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rning... 뭘 태운다는 것일까?
제목을 보자마자 떠오른 의문이었다.
영화에 강렬한 메시지를 심는 이창동 감독의 스타일을 생각해볼 때 필경 이 영화에서 맞추어봐야 할 퍼즐 조각 중 하나겠군.. 이런 생각을 하며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영화 중간에 해미(전종서 분)의 입에서 '그레이트 헝거(Great Hunger)'라는 말이 나왔을 때 귀가 번쩍 뜨였다.
"카라하리 사막의 부시맨들한테는 두 종류의 굶주린 사람이 있대. 리틀 헝거(Little Hunger)는 그냥 배가 고픈 사람, 그레이트 헝거는 삶의 의미에 굶주린 사람.. 난 그레이트 헝거가 될거야."
이때부터 내 머리 속에는 제목 'Burning'과 'Great Hunger', 이 두 개의 단어가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다 벤(스티븐 연 분)이 해미와 함께 종수(유아인 분)의 집에 찾아와 함께 석양을 바라보는 씬에 이르러서야 이 두 단어의 연결고리가 무엇인지 알아챌 수 있었다.
젊음에는 아이러니가 존재한다. 넘치는 에너지가 있지만 그것을 어디에 써야 할 지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것은 젊은 가슴에 가두어진 채 부글부글 끓고 있을 때가 많다. 출구를 찾지 못한 에너지가 속에서 부대낄 때 젊음은 고통스러워 한다.
지금처럼 구조화되고 독점된 기득권이 젊은이들을 찍어누르는 시대에 그들은 좀처럼 그 출구를 찾지 못한다. 그 에너지를 쏟아부을 만 한.. 의미 있는 뭔가를 찾지 못했을 때 이것은 곧잘 분노로 바뀐다.
어렸을 적 한 동네에서 큰 종수와 해미는 우연한 기회에 만나게 된다. 해미의 손에 이끌려 그녀의 자취방에 간 종수는 그녀와 사랑을 나누고 그녀는 고양이 '보일'을 맡기고 아프리카로 여행을 떠난다. 얼마 후 해미는 여행지에서 만난 벤과 함께 귀국한다.
해미를 마음에 두고 있던 종수는 벤의 존재가 어색하고 거북하기만 하다. 그러나 해미는 벤과의 만남에 꼭 종수를 끌고 나간다. 벤이 가진 부유한 배경에 열등감을 느낀 종수는 힘겨움을 느끼는데 어느 날 해미는 벤과 함께 그의 집에 놀러오겠다고 한다. 그래서 셋은 종수의 집 마당에서 만나게 된다.
그렇게 종수의 집 마당에서 함께 석양을 바라보게 된 세 명의 젊은이들은 출신은 다르지만 삶의 의미를 찾아헤매는 그레이트 헝거(Great Hunger)들이다. 이들은 삶의 의미를 갈구한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안고 있는 무의미의 성격 면에서는 다르다.
종수와 해미가 출구를 찾지 못한 자의 무의미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었다면 벤은 모든 것이 갖추어진 안연한 삶이 가져다준 무의미함에 빠져 있었다.
술과 대마초에 취한 해미는 웃통을 벗어던지고는 춤을 춘다. 떠남과 일탈만으로는 해소될 수 없었던 가슴 속 에너지는 그런 식으로라도 분출되어야만 했다. 지적인 수준이 낮았던 그녀는 그것을 어떻게 표출해야 하는 지는 몰랐지만 가슴이 저미도록 느끼고는 있었던 것이다. 그녀에게 애정을 가지고 있었던 종수는 당혹스럽다. 그녀를 위해 뭔가를 하고 싶지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종수는 그녀의 고통에 공감하고 있었다.
반면 벤은 이런 것을 해소하는 나름의 방법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이기적이면서도 교활했다. 출신이 가져다준 부요함은 종종 공감 능력의 상실을 가져온다.
해미와 종수를 데리고 놀 수는 있었지만 그들을 이해할 수는 없었던 벤은 가슴 속 분노를 엉뚱하면서도 음침한 방식으로 표출한다. 그는 태우지 말아야 할 것을 태운다. 그리고 그것은 이 영화의 비극적 결말에 단초를 제공하게 된다.
이창동 감독이 무려 8년만에 들고 나타난 영화 '버닝'은 역시나 강렬한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그의 스타일을 이해할 수 있다면 나름 재미있게 볼 수 있도록 미스테리를 이용해 이야기를 풀어간다.
이창동 특유의 진중함으로 무거워진 이야기에 무게를 덜기 위해 애쓴 흔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진중함으로 인해 그의 영화에 대한 반응은 극과 극으로 나뉜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유아인의 연기는 기가 막힐 정도다.
그는 출구를 찾는 청춘의 열망과 소외감, 그리고 무력감을 정말이지 잘 표현했다. 그러나 놀랍지는 않다. 그의 연기력은 이미 정평이 나 있으므로...
진실로 놀라운 것은 전종서의 연기였다.
그녀는 약간은 천박하면서도 진솔한 해미의 캐릭터를 신들린 듯 연기했다. 신인의 연기라고 보기엔 너무 자연스러워서 '허!' 하면서 터져나오는 실소를 막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안 그러신 분들도 많겠지만 난 이 영화를 재미있게 봤다. 이창동의 스타일에 크게 부담을 느끼지 않는 분이라면 러닝타임 148분 동안 이 세 주인공의 행각에 무리 없이 몰입하실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