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지망생 모임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2주에 한 번 씩 모여 서로의 작업물을 검토하고 리뷰를 해주는 모임이었다.
간혹 신입 회원이 들어오곤 했는데 어느 날 준수한 20대 남성회원이 한 명 들어왔다.
깔끔한 인상에 영민해 보이는 눈매의 소유자였다.
직장에 다니고 있지만 글 쓰는 것을 좋아해서 영화 시나리오를 쓰던, 소설을 쓰던 자신의 가능성을 시험해보고 싶다고 했다.
그 다음 번 모임에 그가 제출한 작업물을 읽어보니 글재주가 꽤 있는 친구였다.
말솜씨도 좋은 편이라 기대가 됐다.
그러나 그는 두 달 만에 모임에 더 이상 나오지 않겠다고 했다.
모임이 끝난 후 이어진 술자리에서 그 이유를 물어봤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취미로 쓰는 것과 직업적으로 쓰는 것은 다른 것 같아요."
취미로 쓸 때는 내가 쓰고 싶을 때 쓰면 됐지만 모임의 데드라인을 의식하며 쓰니 글 쓰는 것이 더 이상 즐거움이 아니게 됐다고...
그래서 자문해봤다는 것이다.
자신이 왜 글을 쓰고자 하는 것인지...
심사숙고한 결과 그는 자신이 글을 쓰는 이유가 즐거움을 얻는 것 이상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했다.
모임을 하다가 중간에 나가는 사람들은 대개 좋지 않은 모양새로 나가는 경우가 많은데 그는 뒷마무리가 깔끔했다.
내 나이 20대일 때 나는 참 미숙했던 것 같은데 이 친구는 현명하고 처신도 나이스했다.
많은 작가 지망생들이 취미와 직업적인 글쓰기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허송세월을 한다.
직업적인 글쓰기에는 부담이 따른다.
기자는 마감시한을 지켜야 하고 방송작가는 제작진과 약속한 시간 안에 일정 수준 이상의 결과물을 내야 한다.
이것은 장난이 아니고 비즈니스가 개입된 엄중한 약속이다.
이럴 경우 글쓰기는 더 이상 즐거움이 될 수 없다.
여기가 작가 지망생들이 당혹스러워 하는 지점이다.
글을 쓰면 일하는 것이 마냥 즐거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혼란에 빠지는 것이다.
여기서 직업적으로 글을 쓸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가려진다.
부담감을 이겨내고 결과물을 낼 수 있고 또 그 결과물을 냈다는 만족감에 살 수 있는 사람은 직업적인 글쓰기가 가능한 사람이다.
그렇지 않다면 취미 정도에 만족하는 것이 좋다.
공연한 욕심에 글 쓰는 즐거움마저 날릴 필요는 없지 않은가?
앞서 말했던 그 친구는 그런 면에서 참으로 현명했다.
자신의 한계점을 명확히 알고 인생의 진퇴를 결정할 줄 아는 친구다.
지금 뭘 하며 사는 지는 모르지만 최소한 평균 이상의 삶은 살고 있을 것 같다.
반면 직업적인 글쓰기의 삶을 선택한 나는 날마다 스팀잇에 뭘 올릴까 고민한다.
오늘은 뭘 해먹을까 매일 끼니 걱정을 하셨던 어머니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