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렸을 때 아이들은 꿈이 거창했다. 누군가 꿈이 무엇이냐 물으면 '대통령'이라고 대답하는 아이들이 가장 많았다. 해방 이후 우리나라에서 대통령이라고 불린 사람은 현직인 문대통령까지 합해 모두 11명 밖에 안 된다. 그런데도 당시 아이들의 꿈은 대통령이었다. 그 다음으로 많았던 것이 판검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마도 유교적인 '입신양명'의 프레임이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있던 시대의 초상일 것이다.
지금도 이 프레임은 우리 사회에서 강력하게 작동한다. 간혹 일이 있어 지방에 가면 어느 집 자제의 명문대 입학을 축하하는 현수막을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명문대에 입학하는 것은 집안의 경사로 끝나지 않고 동네의 자랑거리가 된다.
우리 부모님 세대에서 자식의 명문대 입학은 자식 농사를 잘 지었다는 확증으로 여겨졌다. 이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자식의 명문대 입학이 좋은 부모의 조건인 것처럼 여겨지는 걸 보면 말이다. 한국에서 명문대 입학은 개인의 일이 아닌 집안의 일이다. 부모들은 모든 가용 자원을 총동원해 자식의 명문대 입학을 성사시키려 한다. 그야말로 총력전이다. 집안에 명문대 간판을 세우기 위한 이 눈물겨운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입신양명'은 자신의 인생 뿐만 아니라 자식의 인생에서라도 이뤄야 할 가치인 것이다.
입신양명은 쉽게 말해 잘난 사람이 되라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 사회에서 금과옥조처럼 여겨지는 인생의 미션이다. 우리 사회에는 잘난 사람이 되기 위해 사는 사람이 많다. 명문대 간판도 잘난 사람이 갖춰야 할 조건 중 하나다. 최근에는 돈에 밀리고 있는 것 같지만...
경영학의 구루인 피터 드러커의 명저 '프로페셔널의 조건'을 보면 그의 인생을 바꾼 7가지 경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난 이 내용 중 7번째 경험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았는데 이것은 그가 부친과 함께 저명한 경제학자인 조지프 슘페터를 만났던 일을 적은 것이다. 부친에 의하면 젊은 시절의 슘페터는 활기차고, 당당하고, 외향적이었으며 무엇보다 우쭐대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당시 61세가 된 그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젊은 시절 그는 '당신은 죽은 후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바라는가?'라는 질문에 '유럽 미녀들의 최고 연인, 유럽의 최고 승마인, 그 다음으로는 세계 최고의 경제학자로 기억되기 바란다'고 대답했었다고 한다. 그랬던 그가 똑같은 질문에 전혀 다른 대답을 했다는 것이다. 그의 대답은 '대여섯 명의 우수한 학생을 일류 경제학자로 키운 교사로 기억되길 바란다'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책이나 이론만으로 기억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진정 사람의 삶을 변화시킬 수 없는 이론이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말을 덧붙였다고 한다. 피터 드러커는 그와의 대화에서 배운 것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첫째, 우리는 자신이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바라는지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한다.
둘째, 우리는 늙어가면서 그 대답을 바꾸어야만 한다. 그것은 차츰 성숙해가면서 세상의 변화에 맞추어 바뀌어야만 한다.
마지막으로 꼭 기억될 만 한 가치가 있는 것 한 가지는, 사는 동안 다른 사람의 삶에 변화를 일으킬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난 이 글을 읽고 자문해보았다.
"내가 죽은 후 사람들은 날 어떤 사람으로 기억할까?"
나는 그리 성공적인 인생을 산 사람이 못 된다. 아니 성공이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먼 삶이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입신양명의 관점에서 보자면 내 인생은 꽤나 시원찮았던 셈이다.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내 남은 인생의 모든 것을 걸고 노력한다면 뭔가 특출난 일을 이루어낼 수 있을까? 이론상 불가능하지야 않겠지만 현실적으로는 어려울 것이다. 생각이 여기에까지 이르자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런데 그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도 괜찮은 사람은 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죽은 후 내 비석 앞에 선 사람들이 '모피어스는 괜찮은 사람이었어...'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피터 드러커처럼 다른 사람의 삶에 변화를 일으키는 정도까지 갈 수 있다면 너무 감사한 일이겠지만 솔직히 거기까지는 자신이 없다.
그 동안 내 마음 속에는 항상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던 공간이 있었다.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잘난 사람이 되지 못했다는 자격지심이 드리운 어둠이 켜켜이 내려앉아있던 암실 같은 공간... 그 존재를 애써 부정했지만 엄연히 존재했던 그 공간은 이 사회가 잘난 사람들만이 충족시킬 수 있는 조건들을 내게 요구할 때마다 내 마음 속에서 그 존재감을 드러내곤 했었다. 이곳은 내가 여기에 대응할 수 있는 삶의 철학을 갖게 되기까지 내 마음 속에 폐가처럼 존재했다.
지금의 나는 괜찮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소박한 바람 속에 나름 노력하는 삶을 산다. 이것도 생각처럼 쉽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것이 목적지 없이 방랑을 일삼는 삶은 되지 않게 내 삶에 방향성을 주고 있는 것 같다. 난 앞으로도 대단한 사람, 또는 잘난 사람이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 내게 다가섰을 때 인간적인 따스함을 느낄 수 있는 사람, 자기만의 철학과 신념을 가지고 꿋꿋히 현실을 헤쳐나가는 사람으로 기억될 수 있었으면 한다. 사람들의 기억에 이런 사람으로 남는 것은 생각보다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2018년 5월의 어느 날, 난 세 가지 소원을 들어주는 천사 앞에 선 어린 아이와 같은 심정으로 소원을 말한다.
나는 진실로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다.