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째 고기 국물 우려내는 이야기

springfield(61)
Published in
#kr
Words
175
Reading
1 min
Listen
Play
9y

빨래 돌아가는 소리가 멈추었다.
나 혼자 덩그러니 남았다.

거실 붙박이 에어컨은
건물을 지을 때부터 망가졌다고 했다.
한 번도 쓰지 않은 새 에어컨인데
벽에 붙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나처럼 거실에 그냥 있다.

더운 것은 아니었는데
침실 에어컨을 키고 방문을 열어 두었다.
찬 바람은 여기까지 오지 않는데
애쓰는 소리는 난다.

나도 떡국이 먹고 싶어
고기를 사다 국물을 우려놓았다.
5일째 우려놓기만 했다.
차이나 타운이라도 가야 떡을 살 수 있을텐데.
오늘까지만
하고 꺼낸 냄비 속에는
졸아붙은 고기국물이 차가운 젤리가 되어있다.

물을 사러 나가야겠군.

새 렌즈를 개봉해보았자
앞으로 몇 시간 쓰지 않을테니
안경은 그대로 쓰기로 했다.
거울을 챙겨볼 행색도 아니었지만
입고있던 상의를 유심히 살폈다.
코앞인데 뭐 어때
하다가 주섬주섬 속옷을 챙겨 입는다.

오늘 중국인은 처음보는 남성이다.
남편인가 형제인가
사실 궁금하지도 않다.
오늘은 냉장고에 코드가 꼽혀있는지
그것이 중요하다.

거스름돈이 45페소가 나왔는데
5페소짜리를 9장 준다.
삼천 오백원이 나왔는데
400원짜리를 9개 준 셈이다.

무거운 생수통을
두팔로 부둥켜 안고 돌아오며
역시 여름엔 집밖에 나오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두 개의 대문과 집 현관까지
세 개의 문을 열쇠로 돌려 열었다.
생수통도 세 번 내려 놓았다 다시 들었다.

아이 시원해
에어컨을 틀어놓길 잘했다.
이제는 다시 고기국물을 우려야지.

IMG_8145.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