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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내리는 설악산> 이야기를 마무리 한 뒤에는 드디어 <순례길> 이야기를 다시 써 내려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의 나와 풍경을 기억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놓고 또 일기를 쓴다. 늘 혼자 드는 잡생각을 끄적대오던 습관이 있는 데다 ‘독자’ 를 염두한 글을 쓰는 것이 통 익숙치 않은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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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곳에 일기를 쓸 수 없다면, 이곳은 나의 집이 될 수 없다는 생각으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어떤 결심과도 같았다. 그런데 이제는 내 속을 드러내는 이런 일기가 아닌, 쓰고자 하는 글을 묵묵히 쓰는 것이 스팀잇을 오래할 수 있는 비결이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곳은 나의 집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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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겸사겸사 스팀잇에 뜸하게 되었다. 일부로 제쳐둔 것은 아니지만, 시간이 없다는 그럴싸한 이유를 앞세워 미안함을 덜어냈다. 누구한테 미안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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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약한 습성이 하나 있다. ‘특기’ 라고 썼다가 ‘습성’ 이라고 바꾸었다. 즐겨하기는 해도 이것에 재주가 있는지는 모르겠기 때문이다. 종종 나만의 깊은 동굴, 혹은 외딴 섬에 제발로 들어가려는 습성이다. ‘잠수’ 를 타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나를 찾지 말라고, 내버려 두라고 숨고 피하는 것 같기는 한데, 막상 누가 찾으면 버선발로 달려 나간다. 이상한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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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연락하는 법이 거의 없다. 연락이 오면 받기는 하지만 바로 확인하지 못할 때가 많다. 핸드폰을 몸에 지니고 있거나 문자를 바로바로 확인하는 습관이 들지 않은 것도 있고, 혼자있는 시간을 좋아해서 더 그렇다. 해외에 있을 때는 핸드폰을 사용하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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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온지 벌써 3개월하고도 일주일이 지났다. 아빠의 핸드폰을 쓰고 있었는데 이번주 안으로 회수해 가겠다고 하신다. 말이 아빠 핸드폰이지, 외할아버지께서 살아 계실 때 쓰시다가 돌아가신 뒤로는 나와 동생이 한국에 오면 쓰던 핸드폰이다. 정작 아빠는 한번도 사용하신 적이 없으신데, 이번에 모임에서 자리를 맡으신 것도 있고 주변의 성화에 못이겨 쓰셔야겠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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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도 2010년에 아이폰을 샀던 게 마지막이다. 2013년 일본에 갔을 때는 중고폰을 얻어 사용했고 그 뒤, 프랑스나 아르헨티나에서는 핸드폰 없이 살았다. 정확히는 구형 공기계로 와이파이 얻어 쓰는 정도. 8년만에 핸드폰을 구입하려니 뭐가 뭔지 모르겠다. 24개월 약정은 너무한 거 아닌가. 내가 한국에 얼마나 있을 줄 알고. 중고폰도 왜이렇게 비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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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와중에 방금 전화 한통을 받았다. 설악산에서 비를 맞는 바람에 소형 DSLR 카메라(캐논100D) 가 망가져 A/S 센터에 맡겼는데, 수리비가 30만원이라며... 수리를 권하지 않으셨다. 나와 산과 바다, 사막과 빙하를 오가며 12개국을 함께 여행한 친구인데... 그래서인지 그깟 비 조금 맞아도 괜찮을 줄 알았다. 내가 망가뜨린 것이다. 이런 이별은 처음이라 침울해하고 있는데 친절한 기사님께서 그동안 많이, 잘 사용해오신 것 같은데요. 라며 전화기 너머로 날 위로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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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장에 조금 남은 돈으로 제주도나 동남아에 혼자 다녀올까 잠시 생각했는데, 핸드폰이랑 카메라 둘 중 하나는 못살 형편에 여행이 웬말이냐. 카메라 기능 좋은 핸드폰을 사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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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2013년에 잘 쓰던 똑딱이 카메라를 하나 잃어버렸다. (망가뜨리거나 잃어버리거나... 제길) 명동 공차에서 버블티를 마신 뒤 놓고 나와 다시 찾으러 갔는데, 직원이 분실된 카메라는 없다고 해서 여기저기 헤매다 결국 경찰에 신고를 하고 돌아온 적이 있다. 지갑이든 핸드폰이든, 잃어버리는 족족 내 손에 돌아 왔던터라 내심 기대했지만 이 카메라는 소식이 없었고, 나는 결국 이번에 고장낸 DSLR 카메라를 사게 된 것이다.
그로부터 2년 뒤인 2015년, 오랜만에 페이스북에 들어갔는데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1년 전에 메세지가 와있었다. 자기가 내 카메라를 가지고 있다고. 카메라 사진을 보고 페이스북으로 나를 찾았는데 본인이 맞느냐고. 고마운 마음이 앞섰기에 물어보진 않았지만, 조리복에 적힌 내 영문이름으로 검색을 한 게 아닐까 싶다. 1년이나 지난 메세지에 얼른(?) 답장을 보냈는데, 당시 공차 직원이었던 그녀는 이미 퇴사를 한 뒤여서 예전 직장동료를 통해 내게 보내주겠다는 메세지가 왔다. 그런데 보내주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결국 2013년에 잃어버린 내 카메라는 2018년에 우리집에 도착했다. 5년의 세월동안 카메라는 웬만한 스마트폰보다 몹쓸 구형이 되어 있었다. 그래도 감사하다. 이렇게까지 주인을 찾아 주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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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글을 올리고 댓글을 읽으며, 제주도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마침 지금 제주도에서 한달 가까이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친구도 나를 부르고.. 그런데 오늘 하루, 거짓말처럼 약속이 줄줄이 생겼다. 고등학교 때 친구, 대학 때 친구, 뉴욕에서 룸메이트였던 친구, 한국에서 같이 일했던 친구, 동네 친구, 가족끼리 아는 친구, 남미 여행하다 사귄 친구, 프랑스에서 룸메이트였던 친구... 서로를 모르는 친구들인데 오늘 동시에 연락이 온 것이다. 이게 무슨 영문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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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를 가만히 두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반갑고 고마운 마음이 더 크다. 복에 겨운 거겠지. 지금은 비록 내가 동굴 속으로, 외딴 섬으로 들어가 혼자 있고 싶을 지언정, 안다. 그 이유가 비단 내가 혼자서도 잘 살 수 있는 독립적인 인간이라서가 아니라, 혼자가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을. 고독을 즐길 수 있는 것은, 고독하지 않기 때문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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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팀잇에 오랜만에 와서도 좀처럼 피드를 보지 않는다. 모르는 게 약이라서 그런 것도 있고, 그냥 내 블로그에 와주시는 손님에게 정성들여 우려낸 차 한잔 대접하며 조용 조용한 시간을 보내고 싶다. 지금 그렇다는 거지, 며칠 뒤면 또 다를 것이다. 글 쓰는 것보다 읽는 게 재밌어서 정신을 못차린 날도 많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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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제주도는 언제나 가게될까 모르겠다. 그보다 카메라를 생각하면 속이 쓰리다. 아이폰6s 로 사진 찍으면 잘 나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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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바람을 뒤집어 써가며 나와 동고동락했던 카메라를 기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