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는 한 가구당 반려동물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라고 한다. 내가 따로 알아본 것은 아니고, ‘비정상회담’ 이라는 프로에서 그랬다. 그렇지 않아도 길거리가 똥밭이다. 목줄 안하고 뛰어놀다가 반바지를 입은 내 무릎에 침을 한사발 묻히고 가는 녀석도 있고, 싸움붙은 개들을 능수능란하게 중재하는 개 주인들도 보이고, 조금 과장을 보탠다면, 산책하는 동안 사람 수만큼이나 보이는 것이 개다. 아르헨티나가 노동자의 천국이라더니, 실은 반려견의 천국이 아닌가 싶다.
땅에서 눈을 떼고 걸으면 얼마 안가 참혹한 일이 일어날 정도로(나도 당했다!) 개똥이 사방팔방인데, 파리와 비교해 양으로 봤을 땐 이 곳 부에노스 아이레스가 압도적이고, 비주얼쇼크로 본다면 파리의 손을 들어주어야 할 것 같다. 개똥만큼이나 괴로운 것이 개짖는 소리다. 같이 스페인어 수업을 듣던 러시아 여성은 옆집 개 짖는 소리가 듣기 싫다며 Lo mato., 즉 내가 죽일거야 라는 말을 반복할 정도로 노이로제에 걸려있었다. 나는 그 여성이 더 무서웠다.
동네에 쉬지 않고 짖는 개가 하나 있다. 그런데 앙칼지게 귀를 찢는 소리가 아니라 목이 쉬도록 애처롭게 짖는다. 말하자면 왕왕! 하고 짖는 것이 아니라, 끄엉, 끄엉! 하고 짖는다. 이미 무뎌져서 그런 지는 모르겠지만, 그 소리가 시끄러운 것이 아니라 구슬프게 들린다. 왜 저리 애타게 짖는걸까, 하다가는 그만 내가 죽여버린 노란 카나리아가 생각났다.
생전에 할아버지는 한달 씩 두 번은 우리집에 와 지내다 가셨다. 우리집에 오실 때마다 새장에 든 새 한쌍을 사오셨는데, 나는 그게 너무 싫었다. 새가 그 좁은 새장에 갇혀있는 것도 싫었고, 새의 발생김새가 징그러워 보이기도 했으며 무엇보다, ‘집에 오실 때마다’ 에서 눈치챈 사람도 있겠지만, 집에 들인 새들이 족족 죽어 나갔기 때문이다. 얼어 죽기도 했고, 병이 들어 죽기도 했으며, 새장 밖으로 나간 녀석이 집구석에 죽어 있는 것을 발견하기도 했다.
처음엔 물론 나도 새에게 이름을 붙여주고 매일같이 찾아가 말을 걸고 먹이를 주며 정을 붙였다. 그런데 그들의 죽음이 반복될 수록, 나는 더이상 우리집에 오는 새들이 반갑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집을 떠나실 때마다 우린 못키우니 도로 가져가시라 떼를 써도 보았고, 또 새를 사오시면 화도 내 보았다. 나보다 감수성이 더 풍부하신(그러나 늘 강한 척하시는) 아빠의 괴로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애정을 주고 키운 것들의 사체를 매번 치워내는 납빛 얼굴에 꽉 다문 입술은 하루종일 말이 없었다.
그 노란 카나리아가 우리집에 처음 왔을 때부터, 나는 죽음을 예감하고 있었다. 두 놈 중 하나가 죽었을 때도, 그게 암놈인지 숫놈인지는 몰라도 죽게 되리란 건 알고 있었다. 나는 홀로 남은 노란 카나리아에 드리워진 죽음의 그림자가 보기 싫었다. 어쩌다 새장이 눈에 띄면 물이나 밥을 갈아줄 뿐이었다. 그럴 때마다 그 새가 보란듯이 힘차게 날개짓을 하며 지저귀었지만, 나는 변함이 없었다. ‘어차피 너도 죽을거야’.
