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히려 상처를 주는 쪽이었다. 그래서 ‘툭하면’ 상처받는 사람들이 주위에 있으면 귀찮았다. 그들은 시도 때도 없이 상처를 받고 맨날 나만 나쁜 사람이 돼버리니까. 그만큼 내가 상처를 쉽게 받지 않는 것을 자랑삼을 때도 있었다. 나는 이렇게 꾸밈이 없고 강한 사람이라고.
나는 엄마의 사고에도 절대 울지 않았다. 엄마, 나 왔어요. 하며 아무리 말을 걸어도 미동이 없던, 한달 후 눈을 뜨시고도 천장만 바라보고 계시던, 병원 침대에서 떨어져 차가운 바닥에 몇시간을 엎어져 있던 엄마를 보고도.... 나는 독하게, 아니 안간힘을 써가며 눈물 한방울 흘리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런 나를 안쓰럽게, 기특하게, 때로는 외계인처럼 바라 보았지만 난 더 웃었고 수다를 떨었고 아무렇지 않은 티를 냈다. 당신들에게는 드라마지만 나에게는 인생이라서, 이게 비극이 되면 안되거든. 그 때까지도 나는 잘 버티었다. 나답게, 씩씩하게.
엄마가 병원을 퇴원하시고, 재활운동을 다니시고, 외출을 다니시게 되면서 나는 한동안 엄마의 그림자로 살아야 했다. 그리고 내가 하루도 빠짐없이 하게 된 말,
고맙습니다.
부탁드릴게요.
정말 죄송합니다.
병원 문 하나를 여는 데도, 엘레베이터를 타는 데도, 가끔 엄마가 실수를 하실 때도 모든 양해와 사과는 나의 몫이었다. 나는 눈치볼 일이 늘었고 그들의 친절과 배려가 아니면 안되었다. 뜨거운 뚝배기를 내 허벅지에 쏟고도 미안한 감정이 들기는 커녕 내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숟가락질을 이어 가시는 엄마를 대신해 아이고 학생! 하면서 달려와 주시던 아주머니들에게, 나는 심청이 젖동냥 받듯 측은지심을 받기도 했다.
갑자기 딴 얘기같지만, 우리 외삼촌은 지적 장애가 있으시다. ‘있으시다’ 라는 말이 어색한 것은, 아무래도 그가 4살짜리의 지능을 갖고 계시기에 나 또한 그를 아이처럼 바라보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내 또래 사촌들 사이에서, 겉은 어른인데 말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것이 저보다는 한참이나 뒤떨어지는 그와 어울리기란 아무래도 난감한 일이었는데, 어린 마음에도 나는 그를 혼자 둘 수가 없어 만날 때마다 그를 전담마크해왔다.
나는 그를 만날 일이 그리 많지 않았지만, 막내이모는 결혼하기 전 평생을 외삼촌과 둘이 놀았다. 그녀의 언니들은 바빴고, 남동생은 안타까웠다. 그녀는 외삼촌과 함께 하는 반평생, 그와 함께 동정어린 시선과 손가락질을 받아야 했고, 불과 10년 전에야 그것이 그녀의 낮은 자존감의 이유이며 그녀를 찌르는 가시가 되었음을 알았다. 외삼촌이 받는 상처를 이모가 모두 받아왔던 것이다. 정작 외삼촌은 마음에 두지 않을 일들까지도.
그 이야기를 듣고 깨달았다. 한 때는 상처받지 않고 강한 것을 자랑삼았던 내가, 지나가는 바람에도 눈물을 뚝뚝 흘리게 된 이유를. 누구보다 당당했고 세상 아쉬운 것 없던 내가, 눈치를 보고 마음을 졸이는 쫄보 중에 쫄보가 된 까닭을. 버티고 버티던 내가, 온몸에 딱한 시선을 받고 스스로를 딱하게 여긴 순간, 세상 약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다행히 엄마는 호전 중이시고, 우리를 나무라고 피하는 사람보다는 따뜻한 손길을 내어주는 사람이 훨씬 많다. 나는 정말 그렇게 생각하지만, 이 또한 내가 굳이 세상을 아름답고 따뜻하게 바라 보려고 노력해서인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않으면 받을 상처가 너무나 많고, 나는 더이상 센 언니가 아니니까.
내가 찌질한 것이 다 이래서요! 하고 변명과 합리화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혹시 주변에 소심하고, 쉽게 상처받고, 감성이 예민해서 상대하기가 어려운 이가 있다면 그들의 사정을 다 헤아려 달라는 것도 아니다. 다만, 이야기하고 싶었다. 내가 정말 못나서 이런 것은 아니라고... 내가 나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어, 나라고. 내가 나한테 얘기해주고 싶었다고.
쓰고 나니 갑자기 노파심이 들어 덧붙이자면 내가 시도 때도 없이 소심하거나 상처를 잘 받는 것은 또 아니다. 친하고 편한 사람들 앞에선 소싯적 모습 그대로다. 사람이 그렇게 쉽게 변할 리가. 그러니 조심하지 않으셔도 된다. 또 이상야릇한 글을 올리고 말았다. 2탄으로 <못마땅한 시선> 을 쓰고 싶은데 연달아 올리면 안될 것 같다.
사실 이 글은, 일주일도 더 전에 올리자마자 바로 삭제했던 글이다. 그런데 목격자가 있어서 완전 범죄도 물 건너간 김에 어찌할까 하다가 @megaspore 님의 선의 반대말 을 읽고 다시 올린다. 당신의 선의가 누군가를 상처내기 전에, 나같은 사람은 이렇다고 알려줘야할 것 같아서.
언제부턴가 한국에 오면 꼭 이런다. 나를 향한 시선과 충고는 물론이고 남을 향한 불평에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기 일쑤다. 당사자는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조차 못할텐데 혼자 마음 쓰는 소심한 내가 못나게만 느껴진다. 어릴 때부터 강한게 멋지다고 철썩같이 믿어 왔는데. 그런데 이거 내 잘못이 아니다. 누가 잘못한 것이 아니다.
나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