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 '천만관객'이라는 단어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그것은 흥행대박을 뜻함과 동시에 대중성과 완성도 면에서 관객들에게 인정 받은 영화에게 주어지는 왕관 같은 것이었다.
2005년 개봉해서 74일만에 누적 관객 수 1200만을 돌파한 '왕의 남자'의 흥행대박은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개봉 초기 개봉관 확보에도 어려움을 겪었다는 이 영화는 영화를 본 관객들의 입소문을 타고 흥행돌풍을 일으켰다. 난 아직도 장생이 놀던 외줄처럼 위태롭던 연산과 공길의 운명이 파국으로 치닫던 그때의 긴장감과 카타르시스를 잊지 못한다.
이후 탄생한 천만 영화들.. 괴물, 태극기 휘날리며, 아바타 등의 작품들도 '왕의 남자'와 여러 면에서 다를지언정 '천만관객'이라는 단어에 어울리는 아우라는 갖고 있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에서 천만관객이 들었다는 영화들이 시빗거리가 되기 시작했다. 최근 개봉한 어벤저스 인피니티워는 16일 만에 누적 관객 수 935만 명을 기록해 조만간에 천만을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 영화가 차지한 전체 스크린의 수다. 현재 이 영화는 전체 스크린의 절반이 넘는 2553개에서 상영되고 있다.(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자료 2018.05.07) 전체 스크린의 절반 이상을 한 영화에 몰아주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만 밀어주면 특별한 것이 없어도 어지간히 욕 먹지 않을 정도로만 만들면 평균 이상의 흥행성적은 거둘 수 있지 않을까? 지난 해와 올해 천만 관객이 들었던 한국영화들도 스크린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양대 멀티플렉스의 도움 없이 관객들의 선택 만으로 천만 영화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을지 상당히 의심스럽다.
난 개인적으로 영화는 영화 그 자체의 완성도와 스토리의 힘으로 평가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훌륭한 영화와 거기에 호응하는 관객들의 자연스러운 반응만으로 형성된 천만관객이어야 의미가 있다. 시스템의 힘으로, 그것도 사실상 독과점 상태에 있는 상영관의 도움을 얻어 만들어진 천만 관객이라면 이미 그 자체로 의미가 퇴색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시간이 갈수록 한국에서 '천만관객'은 탄생하기보다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