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가장의 무게를 짊어지고 있을 30, 40대 사람들은 '헐크'하면 <두 얼굴의 사나이>가 대부분 먼저 떠오르실 것이고, 지금 현세대를 살아가고 있는 10, 20대 사람들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마크 러팔로 버전 '헐크'를 가장 친숙해하실 겁니다. 그리고 이 두 캐릭터는 70년대 방영된 드라마 <두 얼굴의 사나이>와 MCU 소속 헐크의 솔로작 <인크레더블 헐크>에서 각각 활약했죠.
하지만 여기 많은 사람들에게 인식은 되나, 사랑받지 못하는 불운의 작품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이안' 감독의 <헐크>(2008)인데요. <색, 계>, <와호장룡>, <라이 오브 파이> 등등 아카데미 시상식을 비롯한 각종 시상식에서 상들을 휩쓴 여러 영화들을 만든 '이안' 감독 답게, 사소한 것 하나하나까지 놓치지 않고 나름의 의미부여를 하는 이안 감독 특유의 스타일이 하필이면 '헐크'에 적용된 탓일까요.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즐기고 싶었던 많은 관객들이 조금은 진중한 <헐크>를 혹평했고, 설상가상 평론가들에게도 좋은 평은 얻지 못하여 빛나는 이안 감독에 커리어에 흥행과 평가 모두 제대로 잡지 못한 불운의 작품으로 남게되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이 영화를 다시 한 번 꺼내 보다 문득 든 개인적인 생각이 있었습니다. '이 영화, 만약 지금 개봉하였으면 어땠을까?'
아시아계 감독들 중 정상급에 위치한 '이안' 감독. 그는 2003년, 지금으로부터 15년전, 그저 지지고 볶는 초록 괴수로 인식되어진 '헐크'를 색다른 방법으로 풀어나갔습니다. 현대인들의 폭력성과 '헐크'가 가진 이면을 집중 조명한 것이죠. 헐크와 브루스 배너의 감정 상태와 심리, 내면 등을 더 자세히 파고든 것입니다. 때리고 부수는 것 뿐만 아니라 철학적인 메세지와 자세히 다뤄볼 필요가 있는 스토리가 깃들어져 있는 영화라는 것이죠. 하지만 <헐크>는 당시 그저 '시간 때우려' 간 관객들에게 씁쓸한 혹평을 들어야 했고, 흥행에서도 참패했습니다.
하지만 이안 감독의 <헐크>가 현재에, 더도말고 2008년 즈음에 개봉했었더라면 어땠을까요? 개인적인 견해이지만 이 영화가 숨겨진 맛집 정도로 남진 않았을 것 같습니다. 물론 2008년 당시 에드워드 노튼을 주연으로한 <인크레더블 헐크>가 개봉했기 때문에 현실성 없는 이야기지만, 이 영화가 2003년이 아닌 조금 더 후에 만들어졌었더라면, 수많은 히어로 영화가 개봉함과 동시에 점점 바뀌어가는 관객들이 슈퍼히어로 영화를 대하는 태도에 맞춰 좋은 평가과 흥행을 거머쥘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당장 2008년만 해도 '항상 올곧고 정의롭기만 한 슈퍼히어로 영화의 주인공'에서 탈피한 <아이언맨>, '철학'에 대한 진하고 여운있는 메세지를 남긴 <다크 나이트> 등이 개봉하였고, 현재에도 <캡틴 아메리카: 윈터솔져>, <로건> 같은 어둡고 무거운 영화가 즐비하기 때문에, 헐크와 현대인의 문제점을 잘 엮어놓은 이안 감독의 <헐크> 또한 동시대에 개봉했다면 좋은 결과를 남기고 비교적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담이지만 또한 제가 인상깊게 보았던 <헐크>의 특징 중 하나는 정말 '만화'스러운 편집입니다. 위 링크의 영상 뿐만아니라 영화의 거의 모든 장면에서 만화책을 연상케하는 편집 방법들이 많진 않지만 적지도 않은 영화들을 본 저도 꽤 신선하게 다가올 만큼 놀라웠습니다.
있는대로 잘라 붙인게 아닌, 효율적으로 컷 편집을 하고 오려붙였다는 점에서 한 번 더 놀랐고, 딱딱 맞아 떨어지는 장면들에 두 번 놀랐었습니다. 보면, 헐크의 이동 경로와 상황을 전체적인 배경으로 보여주면서 그에 대응하는 군사들과 대화하는 로스 장군이 딱딱 맞춰서 컷 편집되어 이어지고, 후엔 여러 사물을 이용한 화면 전환으로 감탄을 자아내더군요,
명감독 이안 감독의 손길과 쉽게 지나칠 수 없는 주제의식, 만화적인 요소의 편집 등을 보면 당최 왜 평단이 저버린 영화였는지 이해가 잘 안되긴 합니다. 결국 숨겨진 명작으로 남겨져버린 이안 감독의 <헐크>는 시대를 잘못 태어났다고 밖에 설명할 길이 없는 것 같네요. 개인적으로 사심을 담아 말씀드리자면(지금까지 그런거 같지만) 이 영화 추천드립니다. 저도 기대한 것 보단 의외로 빠져서 보았던 것 같네요.
2018-08-31 <헐크>(2003)을 보다 문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