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제가 내 인생 최대 고민거리였던 날들에,
★★★★☆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DVD. 20180910. 네마자데와 아마드소년들에게 세상은 배워야 할 것 투성이다. 그래서 어른들은 그렇게 공부하라 꾸짖고, 숙제하라 꾸짖나 보다. 정작 어른들에게도 세상은 배워야 할 것 투성이면서 말이다.
영화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는 숙제장을 사촌 집에 두고 온 네마자데가 연습장에 숙제를 해서 선생님에게 꾸중을 듣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선생님은 네마자데의 연습장을 갈기갈기 찢으며 다음부터는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고 불호령을 내린다. 네마자데는 제 마음이 찢긴 듯 울음을 터뜨린다.
흔히들 말한다. 아이들은 원래 잘 운다고. 그 말을 자주 듣다 보니 아이들이 우는 건 그다지 슬퍼 보이지 않았다. 겹겹이 싸인 주름을 타고 흐르는 노인들의 눈물이야말로 진정한 슬픔이라고. 그렇게 느끼며 살아왔다.
훌쩍 자라 다시 만나게 된 네마자데는 내가 또래였을 때보다 더 큰 슬픔을 온전히 머금은 눈물로 제 손등을 적시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숙제를 하지 못해 선생님에게 벌을 받던 나날들이 내 소년 시절 가장 무서웠던 기억이면서, 그걸 까맣게 잊고 있었다. 기억을 되찾은 지금, 네마자데를 애처롭게 지켜보던 짝꿍 아마드의 표정이 어느새 내 얼굴에도 번져 있었다.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간 아마드는 책가방에서 숙제장을 꺼내보고 화들짝 놀란다.
"엄마. 실수로 네마자데의 공책을 가져왔어요."
세상에. 이건 정말이지 엄청나게 큰일이다. 하굣길에 네마자데와 놀다 넘어졌을 때 공책이 뒤섞여 네마자데의 숙제장까지 가져와버린 것이다. 아마드는 집안일을 도우다 네마자데에게 숙제장을 돌려줘야 한다고 엄마에게 말해보지만 시끄럽다며 숙제나 하라고 꾸중을 듣는다.
아마드는 심각하다. 하지만 엄마는 아마드가 얼마나 심각한지 마음을 헤아려주지 않는다. 엄마는 이 상황을 그저 덜 자란 아마드의 몸집만큼이나 조그마한 소동으로 여긴 것이다. 소년에게 숙제란 어른의 생업만큼이나 커다랗고 중요한 일인데도 말이다. 이렇게나 어른들은 제멋대로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제멋대로 군다고 하지만, 정작 제멋대로 구는 건 어른들이다. 아마드는 엄마의 심부름을 틈타 네마자데에게 숙제장을 전해주러 옆 동네 포쉬테로 가는 꼬불꼬불 언덕길을 넘는다. 네마자데의 집이 정확히 어딘지 모르는 아마드는 어른들에게 물어물어 찾아보지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도리어 어른들이 아마드에게 이것 좀 해달라, 저것 좀 해달라 심부름 시키기 바쁘다. 길에서 마주친 아마드의 할아버지는 담배를 가져오라 시키면서 이렇게 말한다.
"내가 3번이나 말했는데 손자 녀석이 말을 안 들어."
아니. 도대체가 누가 누구의 말을 듣지 않는 건지. 정작 아마드가 그렇게 여러 번 말을 해도 듣지 않은 건 할아버지 아니신가요. 불쌍한 아마드. 그것도 모자라 동네에서 마주친 아저씨는 아마드가 꼭 쥐고 있던 네마자데의 숙제장을 아무렇지 않게 한 장 찢어 뺏어가기까지 한다. 아마드가 이건 네마자데 것이라 말해도 듣지 않고, 네마자데의 집을 물어도 답하지 않는다.
숙제가 인생 최대의 걱정거리였던 어린 시절을 어른들은 다 잊은 걸까. 하긴. 어른이 되고 나면 어른의 걱정거리가 생기고, 뒤돌아 볼 새도 없이 제 앞만 보며 세상을 겨우겨우 헤쳐나가기 바쁠 테다. 어쩌면 그 모든 걱정거리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크기로 우리를 괴롭히고 있고. 결국 우리는 모두 나이와 상관없이 매일같이 숙제를 해결하면서 살아가는 것일지도.
그런데, 우리는 내 앞가림하기도 바쁜 시대에 살고 있는 걸까. 아니면 네 앞가림이나 잘 하라 꾸짖는 사람이 되어버린 걸까. 숙제를 하지 못한 친구에게 숙제를 빌려주고, 숙제를 해온 친구의 숙제를 베끼던 다정다감한 장면들은 이제 소년들에게서도, 어른들에게서도 찾아보기 힘든 영화같은 현실이 되어버렸다.
꼬불꼬불 언덕길을 수차례 오르내리던 아마드는 끝내 네마자데의 집을 찾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불이 켜진 방에 앉아 숙제를 한다. 다음날 지각한 아마드는 숙제 검사를 기다리며 조마조마 마음을 졸이는 네마자데 옆에 앉아 속삭인다.
"숙제 검사했어? 내가 네 숙제 해왔어."
소년들에게 세상은 배워야 할 것 투성이다. 그래서 어른들은 그렇게 공부하라 꾸짖고, 숙제하라 꾸짖나 보다. 정작 어른들에게도 세상은 배워야 할 것 투성이면서 말이다. 그러니 나는 꾸짖는 어른이 아니라, 친구의 숙제를 대신해줄 수 있는 소년에 남고 싶다.
네마자드의 숙제장을 검사한 선생님은 말한다.
"잘했다."
네마자데의 인생이란 공책에 아마드가 한 송이 꽃을 피웠다. 나도 친구에게 그런 친구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