간밤에 날이 추워지면 ‘죽었겠지’ 하며 베란다로 나간다. 살아있다. 집을 며칠 비운 뒤 돌아 올 때면 ‘죽었을 거야’ 하고 확인해 본다. 그런데 살아있다. 며칠이 지나도, 몇 주가 지나도, 몇 달째 그 카나리아는 죽지도 않았다! 오히려 내가 다가갈 때마다 더 요란스럽게 지저귀고, 요란스럽게 날개짓을 한다. 시끄러웠고, 보기가 싫었다. 나는 더욱 그 새를 피했다. 그런데도 카나리아의 지저귀는 소리, 날개를 푸덕이는 소리는 집안을 가득 채웠고 어느새 나의 아침을 깨우고 있었다.
나야 처음부터 돌보지 않기로 작정했으니까, 학교를 다녀오면 컴퓨터를 하거나 밥을 먹거나 방에 들어가 만화책을 보거나 그랬다. 새 한 번 쳐다보지 않고 사는 날이 더 많았다. 아니, 우리집에 새가 있다는 사실조차 잊고 지냈다. 어느날은 집에 혼자 있는데, 너무 조용했다. 이렇게 조용해진 지 며칠이나 된 건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베란다 문을 벌컥 열어 새장을 찾는데 원래 있던 자리도 아니고 저 구석에 가있다. 베란다 구석에는 페인트칠이 벗겨진 서너 개의 녹슨 새장들이 무덤처럼 쌓여있었다. ‘살아 있을거야. 여태까지 그랬잖아!!’
용기내어 새장 앞에 다가갔는데도, 그 새는 더이상 요란스러운 날개짓을 하지 않았다. 요란스럽게 지저귀지도 않았다. 고요하고, 싸늘했다. 처음으로 그 새가 살아있길 간절히 바라던 날, 새는 죽어 있었다. 무섭고 낯선 고통이 밀려왔다. 나는 도망치듯 방으로 들어와 책상 앞에 앉았다. 미안해, 미안해.. 이내 눈물이 후두둑 떨어지더니 급기야 서러운 통곡을 하며 울었다. 그 새를 부를 이름이 없었다. 새에게 이름도 지어주지 않은 것이다.
내가 그 이름없는 새를 죽였다.
살려 달라는, 아직 살아있다는 그 날개짓과 지저귀는 소리를 외면했다. 어떻게든 살려고 생명줄을 붙잡던 그 새가, 죽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차피 죽을 거야. 그러니 정 붙이지 않을 거야’. 나는 틀렸다. 그 새는 우리가 키운 것 중 가장 오래 살았고, 애써 눈길 주지 않은 새의 죽음에 나는 처음으로 통곡을 하며 울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사랑해줄 걸 그랬다고, 이름 한 번 불러줄 것을 그랬다고.
우리 가족은 아무 말이 없었다. 우리 모두가 공범이었다. 가장 충격을 받은 건 물론 나와 아빠였다. 아빠는 장인어른에게 다시는 새를 사오지 마시라 전화했다. 그 때보다 20살이나 더 먹은 지금도 이 글을 쓰며 마음이 괴롭다. 새는 배고프고, 춥고, 아프고, 외로웠다. 새장 안에 갇혀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사실 어제 여기에서 글쓰기를 관두었다. 눈물이 하염없이 나는 바람에 더이상 쓸 수가 없었다. 내가 뭐 서럽다고 우나. 이름없는 새만큼이야 서러웠을까.
저 날 이후 나는, ‘상처받을 걸 알면서’ 사랑한다. 마음을 주었다 다치는 것보다, 주지 못하는 바람에 다치는 것이 더 아프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차피 우리 모두 상처받을 것이라면, 하나라도 더 사랑받는 것이 낫지 아니한가.
쉬지 않고 짖는 개는 오늘도 쉬지 않고 짖는다. 어디 사는 지도 모르는 저 개의 허공을 울리는 고함소리에, 개 짖는 소리 좀 안나게 해라! 가 아니라 개 짖는 소리 좀 들어줘라! 외치고 싶다. 언젠가 저 개 짖는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면 그 개가 드디어 관심을 받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나는 그렇게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