 내가 꼴사납다고 여기는 짓을 다하고 있더라. 돌아갈 수 없는 추억에 젖고 자기 감성에 빠지고 심지어 가끔은 내 자신을 딱하게까지 여기는 것이 기가 막혔다. 그렇게 지난 날과 지금의 내 모습 위에 색을 잔뜩 덧칠해 놓고선, 그 모습을 감상하느라 넋이 나가 있었던 거지.
이제 그만하자.
방황하는 청춘놀이. 상처입은 영혼놀이.
그래봤자 후렴구다. 지겹도록 반복되고 메아리처럼 사방으로 퍼져 명확하게 들리지도 않아 실제인지 환상인지 구분도 안갈 뿐더러, 빈 공간 대강 떼우기에 딱 좋을 지는 몰라도 그것만으로는 결코 노래 하나를 완성시킬 수 없는. 그래서 고걸로 어쩌라고. 후렴구 인생.
차갑게 젖은 모래가 손톱에 잔뜩 들어 가도록 파헤치고 파헤쳐, 파도와 비바람 속에 무너진 모래성 안에 숨겨두었던 조개껍질을 결국은 찾아내듯이. 나도 내 인생의 1,2 절을 찾아내야지. 그런 것따위 애초에 없었다고 코웃음 친다면. 지금부터 완성해 나가리라.
봄이니까.
어제, 하루종일 기분이 좋지 않아 ‘오늘같은 날엔 이 곳에 글을 쓰면 안되겠’ 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습니다. (이런 때를 위해 스팀잇에도 ‘비공개’ 로 글을 올릴 수 있으면 좋겠는데 말이죠.) 한국에 온 이상 이런 기분이 드는 건 정해진 수순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위의 일기를 발견했습니다. 7년 전 오늘 쓴 일기였어요. 보아하니 뉴욕에서 일할 때네요. (웹툰을 보면서 랍스터를 먹다니..)
저 때만해도 스스로를 달래고 혼내킬 힘이 있었나 봅니다. (<당신의 딱한시선> 참고.) 일기를 보다가, 웬종일 기분이 좋지 않은 진짜 이유가 사실은 다른 데 있었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습니다. 나에게 피해의식이 있었구나. 죄책감이 싫어 다른 원인, 원망의 대상을 찾다보니 나까지 피해자가 되어 있었구나..
그러고 보니 그 사이 우는 소리가 참 많이 늘었습니다. 일기같은 것(?)을 쓰게 된 것은 말할 곳이 없어서였는데, 겸사겸사 푸념의 창구이기도 했습니다. 그것을 스팀잇에 쓰게 되고, 심지어 이 곳에는 제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시는 분들이 계시니 어느새 엄살만 부리고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어제는 글을 쓰지 말아야지, 했던 것입니다. 답답함에 아무 것도 못하고 일찍 잠들어 버렸네요. (답답한 바람에 또 빤스바람으로.. 그 바람인지 감기 기운이... 게다가 애인이 바람피는 꿈.. 괄호 쳐놓고 주절주절..)
그러다 7살이나 어린 저에게 혼쭐이 난 것입니다. 어느새 기분이 좋지 않을 때마다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아니, 애초에 기분이 좋지 않은 것도 누군가/무엇이 나에게 상처나 분노, 피해를 주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어요.
.....제 기분, 나아가서는 제 삶의 주체성, 저의 1,2절을 찾아 와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생각이 듭니다’ 라고 썼다가 이것도 지금 수정합니다.) 딱하거나 속상한 거 말고, 다시 멋진 내가 되고 싶어요. 방도 치웠으니까요. (떳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