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기 역사를 쓰는 새로운 방법론
이 책은 저자인 다치바나 다카시가 릿쿄대학의 '세컨드 스테이지 대학'에서 개설한 <현대사 속의 자기 역사>라는 강의의 내용을 정리한 기록이다. '릿쿄 세컨드 스테이지 대학'은 시니어 세대를 위한 독특한 교육과정으로 수강생 대부분이 은퇴한 단카이 세대였다.
저자는 수업 목표를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단순히 개인의 신변잡기적인 자기 역사를 쓰는 것이 아니라 같은 시대의 역사 흐름 속에 자신을 투영해 보는, 즉 '자기 역사 + 동시대 역사'라는 수업을 만들고자 한다.
세컨드 스테이지, 즉 두 번째 삶의 무대를 다시 디자인하는 데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자신의 퍼스트 스테이지, 즉 첫 번째 삶의 무대를 면밀하게 다시 들여다보는 것이다. 이를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자기 역사를 써 보는 것이다.
이 책은 다른 자서전 쓰기 책과 달리 개인의 삶을 둘러싼 역사적 환경에 눈을 돌릴 것을 제안한다. 내면에의 침잠, 아픈 기억 들여다보기, 트라우마 극복에만 집중하는 다른 책들과는 다르다. (물론 이런 효과를 부정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책에서도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사례가 나온다.)
풍부한 사례집
이 책은 '이렇게 써라, 어떤 걸 써라'라고 구구절절 이야기하지 않는다.
한 사람의 삶이 어떻게 하나의 형식으로 정리될 수 있을까.
설명을 최소화하고 수강생들의 사례를 계속해서 보여준다.
우리는 그들의 글을 보며 우리의 역사를 어떤 방식으로 써나갈 것인지 고민하면 된다.

자기 역사 연표 만들기
자기 역사 연표도 사람마다 각기 다양한 방식으로 만들어내고 있었다.
한 사람은 자신이 그 당시 얼마나 인생을 충실하게 살았는지를 그래프로 표현했고,
또 다른 사람은 자신의 재산을 '능력 재산'과 '인맥 재산'으로 나누어 정리했다.
그 사람의 관심사나 인생에 대한 관점에 따라 다양한 그래프가 나올 수 있을 것이었다.


쓰면서 읽어야 할 책
나도 몇 년 전부터 자기 역사를 쓰기 위한 준비를 해오고 있다.
일기는 꾸준히 써오고 있었고
외장하드엔 나와 관련된 사진, 영상들을 모두 정리해 놓았다.
이 책을 가장 잘 활용하는 방법은 자기 역사를 쓰면서 읽는 것일 테다.
글을 쓰는 것, 특히 책을 쓰는 것은
나를 움직이게 하는 채찍 (마감, 감시)가 없으면 금방 동력을 잃어버린다.
또 좋은 글을 쓸 수 있도록 자극하는 동료도 하나의 동력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이 책에 나온 것처럼 <현대사 속의 자기 역사> 강의를 수강해
선생님의 지도를 받고 동료와 이야기하며 마감 기간을 두고 쓰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일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강의를 들을 기회가 없고
주변 사람에게 자신의 모든 역사, 치부를 드러내고 이야기하는 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글을 쓰려는 동력을 잃어버릴 때, 어떻게 써야 할지 막막할 때, 내 역사를 글로 쓰고 바라보는 게 힘이 들 때, 이 책을 가끔씩 들여다보면 조금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도 오늘부터 쓴다. 아니, 추석 끝나고
마침 나도 지금까지의 인생을 한 번 정리해봐야겠다고 생각했던 참이었다.
길지 않은 인생이지만 중간중간 이전까지의 역사를 정리해 놓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나중에 60 먹어서 쓰려면 다 까먹을 것 같아서._.)
책에서도 이런 구절이 나온다.
똑같은 사건을 돌아보더라도 30대, 40대, 50대 때 느껴지는 게 다르다고.
그러니 20대 후반, 나의 1막이 끝나기 전에 한 번은 정리를 해놔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자기 자신을 위해서 쓴다
이 책의 한 페이지를 인용하면서 글을 마치려 한다.
수업 마지막 날은 금방 찾아왔다. 수업은 9월까지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는데 큰 오산이었다. 어쨌든 마지막 날에는 어떻게 해서든 자기 역사의 전체 상만은, 비록 신통치 않은 문장을 엮어서라도 마무리 짓고자 전념하였다. 별것 없는 인생, 별것 없는 자기 역사. 마지막까지 그렇게 생각하였다.
그리고 8월, 자기 역사를 다시 정리하려고 한동안 방치해 놓았던 자기 역사 연표를 오랜만에 꺼내 들었다. 거기에는 나와 많이 닮은, 하지만 나와는 다른 "이상한 인간"의 자기 역사가 기술되어 있었다.
웃고 말았다. 55년이라는 시간의 흐름 속에 드러난 한 사람의 인간적 몸부림, 에너지, 당참, 덧없음.
사랑스러워졌다. 누가 읽지 않아도 좋다. 읽을 필요도 없다. 한 인간의 자기 역사는 그 인생을 살아낸 자기 자신을 위해 쓴 것이다.
자기 역사는 마성을 가진 요물이다. 그것을 쓸 때마다 자신의 생각이 변화한다. 그렇기 때문에 쓰고 또 써도, 또다시 고쳐 써야만 하는 처지가 된다. 게다가 아무리 써도, 한 사람의 인생이 기껏 100장 남짓한 원고지를 채울 정도밖에 안 되고 동시에 아직 다 하지 못한 말들이 많이 남아 있다는 후회가 남기도 한다. 마치 나 자신의 인생 그 자체인 것처럼, 치졸하고 읽을 만한 내용이 없는 자기 역사가 완성되었다.
그렇다. 이것이 바로 나다.
(p.2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