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출처 : 네이버 연예 '나의 아저씨')
드라마에서는 대사가 중요하다.
영화가 인물의 행동으로 사건이 진행되는 경우가 많은 반면 드라마는 인물들의 대사로 사건이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드라마에서는 대사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국내 작가 중 이른바 '대사빨'을 가장 잘 살리는 작가는 김은숙이라고 알려져 있다.
확실히 그녀는 명대사로 회자되는 대사를 많이 썼다.
배우들은 그녀가 쓴 대사가 입에 착 감기는 맛이 있다고 말한다.
나도 동의한다. 김은숙 작가는 대사에 대해 남다른 감각을 가지고 있다.
그녀는 두 사람 사이에서 짧게 치고 받는 대사에 능하다.
특히 썸을 타고 있는 두 남녀가 밀당을 하며 리드미컬하게 주고 받는 대사에 있어 그녀에 필적할 작가는 없다.
그녀는 이런 류의 대사에 있어 단연 독보적인 존재다.
그러나 대사에 있어 중요한 것은 감각적인 언어 뿐만이 아니다.
이야기의 구루라 일컬어지는 로버트 맥기는 그의 명저인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오래된 헐리우드식 표현 중에 이런 게 있다.
「액면 그대로 드러난 게 그 장면의 전부라면 그건 땡친 거다.」
인물의 말과 행동이 내면 생각과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표면적인 글쓰기를 경계하는 말이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대사를 잘 쓸 수 있는 거예요?"
드라마 작가 지망생들이 많이 하는 질문 중 하나다.
사람들의 귀에 꽂히는, 기억에 남고 흡인력 있는 대사는 어떻게 해야 쓸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하여 맥기는 '보조 텍스트'를 해답으로 제시한다.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겉으로 보이는 게 장면의 전부가 아니다. 텍스트와 대비되거나 모순되는 내적인 삶으로서 보조텍스트는 항상 존재한다.
이런 가정 하에서 배우는 다층적인 작품을 창조해냄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텍스트 너머 눈빛, 목소리, 몸짓 뒤에 숨쉬고 있는 진실을 보게 해준다.'
여기서 '뒤에 숨쉬고 있는 진실'이라는 말에 주목해야 한다.
인물이 말하고 있는 바와 가슴 속 진실이 똑같다면 이것은 재미가 없다.
패를 보여달라고 하니 그냥 까버리는 것과 똑같은 것이다.
반면 인물이 말하고 있는 바와 가슴 속 진실이 다르다면 어떨까?
이 자체만으로도 대화를 주고 받는 인물들 사이에는 긴장감이 조성된다.
맥기가 말하는 '보조텍스트'는 겉으로 드러난 이면에 숨겨진 무언가를 말한다.
표면적인 대화를 위선으로 만들어버리는 숨겨진 진실 같은 것 말이다.
오늘 본 '나의 아저씨' 3회 중 한 장면이다.
퇴근을 하려는 박동훈이 도준영과 맞닥뜨린다.
그냥 지나치려는데 박동훈이 갑자기 기습적인 질문을 한다.
동훈 : 다음은 나니?
준영이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본다.
동훈 : 왜? 너한테 잘못한 거 없는 거 같은데... 너 싫어하는 거 티 낸 적 없는데...
준영이 동훈에게 다가선다. 그리고 동훈의 눈을 똑바로 보며 말한다.
준영 : 제가 왜 선배님을 잘라야 돼요? 박동운 상무는 제가 자르려고 수작 부렸다고 오해 할 만 하다고 쳐요.
적수가 되니까... 근데! 선배는 내가 왜 잘라야 돼요?
동훈과 준영은 대학 선후배 관계다.
동훈, 얼음장 같이 차가운 얼굴로 대답한다.
동훈 : 뭔 죄를 지었나보지.. 나한테... 근데 내가 모르고 있나보지...
동훈, 뒤돌아서 가버리고 준영, 잠시 서서 그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이 대화의 이면에는 준영이 동훈의 아내와 불륜의 관계에 있다는 진실이 숨어있다.
이 진실을 알고 있는 시청자는 이 장면에 몰입할 수밖에 없다.
이 장면의 대사는 시청자의 기억에 남을 가능성이 크다.
여러분은 어떤 대사가 가장 기억에 남으시는가?
난 동훈의 이 대사가 기억에 남는다.
"뭔 죄를 지었나보지... 나한테..."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는 이런 장면이 심심치 않게 나온다.
이것은 박해영 작가가 맥기가 말한 '보조 텍스트'의 중요성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있으며 이것을 작품에 적용하는데 무척이나 성실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눈으로 확인할 수는 없지만 이 장면에서 준영의 가슴은 철렁 내려앉았을 것이다.
아울러 이 드라마에 몰입한 시청자들도 그랬을 것이다.
이면의 진실이 주는 긴장감을 대사에 불어넣을 줄 아는 작가...
그리고 이것을 제대로 연기하는 배우들에 의해 드라마를 보는 재미는 배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